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오후 서울 종로구 한 식당 텔레비전에 종합편성채널 방송이 나오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월요 리포트] 종편 4년-노장층 파고드는 종편
“기자 양반이 어째 우리보다도 세상일을 더 몰라. 우리는 방송만 봐도 이렇게 훤한데.”
지난 25일 오전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정자동 한 아파트단지 경로당에서 만난 60대 후반의 임경자(가명)씨는 최근 최윤희 전 합동참모본부 의장이 검찰에 소환된 사건을 설명하며 자신의 해박한 시사 상식을 자랑했다. 마침 임씨를 비롯한 노인 서너명은 <티브이조선>을 틀어놓고 이야기를 나누던 참이었다. 이들이 ‘세상일’을 접하는 거의 유일한 통로는 종합편성채널 시사토크 프로그램이다. 낮시간에는 늘 티브이조선이나 <채널에이>를 틀어놓는다고 한다.
지상파 공백시간대 시사토크 집중
노년층 세상 보는 창으로
야당·노동계 비판할 때마다 “옳지!” 팔순을 넘겼다는 김아무개씨는 “우리같이 밥 지어 먹는 게 일인 사람들이야 방송 보면서 세상일을 알지”라고 말했다. 또 “지상파 방송 뉴스는 너무 짧아서 무슨 말인지 알아듣기 힘들었는데, 종편 방송은 여러 사람이 나와서 길게 말하니까 이해하기 쉽다”고도 했다. ‘쾌도난마’, ‘박대장’, ‘김승련의 뉴스 톱텐’ 등 자주 시청하는 종편 프로그램들을 줄줄이 꿰는 임씨는 “그전에는 뉴스 같은 거 거의 안 봤는데, 종편이 생긴 뒤로 우리가 좀 유식해졌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종편은 이들에게 “누가 나쁜 놈인지 알려주는 방송”이었다. ‘데모’(지난 14일 열린 민중총궐기 집회)를 일으킨 사람들, 이를 주도하고 조계사에 피신한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 이들을 감싸는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대통령을 조사하겠다는 세월호참사특별조사위원회 등이 주로 ‘나쁜 놈’으로 성토됐다. 이들이 한 명씩 비판의 도마 위에 오를 때마다 노인들은 “옳지”, “그렇지” 하며 적극적으로 동조했다.
“참새보고 꿩이라 계속 말하면 꿩이 돼버리듯…” 딱히 볼만한 게 없는 평일 낮시간
심심풀이로 보다가 일상화
“꼭 알아야 할 내용은 아니지만
노력 안해도 귀에 쏙 들어오니…” “종편은 한쪽으로 편향됐고
지상파는 비판도 시각도 없어”
지상파서 포맷 베끼기까지
저널리즘 하향 평준화 우려 “방송이 정부·여당 쪽으로만 치우쳤다고 생각하진 않느냐”고 묻자 이들은 강하게 부정했다. 김씨는 “여러 사람이 나와서 이야기하니까, 방송은 딱히 치우칠 게 없다. 야당 성향 사람들이 나오면 맨날 부정적인 얘기, 발목 잡는 얘기만 하니까 듣기가 싫은 것뿐”이라고 했다. 임씨는 “우리는 여당, 야당 안 가리는 무당파”라며 “방송에서 누가 나쁜 놈인지 알려주면, 우리 같은 개미떼들은 선거에서 그런 사람들 안 찍어주면 된다”고 말했다. 종편은 이곳 노인들에게 세상을 보는 창이자 쉬운 학습서였다. 그리고 오른쪽이 아니라 ‘중심’이었다. 지난 24일 오후 2시30분께 찾은 서울 종로구 종로3가 근처의 한 식당. 벽에 걸린 대형 티브이에서는 채널에이의 시사토크 프로그램이 방송되고 있었다. 가게의 ‘채널 선택권’을 쥐고 있다는 업주 신아무개(56)씨는 “이 시간대에는 늘 이 프로그램을 틀어놓는다. 이거 끝나면 엠비엔으로 넘어갔다가, 저녁 6시 되면 ‘6시 내고향’을 시작으로 지상파 방송을 주로 본다”고 말했다. “낮시간대에 다른 채널에 볼 게 별로 없고, 시사 프로그램을 틀어놓는 게 좋아서 종편을 본다”는 것이다. “뉴스를 틀어달라”는 손님들의 잦은 요구도 그런 결정에 한몫한다고도 했다. 신씨는 종편의 시사 프로그램에 대해 “지상파 뉴스보다 현실적이고 직접적”이라며 후한 점수를 줬다. “지상파는 아무래도 공영방송이니까 해야 할 말을 다 못하고 있는 느낌이 든다. 