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방송’(KBS)이 언론노조가 추진하는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현업 언론인 시국선언’에 참여하는 것은 취업규칙 위반이며 인사상 불이익 처분을 받을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복무지침을 3일 내부 통신망에 공지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언론노조)이 추진하고 있는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현업 언론인 시국선언’과 관련해, <한국방송>(KBS)이 “참여하면 인사상 불이익 처분을 받을 수 있다”며 구성원들의 목소리를 단속하고 나섰다. 앞서 지난달 28일 <연합뉴스>도 “시국선언에 참여하면 사규에 따라 엄정 조치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국가기간’ 방송사와 통신사가 국정교과서에 사활을 건 정부의 입맛에 맞춰 내부 ‘잡도리’에 나서는 모양새다.
한국방송 회사 쪽은 2일 전국언론노조 한국방송본부(새노조)에 금동수 부사장 명의로 ‘전국언론노조 시국선언 참여 관련 복무지침 시행’ 제목의 공문을 보내고, 같은 내용을 3일 내부 통신망에 공지했다. 공문과 내부 통신망 공지에서 회사는 “전국언론노조의 한국사 국정교과서 반대 시국선언 결의와 관련, 공사직원이 이에 참여하는 것은 취업규칙 제7조에 위반된다”며 “사규에 따라 인사상 불이익 처분을 받을 수 있다”고 밝혔다.
언론노조는 지난 22일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는 현업 언론인들의 시국선언을 조직하기로 결정하고, 지본부 소속 언론인들의 서명을 받아왔다. 시국선언은 의견광고 형태로 4일부터 신문지면 등에 게재될 예정이다. 한국방송에서는 1400여명이 시국선언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방송의 취업규칙 제7호에는 “정치활동에 참여하거나 정치단체의 구성원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규정되어 있다. 곧 회사 쪽은 국정교과서를 반대하는 시국선언에 참여하는 것을 ‘정치활동’이라고 본 것이다. 공문과 공지에서도 회사는 “시국선언 참여는 집단적인 정치적 의사표시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새노조를 비롯해 내부 구성원들은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회사가 ‘정치활동’의 범주를 자의적으로 재단하고 있다는 비판과 함께, 이런 ‘잡도리’의 배경에 정부의 입김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한국방송의 한 기자는 “지난해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언론인 시국선언과 의견광고 게재가 있었는데, 당시 회사는 이에 대해 아무런 입장도 밝히지 않았다. 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는 것이 왜 ‘정치활동’인지 이해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새노조 관계자는 “회사가 ‘정치활동’을 자의적으로 해석해 표현의 자유를 억누르고 있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일각에서는 지난해 2월 민경욱 전 청와대 대변인이 현직 보도국 부장으로 일하다가 청와대 대변인으로 ‘직행’했던 일을 비교 사례로 들어, 이번 회사 조처가 부적절하다고 꼬집고 있다. 한국방송의 한 기자는 사회관계망서비스에 올린 글에서 “민씨에 대해 ‘정치활동’ 관련된 윤리강령 위반 논란이 일었을 때, 회사는 ‘정치활동은 국회의원 등 선출직이나 당적을 가지고 정당 활동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강변했다. 이랬던 회사 쪽이 국정교과서 반대 성명 참여를 정치활동 참여에 해당한다며 징계하겠다고 하니 지나가던 개도 웃을 일”이라고 밝혔다. 한국방송 윤리강령 1조는 “TV 및 라디오의 시사 프로그램 진행자, 정치 관련 취재 및 제작 담당자는 공영방송 KBS의 이미지에 사적 활용을 막기 위해 해당 직무가 끝난 후 6개월 이내에는 정치활동을 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한국방송 홍보실 관계자는 “윤리강령과 취업규칙의 ‘정치활동’은 그 의미가 다르다”며 “윤리강령은 한국방송 이미지의 사적 활용을 막기 위한 제한적인 의미가 크고, 그에 견줘 취업규칙은 좀 더 포괄적인 ‘정치활동’을 규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연합뉴스에서도 똑같은 일이 있었다는 점 때문에, 정부가 정부에게 재정을 기대는 국가기간방송사와 통신사에 영향력을 행사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된다. 연합뉴스는 지난달 28일 연합뉴스 노조에 공문을 보내 “국가기간뉴스통신사의 기자가 시국선언에 참가하는 것은 일반 국민을 비롯해서 대외적으로 연합뉴스의 보도 객관성에 심각한 우려를 줄 수 있다”며 “참가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사규에 따라 엄정히 조치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개별 조합원에 대한 향후 불이익을 고려한 연합뉴스 노조는 시국선언에 연합뉴스 노조 이름으로 참여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 새노조 관계자는 “연합뉴스와 한국방송 회사 쪽이 거의 비슷한 내용의 무리한 조처를 잇따라 내린 것에는 정부의 압박 등 공통된 배경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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