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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보도 협찬 눈감은 방통위

등록 2015-09-30 20:24수정 2015-09-30 20:50

엠비엔 <경제포커스> 한전 관련 방송 화면. 엠비엔 갈무리
엠비엔 <경제포커스> 한전 관련 방송 화면. 엠비엔 갈무리
미디어 수다
지난 3월 종합편성채널(종편) <엠비엔>(MBN)의 미디어렙에서 작성한 ‘영업일지’가 유출돼 큰 파문을 일으켰습니다. 우리나라 방송법에서 방송사는 광고 영업을 직접 할 수 없고 미디어렙이라는 대행사를 거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방송은 공공성이 강한 매체이기 때문에 방송에 대한 광고주의 영향력을 최소화하기 위해 만들어둔 장치입니다. 신생 매체인 종편 역시 지난해부터 각각 ‘1사1렙’ 형태로 미디어렙을 설립해 광고를 대행하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유출된 엠비엔 미디어렙의 영업일지 속에는 엠비엔 방송의 제작이나 편성이 광고주나 협찬주의 요구대로 이뤄진 듯한 정황들이 빼곡히 담겨 있었습니다.

결국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가 실태 조사에 나섰고, 다섯달이나 되는 긴 조사 기간을 거쳐 지난달 16일 최종 결론이 났습니다. 엠비엔의 광고대행사인 엠비엔 미디어렙은 “정당한 사유 없이 엠비엔의 방송 편성에 영향을 미쳤다”는 이유로 2억40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았습니다.

미디어렙이 방통위 제재를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합니다. ‘억대 과징금’이니 강한 제재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방송사의 자발적인 자료 제출에 의존해 조사를 할 수밖에 없는 방통위로서도 어려움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징계 결과는 아쉬운 대목이 많습니다.

엠비엔은 지난해 12월6일 보도 프로그램인 <경제포커스>에서 자원외교 현황을 비판적으로 다루다가 유독 한국전력공사(한전)에 대해선 “전문회사다 보니 경험이 많다”며 긍정적인 내용을 내보냈습니다. 방통위는 이에 대해 “(한전에) 광고효과를 주는 방송을 했다”며 엠비엔 미디어랩과 별개로 엠비엔에 과태료 500만원 부과를 결정했습니다. 현행법상 어떤 방송프로그램도 광고효과를 주는 내용을 담아서는 안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엠비엔이 이 방송을 근거로 한전으로부터 4000만원 규모의 협찬을 받았다는 사실은 조사결과에서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최민희 의원(새정치)이 공개한 자료를 보면, 엠비엔과 한전은 지난해 6월 한전의 아프리카 진출 상황을 소개하는 내용의 특집 다큐를 제작한다는 내용으로 협찬을 맺었습니다. 그 뒤 엠비엔 미디어렙 영업일지에는 “금년도 하반기 ‘컬러풀아프리카’ 선청구되었던 건 12월 ‘경제포커스’에서 소진 예정. 12월6일 경제포커스에서 자원외교에 대해 다뤄지며, 한전에 대해 부각시킬 예정”이란 문구가 나옵니다. 다큐 제작이 여의치 않게 되자, 이를 <경제포커스>에서의 긍정적 소개로 대체한 것이죠. 결과적으로 엠비엔은 4000만원 규모의 협찬을 받고 협찬주에게 광고효과를 주는 방송을 했는데, 이에 대해 고작 500만원 과태료라는 대가만을 치러 ‘남는 장사’를 한 셈입니다.

<경제포커스>는 보도 프로그램입니다. 현행 방송법 시행령은 “시사·보도, 논평 또는 시사토론 프로그램은 협찬고지 대상에서 제외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 시행령은 시사·보도 프로그램에 대해 협찬 자체를 하지 말라는 의미인지, 협찬은 가능하지만 협찬고지를 하지 말라는 것인지 논란의 여지가 있습니다. 방통위는 “<경제포커스>가 협찬을 받았더라도 협찬을 받았다는 고지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법규정 위반으로 판단하기 어렵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2003년 헌법재판소는 “협찬고지의 허용범위를 규율하고 있는 조항은 논리적으로 협찬의 허용범위를 규율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시사·보도 프로그램은 협찬 자체를 받지 말라는 취지죠. 만약 방통위가 관리·감독 기구로서 조금 더 적극적인 대응을 결심했다면, 보도 프로그램에서 협찬을 받은 사실까지도 문제라고 판단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언론단체들은 방통위의 이번 조처가 ‘솜방망이 징계’라고 비판했습니다. 단체들이 실제 방송분을 보고 문제점을 발견한 사안만 해도 21건에 달하는데, 방통위는 이 가운데 6건만 법령 위반행위로 결론냈다는 것입니다. 단체들은 조사기관의 한계가 있다면, “검찰, 국세청, 공정거래위원회 등에 수사 등을 의뢰했어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방송 보도가 협찬·광고 등을 댓가로 이뤄지는 게 위험한 일인지는 굳이 법규정에 기대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입니다. 현재의 법규정 등에 부족함이 있다면, 규제기관 스스로 법규정을 강화하고 정비하는 데 목소리를 더 높여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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