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환균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이 지난 19일 오전 서울 태평로 한국언론회관 언론노조 위원장실에서 42년 만에 자유언론실천선언을 내놓는 배경을 이야기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1974년 10월24일 <동아일보> 기자 200여명이 ‘자유언론실천선언’을 발표하고 제작거부 투쟁에 나섰다. 민주주의를 무너뜨리고 언론에 재갈을 물리는 박정희 독재정권에 대항해 ‘자유언론’의 가치를 찾기 위한 당시 언론인들의 몸부림은, 우리나라 언론운동의 기념비가 됐다. 그 뒤로 해마다 ‘기념’됐던 자유언론실천선언이, 올해에는 다시 ‘선언’된다. 자유언론실천재단을 필두로 한 언론시민단체들은 오는 24일 ‘2016 자유언론실천 시민선언’ 발표를 준비하고 있다. 지금의 언론 환경이 42년 전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절박한 위기감이 배경이다.
지난 19일 오전 서울 태평로 언론회관에서 김환균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을 만났다. 언론노조 차원에서 “해마다 해온 조촐한 기념식 대신 올해에는 규모 있게 시민들과 함께하자”는 아이디어를 냈고,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동아투위) 등 언론계 선배들도 이에 흔쾌히 동의했다고 한다. 김 위원장은 “선배들 역시 오늘날의 언론 현실이 74년 당시와 다르지 않다고 공감한 것”이라고 말했다. 여전히 언론은 권력 비판 보도를 틀어막고 바른 목소리를 내는 언론인들을 ‘유배’ 조처하고 있다. ‘백종문 녹취록’, ‘이정현 녹취록’ 등으로 정권의 공영방송 장악 실태가 드러났어도 이를 바로잡을 움직임은 아직 요원하다.
김 위원장은 “어떤 면에서는 언론 환경이 42년 전보다 더 안 좋아졌다”고 말했다. “옛날 언론사의 책임자들은 ‘불가피한 상황이니 소나기는 피해 가자’는 식으로 일말의 염치는 보였던 반면, 지금은 그런 태도조차 찾아볼 수 없는 등 문제가 개인화·내면화됐어요.” 지난 총선으로 ‘여소야대’가 이뤄진 뒤 종편 등이 정권 교체의 가능성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분석이 나왔다. 그러나 되레 공영방송 책임자들은 자신들을 그 자리에 앉혀준 ‘살아있는 권력’이 유지되기만 하면 된다는 식으로 아예 정치권력과 한 몸이 된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는 42년 전에는 없었던 모습이라는 지적이다.
“아마 저와 동년배인 이들은 다들 후배들에게 미안함을 갖고 있을 겁니다.” 김 위원장은 스스로 “선배 세대가 투쟁해 쟁취한 ‘자유언론’의 과실을 운 좋게 따 먹은 세대”라고 말했다. 그는 1987년 <문화방송>(MBC)에 입사해 시사교양 피디로 활약했는데, 군사정권 시절의 흑막들을 파헤치는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성역 없이 우리 사회의 환부를 지적하는 <피디수첩> 등이 그의 주 무대였다. 당시에 만들어진 콘텐츠들을 보면, 권력에 부역했던 언론사 스스로의 치부까지도 가감 없이 드러내는 등 지금 봐도 놀라울 정도로 ‘자유언론’의 가치에 충실했다. 90년대 언론계에서는 이미 극복된 ‘정치권력으로부터의 독립’보다도 ‘자본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을 더 강조하는 분위기도 있었다. 그러나 이명박 정권의 대대적인 방송 장악 이후로 언론은 또다시 정치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을 외쳐야 하는 상황이 됐다. ‘기레기’라는 말이 공공연히 떠돌 정도로 많은 언론인들이 자긍심을 잃어가고 있다.
김 위원장은 인터뷰 내내 ‘언론의 반성’을 강조했다. ‘자유언론실천 시민선언’에 발맞춰, 언론노조는 21일 열리는 임시 대의원회에서 ‘자유언론실천 노동자선언’을 채택할 계획이다. ‘시민선언’이 언론의 주인인 시민이 언론에 ‘제구실을 해달라’는 명령이라면, ‘노동자선언’은 언론 스스로 ‘제구실을 하겠다’는 선언이라 한다. 여기에는 “언론의 자유는 국민 대중이 찾아다 주는 것이 아니라, 언론 노동자 스스로 쟁취하고 실천해야 한다”는 반성과 각오의 메시지가 담길 예정이다.
김 위원장은 “언론 환경이 이처럼 좋지 않으니, 후배들이 ‘어차피 받아들여지지 않겠지’란 생각으로 당연히 해야 할 발제조차 하지 않는다는 얘기를 듣고 정말 가슴이 아팠다”며 “언론인 스스로 끊임없이 내부 문화를 바꾸기 위해 말 걸고 설득해나가는 노력을 기울일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물론 ‘자유언론’을 실천하기 위해선 언론인 스스로의 노력뿐 아니라 제도적인 개선도 필요하다. 언론노조는 ‘언론 장악’에 대한 국회 청문회 개최, 공영방송 지배구조를 개선할 법률 개정, 해직 언론인들의 복직 등을 요구하고 있다. 이 가운데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은 박근혜 정부의 공약 사항이었던데다 2013년 국회에서도 이미 웬만큼 논의가 이뤄진 바 있다. 김 위원장은 “다만 국회 내부에서 스스로 이 문제를 돌파할 동력을 갖추고 있는지 우려스럽다. 시민들의 목소리를 더욱 모아서 국회와 정치권을 압박할 수 있는 실천적인 방법들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원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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