정부 비판은 찾아볼 수 없고, 정부가 하는 말을 다 그대로 틀어주는 수준”이라고 했다. 반면 종편은 “어떤 주제든 가감없이 이야기하고, 그 속에 신랄한 비판이 있다”고 했다. 예컨대 선거가 있으면, 지상파 뉴스에서는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지역적 판세 등을 대놓고 이야기하지 않지만, 종편은 누가 어디에 출마한 데에 어떤 배경이 있는지 등을 세세하게 말해준다는 것이다. 반면 신씨는 “종편이 한쪽으로 편향됐다”는 지적에도 동의한다고 했다. “너무 강한 말로 한쪽을 신랄하게 공격하는데, 그렇게 하면 상대를 ‘빨갱이’로 만들기 쉽잖아요. 그런데 요즘 세상에 ‘빨갱이’란 게 있나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가끔은 ‘내가 세상을 잘 모르고 있는 것 아닌가’ 생각도 들고….” 신씨는 요즘 세상은 ‘진보’와 ‘보수’가 아니라, ‘중도 보수’와 좀 더 극단적으로 나아간 ‘완전 보수’로 나뉜다고 봤다. “‘완전 보수’인 사람들이 종편에 많이 나와서 무리한 주장을 펴는 것은 좀 고쳐졌으면 좋겠다”고도 했다. 반면 지상파 방송에 대해서는 “아무런 비판도, 시각도 없는 정부 방송 같다”고 비판했다. 신씨에게 종편은 편향적이되 할 말은 하는 비판언론이었다. 같은 날 오후 5시께 찾은 서울역 근처의 한 이발소에서는 <엠비엔>시사토크 프로그램을 틀어놓고 있었다. 50대 여성인 업주 이미경(가명)씨는 “사건사고 등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가 많이 나와서 주로 이걸 틀어놓는다”고 했다. 같은 시간대에 지상파에는 그렇게 볼만한 프로그램이 없다는 것도 이유였다. 정치·시사, 연예인, 사건사고 등 다양한 주제를 두고 이야기를 나누는 프로그램들이 대부분인데, 자신의 주된 관심사는 사건사고 쪽이라고 했다. 정치 관련 이슈는 별로 관심이 없는 반면 ‘생활 정보’에 관심이 많다는 것이다. “사기사건 같은 건 진짜 ‘내가 피해자가 될 수 있겠구나’ 생각이 들잖아요. 그럴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까지 자세히 알려주니까 좋죠. 전직 형사, 변호사 같은 사람들이 나와서 말해주니까 신뢰도 있고.” 방송에서 본 정보들은 친구들과 대화하는 데도 쏠쏠한 도움이 된다고 했다. 이씨는 “방송에 나오는 내용은 꼭 알아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별로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귀에 들어오고 알게 되니, 어쨌든 좋은 것 아니냐”고 했다. 종편이 생기기 전에는 주로 라디오를 틀어놨다고 한다. 이씨는 “틀어놓으면 계속 흘러나온다는 점에서 비슷하다”며 “그러고보니 라디오가 종편으로 대체된 셈이다. 종편 보기 시작한 뒤로는 라디오를 한 번도 안 틀었다”고 했다. 이씨에게 종편은 친절한 삶의 동반자이자 습관이었다.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 있는 한 대중목욕탕 탈의실에서도 종편을 자주 틀어놓는다. 25일 저녁 6시께 만난 60대 업주 차승배(가명)씨는 “케이블 방송을 이리저리 돌려가면서 틀긴 하는데, 채널에이나 티브이조선 같은 걸 자주 틀어놓게 된다. 가끔 손님들이 그걸 보면서 정치 토론을 벌이곤 한다”고 말했다. 반면 차씨 자신은 종편에 대해 비교적 비판적이었다. “뉴스만 너무 많이 해요. 사실상 같은 내용인데, 이 채널에서도 그 얘기, 저 채널에서도 그 얘기야. 패널들도 한쪽으로 치우친 사람들만 나오고.” 차씨는 “너무 한쪽으로 치우친 얘기만 많이 나오면 보는 사람들이 영향을 받을 수도 있다. 참새보고 꿩이라고 계속 말하면 꿩이 되어버리는 이치 아니냐”고 말했다. 그는 “종편이 교양 프로그램 같은 것도 많이 만들고, 패널도 다양한 사람들을 출연시켜야 좀 더 볼만할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도 종편을 자주 트는 이유는 뭘까. “같은 시간대에 다른 방송에는 별로 볼 게 없어서요.” 