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서울역에서 시민들이 황교안 국무총리가 역사교과서 국정화 관련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는 모습을 티브이로 시청하고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정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을 강도 높게 비판해온 <한겨레>가 논조와 배치된 교육부 광고를 실어 신문사 안팎에서 논란이 일었다. 기사와 광고를 분리해야 한다는 ‘분리 원칙론’과 기사와 광고가 함께 콘텐츠를 구성한다고 보는 ‘분리 불가론’의 팽팽한 대립 외에도 저널리즘 차원에서 고민해야 할 다양한 논란들이 터져나왔다. 이들 논란을 짚고 지금보다 ‘더 나은’ 저널리즘으로 나아가기 위한 방안도 모색해본다.
‘기사-광고 분리 원칙론’ 찬반
“기사와 다른 의견광고도 보호받아야”
“형식논리일 뿐…광고도 기사의 요소”
■ 기사-광고, 분리냐 일체냐
교과서 국정화를 둘러싼 사회적 공방이 뜨겁던 지난달 19일치 <한겨레> 1면에 교육부 광고가 실렸다. ‘올바른 역사관 확립을 위한 교과서를 만들겠습니다’라는 제목의 의견광고였다. 한겨레는 임원진의 논의를 거친 뒤, 불법·허위·명예훼손 등 신문광고 윤리강령을 위반하지 않았다고 판단해 광고를 실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파문이 확산됐다. 항의전화와 취재 현장에서 한겨레 기자들에 대한 항의 등 독자들의 반발이 이어졌다.
언론학자들의 견해는 하나로 수렴되지 않는다. 오히려 의견 대립이 도드라진다. 한쪽은 기사와 광고의 분리가 광고를 주된 수익원으로 삼게 된 근대 언론산업이 광고주의 입김에서 보도 영역을 지키기 위해 만든 중요 원칙 가운데 하나라고 본다. 신태섭 동의대 교수는 “반인륜, 파시즘, 인종주의, 종교와 시민에 대해 자유를 제한하는 주장을 담은 광고는 배제해야 한다. 그러나 이런 선을 넘지 않는 한 기사와 다른 목소리의 광고도 실어야 한다”고 짚었다.
광고도 기사의 한 구성요소로 보는 학자들은 기사-광고 분리론이 형식논리일 뿐이라고 비판한다. 디지털의 파편화된 기사와 달리 종이신문 독자는 기사와 광고 지면을 같이 보는 총체적 소비를 하기 때문에 지면과 광고는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는 견해다. 권혁남 전북대 교수는 “정론지라면 자신들이 지향하는 가치나 논조에 반하는 내용의 정부 정책광고는 유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사회적으로 찬반 이슈가 뜨겁고 중대한 현안일수록 기사와 배치된 광고는 독자들에게 실망감을 줘 결국 신문의 신뢰도 추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표현의 자유”-“사회적 책임” 논쟁
“관점 달라도 표현자유 차원서 봐야”
“정부가 세금으로 광고…현실 감안을”
정치권력, 예산 쥐고 비판언론 차별
국정 홍보비 감시·견제할 제도 절실
한국 언론 현실 아는 독자들 분노
게재 기준 정비해 동감 얻어내도록
지난 10월19일치 <한겨레> 1면 하단에 실린 교육부의 의견광고.
■ 표현의 자유냐 사회적 책임이냐
‘의견광고’는 언론에 접근하기 어려운 개인과 집단의 ‘접근권’ 보장 차원에서 나왔다. 미국의 <뉴욕 타임스>는 의견광고 게재 기준과 관련해 “어떤 주제에 대해서든 우리의 편집 관점과 관계없이 모든 관점에 개방할 의무가 있다”며 포용성을 강조하고 있다. 김민기 숭실대 교수는 “의견광고는 표현의 자유 영역에 들어간다. 논쟁적인 사안의 주의, 주장을 다룬 의견광고는 나와 뜻이 다르더라도 소송중인 사안이나 명예훼손, 비방, 허위사실 등을 적시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오늘날 언론이 처한 현실은 이런 해석과 사뭇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정부가 논쟁적인 현안에 국민의 세금으로 대대적인 프로파간다를 펼치는 것은 표현의 자유나 접근권과는 전혀 무관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광고 지면이 무료가 아닌 한, 정부와 대립하는 쪽의 접근권은 오히려 제약되는 셈이다.
