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8일 전북 전주시 민주노총 전북지역본부 회의실에서 문주현 <참소리> 기자가 6년 동안 ‘불법파견’으로 일해온 비정규직 노동자 박아무개(40)씨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1인 매체 ‘참소리’ 기자 동행취재기
문규현 신부 발행인 2002년 창간
노동·환경 등 영역 심층취재 주력
창간초 3~4명 인력 1명으로 줄어
취재·편집에 방송출연 등 일정 빡빡
“대안언론 의미 부정당할 순 없어”
문규현 신부 발행인 2002년 창간
노동·환경 등 영역 심층취재 주력
창간초 3~4명 인력 1명으로 줄어
취재·편집에 방송출연 등 일정 빡빡
“대안언론 의미 부정당할 순 없어”
“제조업체 생산 라인에서 일용직을 쓴다는 게 말이나 됩니까? 그런데 지역 사회에 있는 중소기업이라 그런지 문제점이 잘 안 알려진 것 같아요. 기자님께서 꼭 좀 널리 알려주세요.”
지난달 28일 오후 1시께, 전북 전주시에 위치한 민주노총 전북지역본부 사무실에서 문주현(34) <참소리> 기자는 박아무개(40)씨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박씨는 전북 지역의 한 공장에서 6년 동안이나 근로계약서도 없이 일용직으로 일해왔다고 했다. 박씨의 말을 꼼꼼히 받아적으며 문 기자는 질문을 이어갔다. “그럼 정규직과 같은 라인에서 같은 일을 해온 건가요?” “네, 완전히 똑같아요. 그런데도 월급은 훨씬 적어요. 상여금 따위도 전혀 없고요.”
“고용노동청에 제소해서 지난달 ‘불법 파견’으로 인정받았다”는 박씨의 말을 듣고, 문 기자는 이 사건을 담당한 민주노총 전북지역본부 소속 공인 노무사를 찾아갔다. 고용노동청의 결정 내용과 주된 판단 근거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비정규직 문제를 여러차례 취재했었기에, 문 기자는 금세 사건의 전체 내용을 이해할 수 있었다.
“전북지역 다른 공장들에도 이런 일들이 많을 텐데, 실태가 거의 알려져 있지 않아서 답답합니다.”
노무사의 말에 문 기자도 나직이 한숨을 쉬었다. 취재를 더 많이 해서 알려야 한다는 부담감과 혼자 힘으로 해내야 한다는 압박감이 교차했다.
참소리는 전북 지역의 인터넷 대안매체다. ‘길 위의 신부’로 유명한 문규현 신부가 발행인을 맡고 있으며, ‘지역 사회의 진실된 목소리를 전하자’는 취지로 2002년 말에 창간됐다. 초창기에는 3~4명의 기자가 일하는 등 제법 규모가 있었고, 지역언론들이 ‘새만금 간척 사업’, ‘부안 핵폐기장 건설 추진’ 등에 대해 개발 논리를 앞세웠을 때 이를 정면으로 비판해 주목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2010년에 입사한 문 기자가 혼자서 꾸려가고 있는, 사실상 ‘1인 매체’에 가깝다. 재정은 150여명 정도 되는 후원 회원들의 십시일반에 거의 전적으로 기대고 있다.
“비용이라 해봤자 아주 적은 규모의 인터넷 호스팅 비용과 저 한 명의 인건비 정도만 필요하니까, 어떻게 보면 다행이죠. 다른 매체들처럼 지자체나 기업에서 광고 받으려고 영업할 필요도 없고…. 많은 지역언론들은 아직도 인쇄 비용을 감내하면서까지 종이신문을 펴내요. 그게 지역사회에서 ‘힘’으로 작용하고, 광고를 유치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되거든요.”
전북 익산에서 대학교를 졸업한 문 기자는 전주시민미디어센터에서 영상활동가로 일하다가 참소리로 ‘스카우트’됐다고 한다.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을 비판적으로 파헤친 ‘4대강 살리기’ 영상 프로젝트에 참여했었는데, 그 때 만난 참소리 기자로부터 함께 일하자는 제안을 받았다. ‘앞으로 멀티미디어 콘텐츠도 제작해보겠다’는 원대한 포부를 갖고 참소리에 들어왔지만, 기자 일에 적응하는 것만도 만만찮았다고 한다. 기자 일을 시작하자마자 당시 전북 지역의 최대 현안이었던 버스 파업이 시작된 것이다.
“처음에는 노조의 집회·시위들을 쫓아다니며 단편적인 소식들만 전하느라 정신이 없었어요. 그러던 어느날 노조에서 기습파업에 돌입한다는 연락을 받고 새벽에 현장으로 갔는데, 노조에 계신 분이 절 보고 ‘<문화방송>(MBC) 같은 방송사를 좀 불러다줄 수 없겠냐’고 하시더군요. 그 때 좀 충격을 받았어요. 그 분은 버스회사가 저지르고 있는 비리 등의 문제점을 심층적으로 보도해줄 매체가 필요한데, 참소리가 그런 구실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을 가지셨던 거지요. 그때부터 ‘무조건 심층취재를 하자’는 각오를 마음에 새기게 됐습니다.”
