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과 키릴 러시아정교회 총대주교가 만난 지난 12일 나는 이 역사적인 뉴스를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처음으로 접했다. 시내 관광을 마치고 호텔로 돌아와 텔레비전을 틀었을 때, 두 사람이 포옹하는 장면을 보고,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금방 알 수 있었다. 러시아 방송이 이 뉴스를 보여주고 있는 동안 나는 얼른 스마트폰으로 인터넷에 접속해서 우리말로 나오는 뉴스들을 대충 읽었다.
지난 11세기 가톨릭교회가 동방(동방정교)과 서방(가톨릭)으로 분열된 이후 1천년 만에 이뤄진 두 종교 수장의 만남이며, 당시 키릴 총대주교는 쿠바를 공식 방문 중이었고, 프란치스코 교황은 멕시코 방문길에 이 만남을 위해 쿠바 수도 아바나의 호세 마르티 국제공항에 잠시 내렸다는 것, 그리고 세계 동방정교회의 절반이 넘는 신자를 가진 러시아정교회의 수장과 가톨릭 수장의 만남은 라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의 주선으로 이뤄졌다는 것 등이었다.
두 종교 지도자가 만난다는 것은 이미 지난 2월 한국 언론들도 보도하여 종교 뉴스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었을 터다. 하지만 이들의 만남은 단순히 예고기사로 끝날 수도 있는 종교계의 뉴스를 넘어 우리 시대 최대의 이벤트였다. 따라서 남북의 화해가 절실한 한국의 언론이라면 이 만남의 현장을 대대적으로 보도하는 것이 마땅했다. 그래서 인터넷을 뒤져보았지만 허사였다.
종교 전문 신문이나 방송을 제외한 언론들은 대부분 이를 묵살하거나, 단신 정도의 짤막한 기사 또는 만나는 장면의 사진 보도로 끝냈다. 인터넷을 뒤지다가 프란치스코 교황과 이슬람 수니파 최고지도자인 셰이크 아흐메드 알타예브가 5월23일 바티칸 사도궁전에서 만났다는 뉴스 역시, 그것도 한 달이나 지나서야 한쪽 구석에서 찾아냈다. 두 종교의 수장이 만난 것은 9·11 테러 발생 1년 전인 2000년 이후 처음이고, 이슬람 수장이 바티칸을 찾은 것은 사상 최초라는 소식이었다.
나는 우리 시대의 가장 중요한 화두가 ‘화해’라고 생각한다. 다시 말하면 언론의 보도가 다른 무엇보다도 화해의 기미와 화해의 몸짓을 놓치지 않고, 의미 있게 추적보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남북한 관계의 꽉 막힌 현실에 비추어 더욱 그렇다. 남북관계를 두고도 지금 정부·여당과 야당의 주장이 ‘제재’와 ‘대화’로 맞서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남북대화의 전제로 북한의 핵 포기를 고수하지만 북한의 핵 포기를 이끌어내기 위해 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 야당의 주장이다. 그런데 대화란 어떻게 이뤄지는 것인가를 프란치스코 교황이 보여주고 있다. 그저 아무 전제 없이 만나는 것이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최근 한국에 와서 “우리는 (북한과의) 대화를 향한 길을 ‘다시’ 찾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만일 대선을 의식하고 자신의 ‘포부’를 밝힌 것이라면 별 이야기가 아니다. 하지만 현직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한 말이라면 주목할 만한 발언이다. 유엔 중심의 제재를 통해 북한을 대화 테이블로 끌어내려는 ‘종래의 길’에 대한 재검토를 의미하는 말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말도 언론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화해를 향한 미미한 흐름에 둔감한 언론이 정작 화해의 해일이 덮쳐올 때 당황하며 허둥대는 모습이 벌써부터 그려진다.
성한표/언론인·전 <한겨레> 논설주간 jona@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