눈에 보이는 의견광고는 그나마 나은 편이다. 정부가 홍보대행사를 통해 언론사에 돈을 주고 정부정책을 홍보하는 ‘턴키 홍보비용’이 지난 4년 동안 400억원을 넘어섰고, 상당수 언론이 그 돈을 받고 기획기사를 써온 사실이 드러난 건 최근의 일이다.(<한겨레> 8월25일치 19면 ‘“노동정책 4단 기사 얼마죠?” 정부, 돈 주고 기사생산 주문’) 돈으로 포장된 기획·특집기사들이 저널리즘을 좀먹고 있는 것이다. 김성해 대구대 교수는 “이런 현실에서 여론 다양성 등을 들어 정부광고를 실어야 한다는 논리 자체에 허구적인 면이 강하다”고 지적했다.
■ 정부광고 견제하는 시스템 시급
이명박 정부를 거쳐 박근혜 정부로 이어지는 비판언론에 대한 차별과 배제는 갈수록 심해지고 있고, 정부광고 또한 예외가 아니다. 이번 광고 논란과 관련해 한겨레 광고담당자는 “정부광고 차별뿐 아니라 숱한 기획기사들이 돈으로 거래되는 혼탁한 언론환경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광고주들은 ‘좋은 기사를 써줘야지 이렇게 비판기사를 써놓고 어떻게 광고를 달라고 하느냐’며 광고 집행을 꺼리는 게 광고영업 현실”이라고 전했다.
광고는 모든 언론사에 기본적인 물적 토대다. 정치권력은 이런 취약점을 노려 광고 게재 여부와 무관하게 꽃놀이패를 쥐고 계속 공략할 것이라는 관측이 높다. 정부는 아무런 규제장치도 없이 프로파간다나 다름없는 의견광고를 무차별 게재할 수 있고, 심지어 차별해서 게재할 수도 있다. 이런 환경을 바꾸기 위해 국가예산에서 사각지대인 국정홍보비를 감시·견제하는 법·제도가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의견광고가 ‘금권의 폐해’가 되지 않도록 사회적 약자들에게 열린 공간이 될 수 있는 다양한 방안을 검토할 필요도 있다. 미국에서는 1960년대 금연 논쟁이 한창일 때 담배 광고회사들이 티브이 광고에 의견광고를 내자 정보통신 분야를 규제·감독하는 행정기관인 연방통신위원회가 형평성 원칙을 들어 금연 주창자들에게도 반론권을 보장하는 광고비를 함께 지불하라고 권고했다. 이에 흡연 광고가 사라진 바 있다.
■ 해법은 결국 독자에게서 찾아야
교육부 광고 게재에 대한 언론학자들의 이런 이론적 견해에도 독자들이 비판적인 태도를 보이는 이유는 뭘까. 이준웅 서울대 교수는 “세계적인 정론지 <뉴욕 타임스>도 논조와 다른 독한 광고를 싣듯이 한겨레가 정부 의견광고를 실었다고 본다”면서도 “독자들은 편집권과 광고가 분리되지 않는 한국 언론의 일반적인 현실을 알기에 분통을 터뜨리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김춘식 한국외대 교수도 “독자들이 그동안 한겨레가 지닌 ‘공공적’인 성격에 공감해왔기 때문에 비판도 그만큼 거센 것”이라고 진단했다.
독자들의 동의와 공감을 끌어내려면 광고 게재 기준 등이 더욱 세밀하게 정비되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국언론노조는 “앞으로 심도있게 논의하고 신중하게 결정하는 내부 시스템이 작동할 수 있도록 심의기구가 강화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김성해 교수는 “현실적으로 기사와 광고 사이에는 사각지대가 존재한다”며 “언론이 독자에게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형식논리가 아니라 이 사각지대를 얼마나 철저히 관리하느냐가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김동규 동명대 교수는 “한겨레 창간의 물적 토대가 됐던 국민주 모금의 슬로건은 ‘민주화는 한판의 승부가 아닙니다’였다. 더 나은 저널리즘으로 가는 길도 독자의 신뢰를 얻어가기 위한 지속적인 노력에서 찾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현숙 최원형 기자
hyuns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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