그 뒤로 문 기자는 다른 지역언론들과 차별화된 심층취재를 하기 위해 노력해왔다고 한다. 특히 ‘사각지대’인 노동문제와 환경문제는 문 기자의 주된 취재 영역이 됐다. 익산에서 산업용 전선·케이블을 만드는 한 업체가 샤워실 등에 폐회로텔레비전(CCTV)을 설치해 노조를 감시해왔다는 사실을 밝힌 보도(‘익산 DKC, 노동자 상대 4년간 나체동영상 촬영’, http://cham-sori.net/news/21866) 같은 경우 지상파 방송사 시사프로그램에서 뒤따라 보도할 정도로 파장이 큰 ‘단독’ 보도였다고 한다. <오마이뉴스>와 <참세상>에 공급했던, 3100원을 입금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해고된 버스 노동자를 다룬 보도(‘체불임금 5억 넘는 회사가 ‘3100원’ 때문에 기사 해고’,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832204)는 포털 뉴스 메인 화면에 걸리는 등 꽤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다. 문 기자는 “이래봬도 ‘단독’ 기사를 제법 많이 썼다”고 농을 치며 멋쩍게 웃었다.
오후 3시30분, 문 기자는 전주 시내에 있는 국립무형유산원으로 차를 몰았다. 방한 중인 비판적 교육학의 거장 마이클 애플 미국 위스콘신대 교수의 강연을 취재하기 위해서다. 한국 정부의 교과서 국정화 추진에 대해 거침 없는 비판을 내놓은 애플 교수는 이날 전북교육정책연구소 초청으로 ‘교육은 사회를 바꿀 수 있는가’를 주제로 강연을 하기로 되어 있었다. 문 기자는 청중이 빽빽이 들어 찬 강연장 한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애플 교수의 강연을 들으며 기사로 정리했다. 편집 인력이 따로 없기 때문에 기사 출고와 누리집 등록을 모두 혼자 해야 한다.
“기사 등록과 홈페이지 운영 같은 걸 혼자 다 해야 하니, 오늘처럼 일정이 많은 날은 좀 힘들죠. 오전에도 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는 시민단체의 기자회견을 기사로 처리했거든요. 다른 건 몰라도 홈페이지 운영이나 이런 부분에선 정부나 지자체 등으로부터 좀 도움을 받고 싶어요.”
애플 교수 관련 기사 등록을 모두 마친 뒤에는 시내 외곽에 있는 <전북시비에스(CBS)> 사옥으로 향했다. 문 기자는 2주에 한번씩 ‘사람과 사람’이란 생방송 시사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있는데, 마침 이날이 방송일이었다. 문 기자는 “아직 참소리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분들이 많으니, 오마이뉴스나 참세상에도 기사를 제공하고 라디오 출연도 하는 등 여러가지 통로를 통해 취재한 내용들을 알리려고 한다”고 말했다. 문 기자가 출연하는 코너 이름은 ‘을의 목소리’. 그동안 문 기자가 취재해온 비정규직 관련 내용들을 이야기하고 전화 연결을 통해 당사자의 목소리를 듣는 코너다. 이날 문 기자가 잡은 아이템은 한국지엠(GM) 군산공장에서 ‘대량해고’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이야기였다. 그는 한국지엠 군산공장은 물량 감소를 이유로 지난해부터 일감을 줄이고 하청 노동자들을 해고하는 등 ‘구조조정’을 진행하고 있는데, 그런 가운데 신규 비정규직을 채용해 비판을 받고 있다는 내용을 전했다.
라디오 출연을 끝내니 이미 해가 저물었다. 문 기자는 다시 시내로 차 머리를 돌렸다.
“저녁 7시부터 케이티(KT) 노동자들이 회사의 정리해고 정책에 반대하는 촛불집회를 열어요. 최근에 노조에서 단체협약에 정리해고와 관련된 조항을 넣자고 회사쪽에 제안했다는데, 이에 대해 ‘노사가 정리해고 정책을 공모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더라고요. 가서 직접 이야기를 들어봐야죠. 오늘은 밤 10시는 되어야 일을 모두 마칠 수 있겠네요.”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는 인터넷신문의 등록요건을 강화하는 내용을 담은 신문법 시행령 개정을 준비하고 있다. 현재 3명으로 되어 있는 ‘취재·편집 인력’ 기준을 5명으로 늘리는 한편, 등록 이후에도 이들의 상시고용을 증명하도록 하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현재 법제처 심사에 돌입했으며, 이달 중에 고시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를 추진하는 이유에 대해 문화체육관광부는 “‘사이비 언론’을 막고 ‘저널리즘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라고 밝히고 있다. 문체부의 개정안은 이미 등록된 매체들에게도 1년 동안 유예 기간을 거쳐 소급 적용할 방침이기 때문에, 현재 등록된 매체들도 1년 뒤 강화된 등록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면 등록이 취소된다. 이준희 인터넷기자협회 수석부회장은 “각계에서 반대 의견을 냈는데도, 문체부는 ‘강행’ 입장만 고수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사실상 ‘1인 매체’나 다름없는 참소리 역시 이를 피해갈 순 없다. 5명으로 인력을 늘리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에, 1년 뒤에는 등록 취소가 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이에 대한 생각을 묻자, 문 기자는 문득 지난 이야기를 길게 풀어놓았다.