예전에는 케이블에서 해주는 지상파 재방송 같은 걸 주로 틀어놨는데, 종편이 생긴 뒤로는 세상 돌아가는 일도 좀 들어볼 겸 채널 선택이 자연스럽게 종편 쪽으로 쏠리게 됐다는 것이다. 차씨에게 종편은 마뜩잖지만 딱히 대안이 없는 심심풀이였다. 곧 출범 4년째를 맞는 종편은 ‘종편 저널리즘’이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저질 방송’, ‘막말 방송’ 등의 비판이 거센 가운데서도 어느새 사람들의 생활 속으로 깊이 스며들었다. 개별 가구뿐 아니라 음식점, 이발소, 목욕탕 등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서 종편이 켜져 있는 모습도 더는 낯설지 않게 되었다. 지상파와 인접한 ‘황금채널’, 보도 영역까지 다룰 수 있는 ‘종합편성’의 성격, 지상파의 공백이라 할 수 있는 낮시간대 공략 등 다양한 요인이 맞물린 결과로 풀이된다. 김경환 상지대 교수(언론광고학)는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보수화에서 첫번째 원인을 찾았다. 종편은 극우에 가까울 정도의 보수적인 메시지를 주로 전달하고, 시청자들은 이를 통해 자신들의 보수적인 생각을 더욱 강화한다. 어느 것이 먼저라고 규정하긴 어렵지만, 이 사이에는 서로를 ‘확대재생산’ 해주는 끈끈한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지상파 방송의 영향력 하락도 중요한 변수다. 김 교수는 “종편은 지상파 방송이 독점하던 뉴스 영역에 진출해, 지상파가 실행하지 못한 전략을 앞세워 영향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고 진단했다. 종편은 내용의 진위를 떠나 시사적인 이슈와 그 배경을 대화하듯 친근하게 전달해주는 형식을 개발해냈다. 지상파 방송의 압축적이고 기계적인 보도 형식과 시사 프로그램 축소에 따른 공백을 종편이 채워넣었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종편의 문제는 편향된 내용과 막말에 그치지 않는다. 종편이 뿌리내릴수록 저널리즘뿐 아니라 사회 전반이 ‘하향평준화’하고 있다. 김동원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강사(언론학 박사)는 “노인층에서는 종편에서 나온 내용이 자주 대화 소재가 되는가 하면 패널들이 쓰는 용어를 그대로 따라 쓰는 현상도 눈에 띈다”며 “더구나 지상파 방송이 낮시간대 프로그램에서 종편의 포맷을 베끼는 흐름까지 생기면서 우리 사회 대화 방식과 담론 지형이 크게 변해가고 있다”고 말했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노년층 세상 보는 창으로
야당·노동계 비판할 때마다 “옳지!” 팔순을 넘겼다는 김아무개씨는 “우리같이 밥 지어 먹는 게 일인 사람들이야 방송 보면서 세상일을 알지”라고 말했다. 또 “지상파 방송 뉴스는 너무 짧아서 무슨 말인지 알아듣기 힘들었는데, 종편 방송은 여러 사람이 나와서 길게 말하니까 이해하기 쉽다”고도 했다. ‘쾌도난마’, ‘박대장’, ‘김승련의 뉴스 톱텐’ 등 자주 시청하는 종편 프로그램들을 줄줄이 꿰는 임씨는 “그전에는 뉴스 같은 거 거의 안 봤는데, 종편이 생긴 뒤로 우리가 좀 유식해졌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종편은 이들에게 “누가 나쁜 놈인지 알려주는 방송”이었다. ‘데모’(지난 14일 열린 민중총궐기 집회)를 일으킨 사람들, 이를 주도하고 조계사에 피신한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 이들을 감싸는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대통령을 조사하겠다는 세월호참사특별조사위원회 등이 주로 ‘나쁜 놈’으로 성토됐다. 이들이 한 명씩 비판의 도마 위에 오를 때마다 노인들은 “옳지”, “그렇지” 하며 적극적으로 동조했다.
