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파 방송에서 유일한 ‘매체 비평’ 프로그램으로 명맥을 유지해오던 한국방송 <미디어인사이드>가 지난 17일 “마지막 방송”임을 알렸다. 한국방송은 2003년 <미디어포커스>를 통해 매체 비평을 본격적으로 시작했으나, 2008년 <미디어비평>으로 바뀌는 과정 등을 거치며 매체 비평 구실이 갈수록 약해진 것으로 지적됐다. 한국방송 화면 갈무리
KBS ‘미디어인사이드’ 폐지 위기
2003년 ‘미디어포커스’로 출발해
타언론사 보도태도 다뤄 큰 반향
심층·탐사보도 방식 접근 등 신선
보수언론 등과 마찰…“폐지” 압력
MB정부 들어 언론권력 취재 실종
언론학자 “언론 자성 기회 없어져”
2003년 ‘미디어포커스’로 출발해
타언론사 보도태도 다뤄 큰 반향
심층·탐사보도 방식 접근 등 신선
보수언론 등과 마찰…“폐지” 압력
MB정부 들어 언론권력 취재 실종
언론학자 “언론 자성 기회 없어져”
지상파 방송에서 유일한 ‘매체 비평’ 프로그램으로 명맥을 유지해오던 한국방송(KBS)의 <미디어인사이드>가 봄 개편을 맞아 폐지될 전망이다.
미디어인사이드의 진행자 정필모 보도위원은 지난 17일치 방송 끝 무렵에 “13년 동안 미디어 비평의 맥을 이어왔는데, 개편에 따라 이번 방송을 끝으로 막을 내리게 됐다”고 전했다. 미디어인사이드의 폐지는 지난 7일 제작진이 사내 게시판에 글을 올리며 공론화됐다. 당시 제작진은 미디어인사이드가 한국방송의 공영성을 대표하는 프로그램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폐지 결정을 재고”해달라고 호소했다. 이에 대해 한국방송 쪽은 “결정된 것이 없다”고 말해왔지만, 프로그램 스스로 ‘마지막 방송’임을 알려 폐지를 기정사실화했다.
미디어인사이드의 역사는 2003년 <미디어포커스>로 거슬러 올라간다. 방송 저널리즘을 쇄신하자는 당시 방송사 내부 분위기 속에서 ‘매체 비평’ 역시 적극적으로 개척해야 할 영역으로 각광받았다. 문화방송(MBC)의 <미디어비평>이 그 첫발을 뗐고, 곧이어 한국방송의 미디어포커스가 뒤따랐다. 이전에는 방송사가 다른 언론사 보도에 관해 다루는 일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미디어포커스는 큰 반향을 일으켰다. 특히 대형 신문사들과 마찰이 잦았고, 이들과 보수 세력으로부터 ‘폐지하라’는 공격을 받기도 했다.
그렇지만 매체 비평의 필요성에 대한 방송사 안팎의 인식과 공영방송의 정책적인 의지가 있었기 때문에 미디어포커스는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회사 쪽에선 주말 대하드라마 바로 앞 시간에 편성하고 제작자율성을 철저히 보장하는 등 미디어포커스에 정책적인 ‘배려’를 했고, 제작진은 냉철한 저널리즘 원칙에 입각한 콘텐츠로 신뢰를 쌓아갔다.
초창기 팀원이었던 최경영 전 한국방송 기자(현 <뉴스타파> 기자)는 “짧은 비평의 나열이 아니라 심층·탐사보도 방식의 접근을 추구했기 때문에 의미가 깊다”고 말했다. ‘방송 저널리즘은 겉핥기식’이라는 비판을 이겨내기 위해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려 노력했다는 것이다. 2005년 <중앙일보>에서 일본의 기업인 세지마 류조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칼럼을 실었는데, 당시 미디어포커스는 극우 인사로서 세지마 류조의 실제 모습을 파헤치는 한편, 이병철 전 삼성 회장과 세지마 류조가 특별한 관계였다는 사실까지 지적했다.
‘자사 보도 비판’도 중요한 원칙이었다. 어떤 사안에 대해 주요 신문들의 보도 태도를 짚은 다음 한국방송은 어떻게 보도했는가를 꼭 담으려고 했다. 보도국과의 관계가 불편해지는 경우도 없지 않았지만, 기본적으로는 ‘각자의 영역’이라며 서로를 존중해주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2008년까지 미디어포커스에서 일했던 김경래 전 한국방송 기자(현 뉴스타파 기자)는 “회사에선 ‘자율성’을 보장하고, 제작진은 ‘전문성’을 키우려 했기 때문에 조화가 잘 이뤄졌다”고 말했다. 2007년 정부가 한국방송을 ‘공공기관운영법’ 적용 대상에 포함시키려 할 때, 한국방송은 ‘정부 비판을 못하는 국영방송이 될 수 있다’며 반대 입장을 취했다. 당시 회사에서 미디어포커스팀에 이 사안을 다뤄달라고 제안했는데, 제작진은 “한국방송이 여론을 왜곡하고 독재정권에 협력했던 과거를 반성하는 내용이 꼭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해 이를 관철시켰다고 한다.
그러나 2008년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뒤 한국방송의 시사 프로그램들은 대폭 폐지되거나 개편됐고, 이 와중에 미디어포커스도 ‘미디어 비평’으로 간판이 바뀌어 평일 밤으로 시간대를 옮겼다. 그 뒤로 자사 보도에 대한 비판, 언론권력에 대한 심층 취재 등은 찾아보기 어려워졌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2013년에는 ‘미디어인사이드’로 한 차례 더 이름을 바꿔 명맥을 유지했으나, 이번에 명맥마저 끊어지게 됐다.
‘폐지 위기’ 소식이 전해지자, 한국방송학회 방송저널리즘 연구회는 지난 14일 ‘매체 비평’의 필요성을 진단하는 긴급 세미나를 열었다. 토론자로 참여한 이종혁 경희대 교수는 “매체 비평은 언론이 권력화하지 않고 스스로 자성할 기회인데, 그 마지막 기회마저도 없어지게 됐다”며 안타까워했다. 세미나에 참여한 학자들은 갑작스런 폐지 결정에 의구심을 제기하는 한편, 언론끼리의 ‘침묵의 카르텔’ 현상에 대해 우려를 내놓기도 했다.
미디어인사이드 폐지에 대해 한국방송쪽은 “시사, 교양 프로그램에 대한 선택과 집중을 위한 전략적인 차원에서 이뤄졌다. 기존의 미디어인사이드, <티브이비평 시청자데스크>, <뉴스 옴부즈맨> 등 미디어 비평 프로그램에 대해 선택과 집중을 위한 전략적 차원에서 폐지가 결정된 것”이라고 밝혔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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