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언론학회가 23일 오후 프레스센터 19층 매화홀에서 ‘최순실 사태, 언론보도를 논하다’ 긴급 간담회를 열어 참석자들이 이야기를 하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이른바 ‘사회 지도층’의 침묵과 굴종 속에서 움직였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언론의 보도 경쟁 속에서 그 실체를 드러냈다. 그러나 사실상 권력과 한 배를 탔던 언론 역시 권력이 힘을 잃기 전까진 이를 제대로 밝혀내지 못했던 것도 사실이다. 때문에 언론에 대해 ‘잘했다’는 칭찬과 ‘반성해야 한다’는 비판이 함께 나오고 있다.
한국언론학회는 23일 오후 ‘최순실 사태, 언론 보도를 논하다’ 제목의 긴급간담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는 각자의 특종으로 이번 게이트를 여는 핵심적 구실을 했던 언론인들이 한데 모여 눈길을 끌었다. 제몫을 다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는 공영방송 소속 언론인과 언론학자들도 한국 언론에 대한 총체적 점검에 참여했다.
물꼬를 트는 보도를 했던 이진동 <티브이조선> 사회부장은 “애초 최순실씨를 정점으로 찍고, 서서히 그 실체를 드러내는 ‘역취재’ 방식으로 접근했다. 예상보다 센 공격이 들어와 주춤했던 사이 <한겨레>가 바통을 이어받았다”고 말했다. 최순실씨의 존재를 처음으로 드러내는 보도를 했던 김의겸 한겨레 선임기자는 “마찬가지로 역취재 방식으로 접근했으며, 불씨를 꺼뜨리지 않고 계속 이어가는 데 역점을 뒀다”고 했다. <제이티비시>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 책임피디인 김명환 팀장은 “40년 동안 이어진 최씨 일가와 박근혜 대통령의 관계에 주목했다”고 밝혔다. 다만 이번 사태의 기폭제가 됐던 ‘뉴스룸’의 ‘태블릿 피시’ 보도에 대한 설명이 없어 아쉬움을 남겼다.
정수영 <한국방송>(KBS) 기자와 이호찬 <문화방송>(MBC) 기자는 정치권력에 종속된 공영방송이 이번 사안을 “묵살하고 뒷북치고 물타기”했던 행태에 대해 자기 비판을 내놨다. 이들은 정치권력이 아니라 공영방송의 주인인 시민들이 공영방송을 감시하고 견제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배정근 숙명여대 교수는 “오랫만에 언론 본연의 모습을 봤다”며 언론의 구실에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그는 “1993년 김영삼 정권 때 공직자 재산 공개 파동 등 권력형 게이트가 불거질 때마다 언론이 의도하지 않은 공동 취재로 그 본질을 파헤치곤 했는데, 2000년대 들어 그런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며, 언론의 정파성과 상업주의를 앞세운 자사 이기주의를 그 배경으로 지목했다.
자성과 비판의 목소리도 나왔다. 채영길 한국외대 교수는 “작금의 언론 생태계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학계부터 먼저 자성해야 한다. 현재 ‘기울어진 운동장’이 잠시 평평해진 듯 보이나, 언론의 당파적 성격, 자본권력에는 무딘 칼날, 매체마다 다른 이념적 관심사 등 구조적 조건은 여전하다”고 짚었다. 김성해 대구대 교수는 “이번 게이트는 힘 있는 사람들이 만든 철저한 ‘인적 재해’이며, 그 일부가 언론이고 학계”라고 지적했다. 그는 “최근 언론이 보이는 모습은 ‘희생양 찾아서 돌 던지기’에 가깝다”며, 무엇이 본질적 문제인지 따지는 것이 급선무라고 주장했다.
이 대목에서 참석자들은 “이번 사태의 핵심적 성격은 ‘최순실 국정농단’이 아닌 ‘헌정 질서 파괴’이며, 언론 역시 헌정 질서의 회복을 위해 ‘언론다움’을 되찾아야 한다”는 그의 진단에 대체로 동의했다. 현재까지 주류 언론이 형성해온 공론장은 당파적·상업적 이해에 따라 움직이는 등 언론 본연의 모습에서 너무 멀어졌다는 것이다.
채영길 교수는 “공론장으로 구실해야 할 주류 언론이 사실상 정치·사회의 행위자로 기능하는 현재의 관행과 단절해야 한다. 주류 공론장을 회복하고 새롭게 형성되는 시민 공론장과 소통하는 것이 주된 과제”라고 주장했다. 김의겸 기자는 “지금 언론이 박근혜·최순실을 공격한다고 해서, 과거 권력의 전횡에 눈감았던 언론의 잘못이 덮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진동 부장은 “청와대가 만든 ‘청와대-조선일보 갈등’ 프레임이 널리 퍼지면서 오히려 티브이조선의 보도를 가로막은 측면이 컸다”며 언론의 당파성이 언론 본연의 구실을 억눌렀다고 주장했다. 김성해 교수는 “학계가 나서서 권언유착, 공공성·독립성 훼손, 저널리즘 원칙 훼손 등 그동안 언론의 문제를 되짚어보는 ‘언론 백서’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이날 간담회를 주최한 한국언론학회는 “이번 사안의 규모가 워낙 거대하여, 한두번의 토론회나 간담회로는 부족하다. 앞으로 꾸준히 우리 언론의 문제를 구체적으로 되짚어보는 기획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최원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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