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박근혜 대통령이 대구와 부산을 방문했을 때 대부분의 언론들은 대통령이 공천을 앞두고 ‘진박’ 후보들을 지원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조선일보>는 대구 방문(3월10일)에 대해 11일치 지면에서 ‘청와대가 이렇게 노골적으로 선거에 개입해도 되나’ 제목의 비판적인 내용의 사설을 내보냈고, <중앙일보>는 부산 방문(3월16일)에 대해 17일치 지면에서 “박 대통령이 총선을 28일 앞둔 시점에서 대구에 이어 부산까지 찾은 것을 두고 야당에선 거센 비판이 나왔다”고 짚었다.
그러나 지상파 방송에선 이런 비판을 찾아볼 수 없었다. <한국방송>(KBS)은 대구 방문 때 “지역 정가가 술렁였다”, “진박 후보들은 반겼지만 비박계 현역 의원들은 촉각을 곤두세웠다” 정도로 보도했지만, 부산 방문 때에는 “경제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의 시급성을 강조하기 위한 행보”라고만 전했다. <문화방송>(MBC)은 대구 방문 때 “정치적 오해를 살만한 행보는 최대한 자제하는 모습이었다”며 아예 청와대쪽을 두둔하는 듯한 보도를 했다. <에스비에스>(SBS)는 “박 대통령의 대구 방문은 6개월만으로, 하루에 네 가지 외부 일정을 소화한 것은 이례적”이라고만 전하는 등 두 차례 대통령의 행보에 담긴 정치적 의미는 전혀 다루지 않았다.
총선을 앞두고 지상파 방송 3사 내부에서까지 “정부·여당 편향 보도가 도를 넘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전국언론노조 산하 한국방송·문화방송·에스비에스 등 지상파 3사 노조는 6일 오후 합동 토론회를 열고 자사 선거 보도의 문제점을 점검했다. 각사 노조의 ‘공정방송’ 관련 담당자들의 발표 내용을 보면, 그동안 지상파 방송사들이 ‘이중잣대’까지 동원해가며 정부·여당 쪽, 특히 청와대·‘친박’에 기울어진 보도를 해온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한국방송 선거 보도에 대한 발표 내용을 보면, 여야의 ‘공천 내분’을 두고 야당 관련 보도에는 ‘패권’, ‘운동권’ 등의 부정적 의미를 덧씌울 수 있는 표현을 자주 쓴 반면 여당 관련 보도에는 ‘계파’, ‘갈등’ 등 가치중립적인 표현을 주로 써온 것으로 분석됐다. 한국방송은 3월14일 “새누리당이 친박계 중진인 서상기 의원을 비롯해 대구지역 현역의원 네 명을 공천에서 탈락시켰다”고 보도했는데, 서 의원과 함께 공천에서 탈락한 주호영, 권은희 등의 의원들은 비박계로 분류된다. 그런데도 마치 친박계가 대거 탈락한 것처럼 보도한 것이다. 2월17일~3월30일 사이 다섯차례에 걸쳐 지상파 3사 가운데 유일하게 북한 관련 보도를 머릿기사로 보도하고, 보도 내용에서도 북한의 위협을 과도하게 부풀리는 등 ‘북풍몰이’ 보도 행태 등도 문제로 지적됐다.
문화방송 선거 보도에 대해서도 ‘이중잣대’가 문제로 제기됐다. 야당의 공천 내분에 대해서는 “낡은 진보 청산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다”, “패권 청산과는 거리가 있다는 비판이 나왔다” 등의 비판을 담는 반면 여당 공천 내분에 대해서는 건조하게 사실관계만 전달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야권연대’에 대해 앵커 멘트 또는 기자 리포트로 “선거 때면 반복되는 무원칙한 연대”, “표만을 위한 이합집산” 등 부정적인 인식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보도들도 있었다.
청와대와 갈등을 일으켰던 유승민 전 새누리당 의원의 탈당 소식을 전하면서, 문화방송은 당사자인 유 의원의 입장은 3줄을 반영하는 반면 유 의원을 비판하는 이한구 새누리당 공천위원장의 입장은 “정치적 희생양 행세”, “꽃길만을 걸어온 당을 버리고”, “당을 모욕하고 침을 뱉으며 떠났다” 등 자극적인 비판의 말을 그대로 담으면서까지 7줄이나 반영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론조사 결과를 보도하면서 여당 후보가 야당 후보를 3.7%포인트 앞선 경우엔 “소폭 앞섰다”고 보도한 반면, 야당 후보가 여당 후보를 3.6%포인트 앞선 경우 “박빙 승부를 벌이고 있다”고 보도하는 등의 사례들도 발견됐다.
에스비에스의 경우 한국방송, 문화방송보다는 상대적으로 ‘기계적 균형’을 추구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지만, 그럼에도 “비판적이고 심층적인 보도가 굉장히 부족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안팎에서 “대통령의 지역 방문을 총선과 분리해 보도했다”, “공천 내분과 관련해 모든 갈등을 싸잡아 비판해 정치 불신을 초래했다”, “비판의 여지가 많은 야당의 핵심 경제 공약을 너무 부실하게 다뤘다” 등의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날 토론자로 참여한 김언경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은 “최근 지상파 방송사들은 그동안 ‘정부·여당 편향’으로 비판받아온 종합편성채널(종편)보다도 ‘나쁜’ 선거 보도를 하고 있다. ‘북풍’ 보도는 오히려 종편에서 한국방송쪽으로 주도권이 넘어갔고, 편파적인 화면 구성 등은 문화방송이 종편보다 더 심하다”고 지적했다. 또 “정책, 공약 검증 등의 보도는 아예 실종됐다”고 비판했다. 또다른 토론자인 정준희 중앙대 강사는 “언론에 대한 정치의 개입, 언론의 자발적 복무가 한국 언론의 전반적인 질적 저하를 이끌고 있는데, 이번 총선 보도에서 그 폐해가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과거의 ‘경마식 보도’가 아쉬워질 정도로 언론이 제 구실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