“참새보고 꿩이라 계속 말하면 꿩이 돼버리듯…” 딱히 볼만한 게 없는 평일 낮시간
심심풀이로 보다가 일상화
“꼭 알아야 할 내용은 아니지만
노력 안해도 귀에 쏙 들어오니…” “종편은 한쪽으로 편향됐고
지상파는 비판도 시각도 없어”
지상파서 포맷 베끼기까지
저널리즘 하향 평준화 우려 “방송이 정부·여당 쪽으로만 치우쳤다고 생각하진 않느냐”고 묻자 이들은 강하게 부정했다. 김씨는 “여러 사람이 나와서 이야기하니까, 방송은 딱히 치우칠 게 없다. 야당 성향 사람들이 나오면 맨날 부정적인 얘기, 발목 잡는 얘기만 하니까 듣기가 싫은 것뿐”이라고 했다. 임씨는 “우리는 여당, 야당 안 가리는 무당파”라며 “방송에서 누가 나쁜 놈인지 알려주면, 우리 같은 개미떼들은 선거에서 그런 사람들 안 찍어주면 된다”고 말했다. 종편은 이곳 노인들에게 세상을 보는 창이자 쉬운 학습서였다. 그리고 오른쪽이 아니라 ‘중심’이었다. 지난 24일 오후 2시30분께 찾은 서울 종로구 종로3가 근처의 한 식당. 벽에 걸린 대형 티브이에서는 채널에이의 시사토크 프로그램이 방송되고 있었다. 가게의 ‘채널 선택권’을 쥐고 있다는 업주 신아무개(56)씨는 “이 시간대에는 늘 이 프로그램을 틀어놓는다. 이거 끝나면 엠비엔으로 넘어갔다가, 저녁 6시 되면 ‘6시 내고향’을 시작으로 지상파 방송을 주로 본다”고 말했다. “낮시간대에 다른 채널에 볼 게 별로 없고, 시사 프로그램을 틀어놓는 게 좋아서 종편을 본다”는 것이다. “뉴스를 틀어달라”는 손님들의 잦은 요구도 그런 결정에 한몫한다고도 했다. 신씨는 종편의 시사 프로그램에 대해 “지상파 뉴스보다 현실적이고 직접적”이라며 후한 점수를 줬다. “지상파는 아무래도 공영방송이니까 해야 할 말을 다 못하고 있는 느낌이 든다. 정부 비판은 찾아볼 수 없고, 정부가 하는 말을 다 그대로 틀어주는 수준”이라고 했다. 반면 종편은 “어떤 주제든 가감없이 이야기하고, 그 속에 신랄한 비판이 있다”고 했다. 예컨대 선거가 있으면, 지상파 뉴스에서는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지역적 판세 등을 대놓고 이야기하지 않지만, 종편은 누가 어디에 출마한 데에 어떤 배경이 있는지 등을 세세하게 말해준다는 것이다. 반면 신씨는 “종편이 한쪽으로 편향됐다”는 지적에도 동의한다고 했다. “너무 강한 말로 한쪽을 신랄하게 공격하는데, 그렇게 하면 상대를 ‘빨갱이’로 만들기 쉽잖아요. 그런데 요즘 세상에 ‘빨갱이’란 게 있나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가끔은 ‘내가 세상을 잘 모르고 있는 것 아닌가’ 생각도 들고….” 신씨는 요즘 세상은 ‘진보’와 ‘보수’가 아니라, ‘중도 보수’와 좀 더 극단적으로 나아간 ‘완전 보수’로 나뉜다고 봤다. “‘완전 보수’인 사람들이 종편에 많이 나와서 무리한 주장을 펴는 것은 좀 고쳐졌으면 좋겠다”고도 했다. 반면 지상파 방송에 대해서는 “아무런 비판도, 시각도 없는 정부 방송 같다”고 비판했다. 신씨에게 종편은 편향적이되 할 말은 하는 비판언론이었다. 같은 날 오후 5시께 찾은 서울역 근처의 한 이발소에서는 <엠비엔>시사토크 프로그램을 틀어놓고 있었다. 50대 여성인 업주 이미경(가명)씨는 “사건사고 등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가 많이 나와서 주로 이걸 틀어놓는다”고 했다. 같은 시간대에 지상파에는 그렇게 볼만한 프로그램이 없다는 것도 이유였다. 정치·시사, 연예인, 사건사고 등 다양한 주제를 두고 이야기를 나누는 프로그램들이 대부분인데, 자신의 주된 관심사는 사건사고 쪽이라고 했다. 정치 관련 이슈는 별로 관심이 없는 반면 ‘생활 정보’에 관심이 많다는 것이다. “사기사건 같은 건 진짜 ‘내가 피해자가 될 수 있겠구나’ 생각이 들잖아요. 그럴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까지 자세히 알려주니까 좋죠. 전직 형사, 변호사 같은 사람들이 나와서 말해주니까 신뢰도 있고.” 방송에서 본 정보들은 친구들과 대화하는 데도 쏠쏠한 도움이 된다고 했다. 이씨는 “방송에 나오는 내용은 꼭 알아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별로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귀에 들어오고 알게 되니, 어쨌든 좋은 것 아니냐”고 했다. 