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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미디어

[미디어 전망대] 객관주의 로망을 넘어서 / 강형철

등록 2015-11-16 20:04

한국 신문과 방송 뉴스에 대해 탄식하는 소리가 크다. 이것들은 정작 보도해야 할 중요 이슈들은 외면한 채 엉뚱한 이야기로 눈을 돌린다. 중요한 것을 보도하더라도 정파적으로 불리하다면 이른바 물을 타거나 사실을 왜곡한다.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는 안 된다”며 칼럼과 사설로 반대하던 신문이 하루아침에 돌변해 국정은 선이고 검정은 악인 양 보도한다. 일반인도 자신의 말을 바꿀 때는 “할 말 없다”고 하거나 “사정이 생겨서”라고 하며 고개를 숙인다. 그러나 한국 언론에 사과나 변명 따윈 없다.

객관적으로 보도하라는 기대는 우리의 ‘로망’일 뿐이다. 객관주의 언론은 실현 불가능한 이상이 됐다. 예를 들어, 지난달 말 전국 역사학 대회가 열린 서울대에 보수단체 회원들이 찾아가 훼방한 사건을 보자. 이 광경을 목격한 한 시민이 지인에게 이야기했다. “서울대에 역사학자들이 모여 세미나를 열더라고. 그런데 어떤 사람들 수백명이 찾아와 시위를 벌이며 방해하는 바람에 난장판이 됐어.” 저널리즘 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도 할 수 있는 자연스런 목격담이다. 그러나 한 신문은 이 사건을 보도하면서 “좌·우 충돌로 몸싸움·실신”이라는 제목을 달아 물을 탔다. 기자 생각에 불청객들은 우파이고 학자들은 좌파이니 ‘좌우충돌’이라는 것이다. 현실에서는 이렇게 자연스럽지 않은, 의도를 지닌 주관적 보도가 일반적이다.

근본적으로는 보도란 것이 객관적일 수 없다. 사실들을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즉 뺄 것은 빼고 키울 것은 키우면서 객관성은 사라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론인들은 프로페셔널리즘을 공유하며 자본과 권력에 맞선 객관주의 이상을 실현하고자 노력해왔다. 하지만 무한경쟁의 현 미디어 환경은 프로페셔널리즘을 압도한다. 한쪽 편에 확실히 서서, 편 갈린 독자들의 생각을 강화하고 부추기는 ‘날이 선’ 언론만이 살아남는다. 객관주의, 즉 나그네의 관점을 지닌 언론은 현실성이 없다.

누가 “이렇게 말했다”며 가감 없이 그대로, 즉 객관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오히려 현실을 왜곡한다. 한국 언론은 국정 교과서 관련 정부·여당의 주장을 그대로 전달하면서 무서운 선전도구가 되고 있다! 객관주의는 기자 자신들의 사회적 지위를 확보하기 위한 명분으로만 활용된다. 언론사들은 ‘불편부당’을 사시로 내세우고, 기자들은 피동형과 직·간접인용 등의 ‘기사체’로 자신들이 객관적임을 가장한다.

객관주의 로망에 근거해 언론인들을 ‘기레기’라고 비난만 해서는 현실 개선에 큰 효과가 없다. 언론인 개개인은 전문인이 아니라 자본과 권력에 눌린, 너무도 초라한 노동자에 불과해졌다. 이 마당에 객관적이지 않은 보도 내용을 비판하는 것은 약간의 ‘눈치 보기 효과’만 얻어낼 수 있을 뿐이다.

강형철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
강형철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
이제 언론 지형 변화에 관심을 더 두어야 한다. <미디어오늘>의 분석을 보면, 한국 보수 신문과 진보 신문의 발행부수는 9대 1, 방송사 메인 뉴스 시청률로 본 보수와 진보의 차이는 17대 1이다. 하나의 언론 또는 하나의 기사 안에서 객관성을 유지하라고 외쳐봐야 별 소용이 없다. 주관성 또는 정파성을 지닌 수많은 언론과 기사들 사이에 균형을 맞추는 것이 더 중요하다. 진보적 종합편성 채널과 보도 채널 추진을 고려해봐야 한다. 진보 언론 구독 운동도 벌일 만하다. 공영방송과 공영통신사가 당대 정권의 전리품이 되지 않도록 제도화하는 것도 필요하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보정하려는 노력으로 무게 중심을 옮겨야 한다.

강형철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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