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대적 구조개편을 담은 백서 발간
새 이사회 구성해 지배구조 일원화
정부, 절반 지명…독립성 훼손 우려
재원구조 등 기본골격 유지해 눈길
새 이사회 구성해 지배구조 일원화
정부, 절반 지명…독립성 훼손 우려
재원구조 등 기본골격 유지해 눈길
영국 공영방송 <비비시>(BBC)의 대대적인 구조 개편 내용을 담은 ‘백서’가 발간돼, 전세계가 참고해왔던 공영방송의 모델이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영국 문화미디어스포츠부는 지난 12일 비비시의 왕실칙허장 갱신을 위한 협의 내용을 담은 정책 보고서(백서) ‘미래를 위한 비비시’를 발간했다. 비비시는 일종의 재허가 절차로서 10년마다 영국 왕실로부터 칙허장을 받는데, 정부는 칙허장에 담길 내용을 백서를 통해 사전에 제시하고 이를 의회에서 토론토록 한다. 여기에는 비비시의 목적, 권한, 의무 등이 모두 명시된다. 지난해 총선에서 승리한 보수당 정부는 칙허장 갱신을 앞두고 대대적인 구조 개편을 예고해왔다.
백서에서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비비시의 독특한 지배구조를 대표하던 기관인 ‘비비시 트러스트’가 없어진다는 사실이다. 2006년 칙허장 갱신 때 비비시는 경영과 감독을 이원화했는데, 사장 선임을 비롯해 비비시를 전반적으로 감독하고 규제하는 권한은 외부 위원회 성격의 비비시 트러스트에, 실질적인 경영은 비비시 내부의 집행이사회에 맡겼다. 정부로부터 독립된 위상을 부여받은 비비시 트러스트는 그동안 공영방송의 독립성과 민주적 통제를 구현할 수 있는 모델로 평가받아왔다.
그런데 이번 백서는 비비시 트러스트를 없애는 대신 비비시 내부에 12~14명으로 이뤄진 새 이사회를 만들기로 하는 등 지배구조를 다시 일원화했다. 정부가 의장과 부의장을 포함한 6명의 이사를, 비비시가 절반 이상의 이사들을 지명하며, 이들은 사장 선임을 포함해 비비시 전반을 아우르는 최고 의사결정 권한을 갖는다. 공정성 시비에 대한 조처 등 비비시 트러스트가 행사했던 규제 권한은 우리나라의 방송통신위원회와 같은 성격의 정부 기관 ‘오프콤’으로 넘어간다. 때문에 정부의 입김이 비비시에 강하게 반영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비비시 지배구조를 연구해온 정준희 중앙대 신문방송대학원 박사는 “새 이사회를 통해 투명성·개방성이 높아질 것이란 기대와 독립성·전문성이 훼손될 것이란 우려가 함께 나오고 있어서 실제로 어떻게 운영되는지 지켜봐야 한다”면서도 “애초 보수당이 신자유주의적 입장에서 비비시를 대폭 축소하려고 했던 것을 고려하면 수신료를 기반으로 한 재원 구조 등 공영방송의 기본 골격에 손을 대지 못한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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