“처음 참소리 기자로 일할 때, 도청·경찰청·교육청 같은 주요 관공서들로부터 ‘취재 거부’를 당하는 게 일이었어요. 기성 지역언론들은 ‘기자단’ 같은 걸 운영하는데, 거기에 끼지 않은 참소리 같은 매체들은 아예 언론 취급을 안하는 거죠. 취재 현장에 갔다가 경찰에게 목이 졸리거나 공무원들에 의해 집어던져진 적도 있어요. 지금도 도청에서 기자간담회를 연다고 해서 가보면, ‘회원사 기자가 아닌 사람은 나가달라’고 해요. 그런 일들을 수도 없이 겪다 보니, 나중엔 우리 사회에서 ‘작은 목소리’를 혐오하는 감정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치 일각에서 소수자, 여성, 장애인을 혐오하듯이, 작은 매체라고 하면 무슨 말을 하는지 들어보지도 않고 무턱대고 ‘너희들이 언론이냐’ 하면서 혐오하는 것 같아요.”
문 기자는 무엇보다 ‘사이비 언론 방지’, ‘저널리즘의 질 제고’ 등 문체부가 내세우는 명분 자체에 동의할 수 없다고 했다. 지역사회에서 협박성 기사로 광고를 받아내는 인터넷 매체들이 아예 없다고 단언할 순 없지만, “그런 일들은 광고주들과 줄다리기를 할 수 있을 정도의 힘이 있는, 주로 신문을 펴내는 매체들에서 벌어진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전북민주언론시민연합은 최근 “전북지역 유력 광고주 가운데 하나인 ㅈ은행이 출입기자 10여명에게 외유성 출장을 제공했다”고 폭로한 적 있는데, 여기에는 대체로 지역신문 소속 기자들이 연루됐다고 한다. 문 기자는 “언론 취급도 제대로 안 해주는데, 작은 매체들이 무슨 수로 협박성 광고를 받아낼 수 있겠느냐”고 지적했다.
‘저널리즘의 질 제고’란 명분에 대해서도, 문 기자는 “우리 같은 작은 매체들은 인력의 한계로 어차피 기사를 많이 생산해낼 수 없기 때문에, 대신 심층 보도에 주력한다. 주류 매체의 눈이 닿지 않는 사각지대를 찾아내고 이를 알리기 위해서는 심층 보도가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한마디로 말해 작은 매체들에게는 심층 보도가 유일한 경쟁력이라고 할 수 있는데, ‘저널리즘의 질 제고’와 같은 명분 역시 역시 현실과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문체부의 신문법 시행령 개정안에 대한 반발의 목소리는 앞으로 더욱 커질 전망이다. 다만 문체부가 강행 의지를 고수하는 한 별다른 대응 방법이 없다는 것이 문제다. 문 기자는 “이달 초 지역사회에 있는 진보적인 대안언론들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대응 방안 등을 논의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여기에 참여하는 매체들은 참소리를 비롯해 대구 지역의 <뉴스민>, 서울에 있는 <참세상>, 충청 지역의 <미디어충청>, 울산 지역의 <울산 저널>, 서울에 있는 장애인 언론 <비마이너> 등이라고 했다. 개정안을 강행하고 있는 문체부는 이들 작은 매체들의 존재에 대해 “등록이 취소되어도 언론 활동은 계속할 수 있다”고 말한다. 등록된 상태인 현재에도 이른바 ‘주류’로부터 외면당하는 대안매체들에게, 아예 더 외진 곳으로 가라는 말과 다름 없다. 문 기자는 “등록이 취소되어도 언론 활동을 계속할 수 있다는 말도 비현실적이지만, 무엇보다도 그동안 힘들게 쌓아왔던 풀뿌리 대안언론·시민언론의 활동과 의미를 이렇게 간단하게 부정당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강한 의지를 내보였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전북지역 대안언론 참소리 첫 화면. 참소리는 2002년 창간된 인터넷신문으로, ’길 위의 신부’로 알려진 문규현 신부가 발행인을 맡고 있다.
지난달 28일 오전 11시 문주현 기자가 전북교육청에서 열린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 기자회견을 취재하고 있다.
오후 5시30분 문 기자가 전북시비에스 생방송 시사프로그램 ‘사람과 사람’에 출연해 진행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날 문 기자는 한국지엠 군산공장의 비정규직 대량해고 사태를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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