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방영된 MBC 드라마 ‘제4공화국’ 장면서 포착
김재규 중앙정보부장 역할을 맡은 배우 박근형 씨가 “큰 영애 문제입니다”라고 어렵사리 말을 건넨다. 박정희 대통령 역할을 맡은 배우 이창환 씨가 일그러진 얼굴로 “그, 최 머시기인가 하는 그 목사 얘기요?”라고 답한다. 그러자 김재규가 “네, 그렇습니다. 그 사람이 큰 영애의 후광을 업고 지나친 짓을 하고 있습니다”라고 보고한다.
1995년 말부터 1996년 초까지 문화방송(MBC)에서 방영됐던 드라마 ‘제4공화국’(연출 장수봉, 극본 김광희, 이호)의 한 장면이다. 박정희 정권의 후반부를 실감나게 다룬 이 드라마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최태민 씨의 관계에 대한 우려가 묘사됐다는 점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누리꾼들이 드라마 영상을 폭발적으로 공유하고 있다.
유튜브에 올라온 영상을 보면, 최태민과 박근혜가 구국여성봉사단 활동을 하는 장면이 나오면서 김재규가 “구국여성봉사단이라고 하는 건 허울뿐이고 (최태민이) 업체에서 찬조금 챙기고, 각종 이권에 개입하고, 여자 문제까지…”라고 말하며 박정희에게 관련 보고서를 제출한다. 하지만 박정희는 “그 문제는 대충 들어서 알고 있어요. 그런데 근혜 말은 그게 아니던데…”라며 보고서를 보지도 않고 돌려준다. 그러면서 “오늘은 이쯤에서 그만둡시다. 가보세요”라고 말한다.
김재규는 대통령 방에서 나오면서 차지철 역할을 맡은 배우 이대근 씨와 만나 “차 실장, 정말 이러기요. 왜 매사에 시시콜콜 나서면서 정작 나서야 할 일은 빠지는 거요”라고 질책한다. 그러니 차지철은 “아니, 빠지다뇨. 무슨 저야 정보력이 있습니까, 그런 문제에. 김 부장처럼 충성심이 강한 분들이 직언을 해야 되지 않습니까”라고 답한다. 그러자 김재규는 “각하를 정말 잘 보필하려면 진심으로 하세요. 각하가 듣기 싫어하는 직언도 필요할 때는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라고 말한다.
누리꾼들은 이 영상을 공유하며 “김재규에 대한 역사적 재평가가 이뤄져야 하겠다”, “20년 전 드라마인데 와~”, “저 때의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가 완전 그립다. 지금 하곤 클라스가 다르다”, “도대체 언론 방송의 자유가 얼마나 역주행한 건가” 등의 반응을 보였다.
이재훈 기자 n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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