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국의 강철대오 조중동’ 됐거든! 수사지휘권 보도 한겨레는 달랐습니다.
[제2창간] 수사지휘권 보도 한겨레는 달랐습니다
‘강정구-김종빈-천정배’ 국면마다
서로 추어올리며 색칠놀이 “허이짜”
일방적 여론몰이에 독자 “관심없다”
한겨레, 소모적 논쟁 대신 상식적 접근
오만한 견강부회 소용돌이속 차별화 “구국의 강철대오 전대협” 저는 1980년대 전대협이 강조하던 구국투쟁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우습지는 않았습니다. 저와 생각이 달랐지만 그들의 진정성까지 의심하지는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요즘 ‘구국의 강철대오’를 자처하는 ‘조중동’의 기사를 읽으면 ‘피식’ 헛웃음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는 ‘강정구-김종빈-천정배’로 이어지는 국면마다 비장한 어조로 ‘대한민국 구하기’를 선언했습니다. 조중동의 간판 논객들은 한달 넘게 우국충정을 쏟아냈습니다. 이들의 목소리를 한번 들어보겠습니다. ‘남쪽의 체제 우위를 부정하고 북한 체제를 떠받치는 ‘숭김 통일꾼’이 김일성 수령의 만경대 정신으로 통일하여 남북도 북처럼 되자고 한다.’(<동아일보> 10월25일치 ‘숭김 통일꾼과 노 정권’) 동아일보는 “대한민국의 자살을 강요하는 숭김파의 ‘체제 물타기’공세는 멈출 조짐이 아니다”라고 주장합니다.
<중앙일보> 제목은 자극적입니다. “적화는 됐고 통일만 남았나”(10월15일치 ‘중앙시평’) 이 신문은 “노무현 대통령의 연정 구상이 이제 조선노동당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고 하더니 “천정배 장관의 수사 지휘권 발동 역시 단지 강정구 교수에 대한 인권적 차원의 문제 접근이기보다는 국가보안법을 무력화시키는 데 참여정부가 할 바를 다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북측에 알리는 의미가 더 큰 것이 아닌가 생각될 정도다”고 이어갔습니다. 끝에 가서는 “그래서 적화는 됐고 통일만 남았다는 이야기가 실감나는 요즘이다. 진짜 먹히지 않으려면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조선일보>는 결사항전을 주장합니다. “거대한 음모의 냄새가 난다. 지난 반세기를 존속했던 한반도 남쪽의 판을 뒤엎으려는 음험한 프로젝트-그것을 가늠할 결전이 다가오고 있다. ‘강정구 현상’ ‘천정배 현상’은 바로 그 결전에 이르기까지 한 과정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 가만히 앉은 채 당하느냐, 혼신의 힘으로 결사항전을 하느냐가 ‘대한민국 세력’에 닥친 불가피한 선택일 것이다.”(10월18일치 류근일 칼럼 ‘대한민국 세력’의 불가피한 선택) 이들은 공산화 위기에 빠진 대한민국을 구하기 위해 구국 투쟁을 벌여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저는 이런 분들의 글을 읽다보면 미안한 이야기지만, 코미디 ‘웃음을 찾는 사람들’ 중 화상고 코너가 떠오릅니다. ‘허이짜’를 외치는 고교 무술반의 권법이야기 말입니다. 개그맨들이 심각한 표정으로 ‘쭤뻐 쭤뻐’ ‘다 죽여버리겠다’ ‘꽤액!’ ‘허이짜 허이짜’ 기성을 내며 무예를 펼치지만 보는 사람들은 배꼽을 잡습니다. 이 개그의 인기에 대한 한 네티즌의 평가는 이렇습니다. “이 개그에는 끼리끼리의 문화에 대한 비판이 숨어있습니다. 자기네끼리는 서로 적당히 인정해주고 대접해주면서 착각 속에 지내죠. 하지만 이방인이 보기엔 허세가 넘쳐납니다. 화상고는 바로 우리 사회의 정곡을 찌르고 있습니다.” 여론시장을 과점해온 조중동은 자신들의 주관적 상황 인식과 일방적 논리를 댜수 여론으로 포장해왔습니다. 그런데 이번 ‘강정구-김종빈-천정배’ 건에서는 독자와 유리된 채 ‘자신들의 대한민국’을 강요하는 조중동의 의제설정 능력의 한계가 드러났습니다. <중앙일보> 10월24일치에 실린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65%가 강정구 교수에 대한 수사에 찬성하지만, 불구속을 주장하거나 수사에 반대하는 의견도 64%였습니다. 주목한 만한 것은 응답자의 41%는 “강 교수 사태에 관심이 없다”고 답한 부분입니다. 조중동은 ‘대한민국이 죽어가고 있다’며 독자들에게 구국 투쟁 궐기를 호소했지만, 독자는 “뭔 소리여?”란 심드렁한 낯색입니다. 그럼 한 달 넘게 조중동이 ‘화상고식 허무 개그 시리즈’를 공연할 때 <한겨레>는 뭐하고 있었냐고요? <한겨레>는 9월14일치 7면에서 ‘맥아더 논란 감정적 동상 철거 앞서 차분한 재평가 계기’란 기사에서 이번 사건의 경과와 의미를 정리하고 사설에서 “맥아더의 재평가를 위해 학계가 나설 것”을 촉구했습니다. 소모적이고 감정적 논쟁 대신 학문적 토론과 검증을 통해 풀자는 제안이었습니다. 천정배 법무부 장관의 지휘권 발동에 대해서는 10월14일치 사설을 통해 △검찰의 충격을 이해하고 △이런 지휘권 발동은 매우 이례적인 것이며 앞으로 되도록 없어야 한다고 밝히고 △검찰의 독주 견제의 필요성 △인신 구속 남발 관행에 대한 재검토 계기 등을 짚었습니다. 이 사설은 마지막으로 서로 다른 의견을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자유민주주의 사회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했습니다. 한겨레의 이런 주장은 ‘배가 고프면 밥을 먹어야 한다’처럼 너무나 상식적인 주장이지만, 워낙 견강부회가 행세하는 한국 여론시장에서 유독 돋보입니다. 저는 <한겨레>가 이렇게 상식과 기본에 충실했기 때문에 각종 여론조사에서 10년 넘게 가장 믿을 만한 언론 1위에 꼽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권혁철 전국언론노동조합 한겨레지부 진실위 간사 nu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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