“살인하는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 사형제 폐지의 전 세계 확산을 추진하고 있는 스위스 외교부의 선언이다. 스위스는 사형제 폐지를 권고하기 위해 지난 5월 니콜 위르쉬 인권 특임대사를 한국에 파견하기도 했다. 한국은 지난 18년간 형 집행을 하지 않아 실질적 사형 폐지국가 35개국(국제앰네스티 자료) 가운데 포함되어 있지만, 아직도 사형제가 존속하는 국가이다. 사형제를 법적으로 완전히 폐지한 국가는 98개국이다. 사형제 폐지가 국제흐름인 것이다. 한국은 선진국 클럽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해 있지만, 사형제, 곧 인권에 관한 한 영락없는 후진국이다.
한국에서도 일부 국회의원들이 사형제 폐지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지난 7월 유인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대표 발의한 ‘사형폐지특별법’은 국회에서의 7번째 시도다. 앞서 있었던 6번의 발의는 번번이 ‘사형제 유지’에 압도적으로 찬성하는 ‘국민여론’에 주눅이 든 의원들의 회피로 자동 폐기됐다. 재적 절반을 넘은 171명의 여야 의원들이 특별법안에 서명했지만, 이번에도 자동폐기의 운명을 맞을 위험이 커지고 있다.
하지만 ‘여론’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있는가를 따져보면 살려낼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다. 사형제도에 대한 찬반 토론은 ‘인권’과 ‘흉악범’이라는 서로 다른 이미지를 놓고 다투고 있다. 한쪽이 주장하는 범죄자의 ‘인권’은 많은 설명이 필요하다. 반면에 반대하는 쪽이 주장하는 “연쇄강간 살인범 아무개도 죽이지 말라고?” 라는 반박은 즉각적인 반응을 불러 올 수 있다.
그래서 문제는 다시 언론으로 돌아간다. 사형제도가 벌써 7번째 국회에서 논란거리가 되었는데도, 언론이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보수언론의 경우는 이해가 되기도 한다. 의원들이 결국 국민여론에 맞서지 못할 것이니, 자기들이 굳이 사형제를 찬성하는 특집을 만들지 않아도 특별법은 폐기되고 말 것이라고 생각할 만하다. 그러나 진보언론이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디디어 부르크할터 전 스위스 대통령은 지난 해 9월 유엔총회 연설에서 ‘비전과 정치적 용기’가 없이는 사형제 폐지와 같은 중요한 문제에 대한 어떤 결정도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의원들은 물론 언론도 경청해야 할 말이다. 그는 사형제가 희생자나 가족들에게 보상이나 위안을 주기보다는 폭력 등의 악순환을 영속시킬 것이며, 오판으로 인해 무고한 시민을 죽이는 돌이킬 수 없는 일을 저지를 위험, 그리고 취약계층과 소외된 집단에게 차별적으로 적용되거나 악용되는 위험을 지적했다.
재판 제도를 보는 건강한 시각은 ‘죄인 10명을 놓치더라도 한명의 억울한 죄인을 만들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권력자들에 대한 재판에서는 그토록 엄격한 잣대로 유무죄를 조심스럽게 가리는 재판부가 약자와 소외된 자들의 재판에서는 어떤 태도를 취하고 있는가를 되돌아보게 하는 것도 언론의 역할이다.
사형제도가 있는 한 누구도 억울한 죽음을 당할 위험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유 의원이 몸으로 보여 주었다. 그는 사형선고를 받았지만, 지난 2012년 재심으로 무죄선고를 받았다. 그는 사형 집행 전에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어 다행히 집행을 면했다. 언론이 사형제 하의 오판의 위험을 부각시키면, 국민여론의 흐름도 바뀌고 의원들이 사형제 폐지라는 국제흐름을 타야겠다는 정치적 결단을 내리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성한표 언론인·전 <한겨레> 논설주간
성한표 언론인·전 <한겨레>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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