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영방송인 <한국방송>(KBS)이 자산을 활용한 수익사업이 가능하도록 법제도 정비에 나섰다. 고대영 사장 체제 이후 수신료 인상 노력은 포기한 채 방송과 무관한 부동산 수익을 겨냥해 방송의 공영성과 공정성을 뒷전으로 미룬다는 비판 목소리가 나온다.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 상임위원들은 지난 29일 티타임에서 한국방송이 ‘자산을 활용한 수익사업’을 방송법 시행령에 추가로 넣어달라는 업무협조 요청건을 논의했다. 방송법 56조는 한국방송의 재원을 수신료로 하되 방송광고 등 대통령령이 정하는 수입으로 충당할 수 있다고 적시하고 있다. 이 법을 근거로 시행령 36조는 △방송광고 △방송프로그램 판매 △정부보조금 △협찬 △재송신 등 9개항의 재원 마련 조항을 담고 있다. 여기에 들어가지 않는 수익을 창출하려면 별도의 법제도 정비와 정관 개정이 필요하다. 한국방송의 자산 활용 수익사업은 부동산 개발을 통한 임대업으로 해석된다.
방통위원들은 이날 경영이 어려운 한국방송의 재원 마련에 대한 고민은 인정하나 “공영방송으로서 할 수 있는 방법과 해서는 안 되는 것이 있다”며 부동산 개발에 대해 대체로 부정적 견해를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방송의 재원은 크게 수신료·정부보조금 등 공적 재원과 광고수입 등 사적 재원 등으로 나뉜다. 방통위의 ‘2015년도 방송사업자 재산상황 공표집’을 보면, 지난해 한국방송 수신료 총액은 6258억원으로 전체 매출액의 40.5%이다. 광고수입은 5025억원(32.5%)에 달하는데 전년 대비 199억원이 감소하는 등 종합편성채널 출범 뒤 치열해진 광고시장 경쟁의 영향을 받고 있다.
한국방송 경영진은 지난 6월말 이사회에 신사옥 건립안을 보고하며, 방통위에 방송법 시행령 개정을 요청하겠다고 했다. 한국방송은 올해 초 신사옥건설준비단을 구성해 여의도 신관 맞은편에 있는 연구동에 8층짜리 신사옥을 지어 공간을 재배치하는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여기에 투입될 자금도 3000억원에 가까워 예산 확보에도 난관을 겪고 있다. 이 자리에서 한 이사는 샛강 쪽에 있는 별관 부지는 고도제한도 받지 않으니 이곳에 신사옥을 지어 공간을 이용하는 방안을 제안한 것으로 전해졌다. 별관 부지 개발안은 몇년 전에도 검토됐으나 법 미비로 보류된 바 있다. 통신 용도의 부지를 상업용지로 바꾸려면 용도 변경 등을 거쳐야 할 뿐 아니라 공영방송의 부동산 개발은 투기를 부채질할 수 있다는 비판 여론도 있었다.
한국방송은 수신료 인상이나 광고제도 개선책이 뾰족하게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경영환경 개선을 위한 자구책의 일환이라고 설명했다. 정창준 한국방송 홍보부장은 “초고화질(UHD) 시설 투자 비용은 늘어나는데 광고매출은 계속 줄고 있다. 지난 5년 영엉손익이 마이너스여서 자산을 팔아 단기 손익을 맞추고 있는데 매각보다 자산을 활용하자는 논의가 나왔다. 보유 부동산 활용사업을 위해 방통위와 협의 중”이라며 “방통위가 시행령을 받아들이면 다른 공공기관의 사례를 참고해 방향을 잡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국방송은 <문화방송>(MBC)이 이미 자산을 활용한 수익사업을 하고 있다며 형평성을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수신료를 받는 국가기간방송으로서 한국방송은 문화방송과 비교 잣대가 달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윤정주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소장은 “한국방송은 준조세 성격의 수신료를 받고 있다. 공영방송이 시청자 복지와 프로그램 질 제고, 방송 공정성에 앞장서야 하는데 다른 것에 눈을 돌려 돈벌이에 나서는 것은 본업을 내팽개친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공영방송 재원을 연구해온 강명현 한림대 교수는 한국방송의 이런 시도가 공익과 시민의 요구에 부응해야 하는 공영방송의 본질적 해결방안이 아니라고 쐐기를 박았다. 그는 “방송사 평가에서 질 높은 프로그램 제작보다 수익과 경영개선에 우선순위에 두다보니 경영진이 수익사업과 협찬받는 데만 매달리고 있다. 재원 확보의 어려움을 이해하지만, 법을 풀어주면 재원구조 정상화에 도움이 되지는 못하면서 공영방송이 더 망가지는 악순환에 빠질 것”이라고 비판했다.
문현숙 선임기자
hyunsm@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