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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미디어

‘기사 삭제권’까지 손에 쥐려는 언론중재위

등록 2015-10-19 20:16

언론중재법 개정안 시안에
댓글·펌글 포함 기사삭제권 넣어
행정기관이 언론 쥐락펴락 시도
현재는 사법부 판결때만 삭제 제한
“언론의 자유 위축 우려” 목소리
언론중재위원회(중재위)를 비롯한 행정기관들이 인터넷 게시물의 삭제를 좀 더 쉽게 하는 방향으로 저마다 자신들의 업무 범위를 확대하고 권한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명예훼손 등 인터넷상의 피해 구제를 돕는다는 취지를 앞세우고 있지만, 결과적으로 인터넷 공론장을 과도하게 위축시킬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포털 개혁, 인터넷 심의기구 설립, 인터넷신문 등록요건 강화 등 올해 들어 정부·여당이 동시다발적으로 내놓은 인터넷 관련 정책들과의 연관성도 주목된다.

중재위는 지난 13일 국회에서 언론중재법 개정안 시안을 내놓고, ‘디지털 미디어 시대의 새로운 언론피해구제제도’를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중재위는 개정안에 ‘인격권’에 근거한 ‘침해배제 청구권’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도입하고, 디지털 시대에 맞게 중재위의 업무 범위와 권한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기존 중재법은 중재위로 하여금 ‘언론 보도’에 의한 피해가 있을 경우 정정보도·반론보도·추후보도 등의 방식으로 피해구제를 조정하거나 중재하도록 규정해왔다. 그런데 개정안은 ‘침해배제 청구’라는 새로운 개념을 도입해, 중재위의 조정·중재 내용에 정정·반론·추후보도뿐 아니라 ‘기사 삭제’까지 포함시켰다. 또 언론 보도뿐 아니라 ‘펌글’ 등의 형태로 동일한 내용을 인터넷 상에서 복제·전파한 게시물, 기사 밑에 붙는 댓글 등에 대해서도 삭제·정정 등이 가능하도록 규정했다. 그동안 사법부에서 ‘기사 삭제’를 판결한 사례는 있지만, 행정기관의 성격을 갖고 있는 중재위가 스스로 ‘기사 삭제’ 권한을 자임하고 나선 것은 무척 이례적이다.

현재 인터넷상에서 명예훼손 등의 다툼은 당사자가 자율적으로 해결하거나, 이것이 어려울 경우 정보통신망법 등 여러 법령에 따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 등 심의기구의 조정 절차를 거친다. 언론 보도로 인한 다툼일 경우에는 중재위가 조정·중재 구실을 맡는다. 이들을 통해서도 결론이 나지 않으면 최종적으론 사법부의 판단에 기대게 된다.

그런데 개정안대로라면 중재위는 인터넷 공론장 전반에 강력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 예컨대 어떤 언론 보도가 피해자의 인격권을 침해했다고 판단하면, 중재위는 해당 언론사에게 정정·반론보도, 손해배상뿐 아니라 ‘기사 삭제’까지 담은 조정 결정을 내릴 수 있다. 기사에 붙은 댓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중재 결정 또는 재판 결과로 인격권 침해 사실이 확정되면, 피해자는 중재위에 해당 언론 보도와 동일한 내용을 담은 펌글 등 연관된 인터넷 게시물들에 대해서도 조정을 신청할 수 있다. 이 경우 중재위는 사이트 관리자 등에게 이를 삭제토록 하는 내용의 직권조정안을 통지하고, 7일 이내 게시자의 이의 제기가 없으면 게시물 삭제 등이 그대로 이행된다.

이에 대해 중재위는 “디지털 미디어 시대에 좀 더 실효성 있는 피해구제를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중재위가 자신의 권한을 지나치게 확대해 언론 및 표현의 자유를 광범위하게 침해할 우려가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토론회에서 이병선 카카오 이사는 “인격권 보호는 이미 다양한 법령에 의해 가능하다”며 “간편한 구제절차인 언론중재제도에서 민주주의 근간인 언론의 자유를 심각히 침해할 수 있는 ‘기사 삭제권’까지 넣어도 되는지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기사를 퍼나른 개인들에게 언론기관에 해당하는 책임을 물을 수 있는지, 이미 인터넷 게시글 전반에 대해 조정 구실을 하는 방심위와의 업무 영역이 중복되는 것 아닌지 등의 문제가 지적되기도 했다.

무엇보다 이번 중재위 개정안은 최근 행정기관들이 인터넷 게시물에 대해 삭제가 쉽도록 하는 방향으로 규제를 강화하려는 전반적인 흐름 위에 놓여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재위와 업무 영역 충돌이 우려되는 방심위의 경우, 최근 인터넷 명예훼손 게시물에 대해 당사자가 아닌 제3자가 심의를 신청할 수 있도록 추진해 논란을 일으켰다. 제3자 심의 신청을 허용하면, 명예훼손 관련 심의 신청이 폭증할 것이며, 유력인사들이 자신에게 불리한 인터넷 게시물들을 일괄적으로 삭제하는 데 악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 바 있다.

박경신 고려대 교수(법학전문대학원)는 “방심위는 방심위대로 인터넷 게시물에 대한 통제를 더욱 확대하려고 노력하고 있고, 중재위는 중재위대로 자신의 업무 영역을 디지털로 옮겨 ‘제2의 방심위’가 되겠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최근 인터넷을 통제하고자 하는 욕구가 다양하게 발현되고 있는데, 이처럼 행정·심의기구들이 권한을 키우면 키울수록 인터넷 공론장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윤여진 언론인권센터 사무처장은 “언론 보도에 의한 피해 구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필요성에는 십분 공감하지만, 행정기관들이 저마다 자신의 권한을 법적으로 강화하는 방향으로만 가면 표현의 자유를 광범위하게 침해할 우려가 크다. 언론사들이 문제가 된 자사 보도를 퍼나른 글들을 찾아 스스로 삭제·차단에 나서는 등 개별 언론사의 책임을 높이는 방향으로 사회적 합의를 모아야 한다”고 말했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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