종편이 생기기 전에는 주로 라디오를 틀어놨다고 한다. 이씨는 “틀어놓으면 계속 흘러나온다는 점에서 비슷하다”며 “그러고보니 라디오가 종편으로 대체된 셈이다. 종편 보기 시작한 뒤로는 라디오를 한 번도 안 틀었다”고 했다. 이씨에게 종편은 친절한 삶의 동반자이자 습관이었다.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 있는 한 대중목욕탕 탈의실에서도 종편을 자주 틀어놓는다. 25일 저녁 6시께 만난 60대 업주 차승배(가명)씨는 “케이블 방송을 이리저리 돌려가면서 틀긴 하는데, 채널에이나 티브이조선 같은 걸 자주 틀어놓게 된다. 가끔 손님들이 그걸 보면서 정치 토론을 벌이곤 한다”고 말했다. 반면 차씨 자신은 종편에 대해 비교적 비판적이었다. “뉴스만 너무 많이 해요. 사실상 같은 내용인데, 이 채널에서도 그 얘기, 저 채널에서도 그 얘기야. 패널들도 한쪽으로 치우친 사람들만 나오고.” 차씨는 “너무 한쪽으로 치우친 얘기만 많이 나오면 보는 사람들이 영향을 받을 수도 있다. 참새보고 꿩이라고 계속 말하면 꿩이 되어버리는 이치 아니냐”고 말했다. 그는 “종편이 교양 프로그램 같은 것도 많이 만들고, 패널도 다양한 사람들을 출연시켜야 좀 더 볼만할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도 종편을 자주 트는 이유는 뭘까. “같은 시간대에 다른 방송에는 별로 볼 게 없어서요.” 예전에는 케이블에서 해주는 지상파 재방송 같은 걸 주로 틀어놨는데, 종편이 생긴 뒤로는 세상 돌아가는 일도 좀 들어볼 겸 채널 선택이 자연스럽게 종편 쪽으로 쏠리게 됐다는 것이다. 차씨에게 종편은 마뜩잖지만 딱히 대안이 없는 심심풀이였다. 곧 출범 4년째를 맞는 종편은 ‘종편 저널리즘’이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저질 방송’, ‘막말 방송’ 등의 비판이 거센 가운데서도 어느새 사람들의 생활 속으로 깊이 스며들었다. 개별 가구뿐 아니라 음식점, 이발소, 목욕탕 등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서 종편이 켜져 있는 모습도 더는 낯설지 않게 되었다. 지상파와 인접한 ‘황금채널’, 보도 영역까지 다룰 수 있는 ‘종합편성’의 성격, 지상파의 공백이라 할 수 있는 낮시간대 공략 등 다양한 요인이 맞물린 결과로 풀이된다. 김경환 상지대 교수(언론광고학)는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보수화에서 첫번째 원인을 찾았다. 종편은 극우에 가까울 정도의 보수적인 메시지를 주로 전달하고, 시청자들은 이를 통해 자신들의 보수적인 생각을 더욱 강화한다. 어느 것이 먼저라고 규정하긴 어렵지만, 이 사이에는 서로를 ‘확대재생산’ 해주는 끈끈한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지상파 방송의 영향력 하락도 중요한 변수다. 김 교수는 “종편은 지상파 방송이 독점하던 뉴스 영역에 진출해, 지상파가 실행하지 못한 전략을 앞세워 영향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고 진단했다. 종편은 내용의 진위를 떠나 시사적인 이슈와 그 배경을 대화하듯 친근하게 전달해주는 형식을 개발해냈다. 지상파 방송의 압축적이고 기계적인 보도 형식과 시사 프로그램 축소에 따른 공백을 종편이 채워넣었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종편의 문제는 편향된 내용과 막말에 그치지 않는다. 종편이 뿌리내릴수록 저널리즘뿐 아니라 사회 전반이 ‘하향평준화’하고 있다. 김동원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강사(언론학 박사)는 “노인층에서는 종편에서 나온 내용이 자주 대화 소재가 되는가 하면 패널들이 쓰는 용어를 그대로 따라 쓰는 현상도 눈에 띈다”며 “더구나 지상파 방송이 낮시간대 프로그램에서 종편의 포맷을 베끼는 흐름까지 생기면서 우리 사회 대화 방식과 담론 지형이 크게 변해가고 있다”고 말했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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