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전문 채널 ‘투자 고수’ 앞세워
인터넷 등 유료서비스 결제 유도
전문가는 유명세 업고 개미들 유혹
방심위, 규제조항 있어도 활용못해
인터넷 등 유료서비스 결제 유도
전문가는 유명세 업고 개미들 유혹
방심위, 규제조항 있어도 활용못해
‘청담동 주식부자’ 사례로 본 검은 공생
‘청담동 주식부자’로 알려졌던 이희진씨가 검찰 조사를 받게 된 사건을 계기로, 이른바 ‘주식전문가’들을 경제전문채널 등에 대거 출연시켜 수익을 남겨온 언론사의 책임도 물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규제기관인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가 제대로 구실을 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씨는 2014년 유사 투자자문업체를 설립해 헐값에 사들인 장외주식을 회원들에게 비싸게 파는 등 허위 정보를 미끼로 삼아 여러 범죄를 저질렀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경제전문채널인 <한국경제티브이> ‘장외주식4989’ 프로그램 등에 고정 출연하면서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렸고, 이를 ‘개미’ 투자자들을 끌어모으는 발판으로 삼았다. 사실상 증권 정보를 다루는 경제전문채널이 이씨에게 ‘마당’을 깔아준 셈이다.
경제전문채널들이 이른바 ‘전문가’들을 앞세워 시청자를 현혹한다는 지적은 이전부터 제기되어 왔다. 최근 최명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방심위로부터 제출받은 심의 내역을 보면, 경제전문채널에 대한 제재는 2012년 13건에서 2015년 52건으로 해마다 증가하는 추세다. 2012~2016년 전체 123건의 제재 가운데 ‘프로그램 중지’, ‘관계자 징계’ 등 법정제재가 80건에 이를 정도로 중징계 비율이 특히 높다. 내용을 보면, ‘전문가’들이 “제가 인수합병 관련된 주식으로 57% 수익, 연속 상한가를 기록했다”, “제가 말씀드리자마자 계속해서 올라서 30% 수익이 났다”, “○○ 종목으로 수익률 15% 예상한다” 등의 발언으로 제재를 받은 경우가 많았다. 고급 정보를 추가로 볼 수 있는 유료 인터넷 사이트, 책, 유료 강연회, 유료 애플리케이션 등을 홍보해 제재를 받은 경우도 많다. “○○ 애플리케이션에 접속하면 전문가 5명의 투자 전략을 만나볼 수 있다”, “인터넷 방송으로 들어오면 ○○종목과 관련된 정보를 준다”는 식이다.
주목할 대목은, 방송사가 이러한 ‘전문가’들과 협력관계를 맺고 수익을 챙기고 있는 구조다. 경제전문채널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큰 한국경제티브이의 경우, 2015년 거둬들인 ‘인터넷 수입’이 279억원으로, 전통적인 수입원인 ‘광고협찬 수입’(278억원)을 추월했다. 여기서 ‘인터넷 수입’은, 이 회사가 운영하는 인터넷 주식정보 사이트의 유료결제 등을 통한 수입을 가리킨다. 협력관계에 있는 ‘전문가’를 방송에 출연시키고, 시청자들로 하여금 그를 앞세운 인터넷방송, 카페, 강좌 등을 유료로 결제하도록 유도하는 방식이다. 이 회사의 2015년 사업보고서를 보면, 이희진씨가 간여했던 ‘와우4989’에 대해 “장외시장 개척(WOW4989) 등 신수종 사업의 발굴”이라 추어올리는 대목도 나온다. 다른 경제전문채널들 역시 ‘전문가’를 앞세워 방송과 연계된 유료 서비스들을 운용하고 있다. ‘청담동 주식부자’ 같은 사건이 언제든 재발할 수 있는 구조인 셈이다.
때문에 규제기관의 적극적인 대처를 주문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2013년 증권방송에 출연한 ‘전문가’의 주가조작 사건 등이 불거진 뒤로, 방심위는 2015년 방송심의규정에 ‘금융·부동산 등에 대한 투자자문행위’(제42조의 2) 조항을 신설했다. 이 조항은 “손실의 보전이나 이익의 보장으로 오인하게 하는 내용을 포함해서는 안 된다”(1항), “방송이 투자자문행위를 하는 자와 경제적 이해관계가 있어 그 자문 내용이나 신뢰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때에는 이를 명확히 공개해야 한다”(3항) 등 앞서 지적된 문제점들을 규제할 수 있는 새로운 근거를 마련했다.
그러나 1항과 3항은 단 한 차례도 적용된 적이 없고, “시청자를 오도해선 안 된다”는 포괄적인 내용이 담긴 5항만 적용되어 왔다. 이희진씨가 출연했던 방송이 여태껏 단 한 번도 심의·제재 대상에 오르지 않았던 사실도 이해하기 힘들다는 지적이 나온다. 꼼꼼하고 엄격한 감독이 이뤄져 왔다고 보긴 어려운 것이다. 검찰 수사로 문제가 불거지자, 방심위는 이씨가 출연했던 과거 방송분을 다시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방심위 관계자는 “전문가들의 발언이 어느 정도 신뢰성이 있는지, 방송사와 어떤 이해관계에 있는지 등을 따져보기가 쉽진 않다. 문제가 발견되는 대로 심의·제재 절차를 밟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최명길 의원은 “문제적 방송에 대해 관련 규정을 적용해 엄격하게 제재해야 하며, 필요한 경우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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