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물주’ 구실을 했던 재벌 대기업들이 어떤 대가를 받았는지가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거액을 출연한 배경을 철저히 규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30일 시작한 국회의 국정조사에서도 대기업 총수들이 증인으로 소환되는 등 이 대목이 집중적으로 거론될 전망이다.
이런 가운데 경제전문지들은 대기업을 일방적인 ‘피해자’로만 규정하는 보도 태도를 보이고 있다. 검찰 수사, 국정조사, 특검을 ‘대기업 때리기’로 표현하거나, 의혹에 대한 대기업의 해명을 기획기사 형태로 실어주는 식이다. ‘경제 위기’를 앞세워 대기업의 ‘경영 공백’, ‘대외신인도 하락’ 등을 거론하는 태도도 나타난다.
현재까지는 검찰이 박·최에게 ‘제3자 뇌물죄’ 혐의를 적용하지 않아, 대기업이 재단에 출연하거나 이권을 넘긴 대가로 정권으로부터 받은 반대급부가 명확히 확인되진 않은 상태다. 검찰은 박 대통령의 대면조사 거부로 뇌물죄 입증이 어려웠다는 태도를 보여왔는데, 앞으로 국정조사와 특검 수사에서 실체적 진실이 드러날지가 관건이다. 정권 차원에서 ‘노동개혁’ 법안 등 기업에 유리한 정책을 강행했거나 개별 기업들의 총수 사면, 경영권 승계 과정 등에 개입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국민연금이 3500억원의 손실을 알고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찬성했는데, 여기에 청와대가 개입했다는 의혹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경제지들은 ‘대기업은 정권에 돈을 뜯긴 피해자’라는 논조로 일관하고 있다. 검찰이 박 대통령과 독대했던 기업 총수들을 조사하겠다고 하자, <매일경제>는 지난 11월5일치 1면 기사에서 “돈을 내고도 검찰 조사를 받는데다 여론의 비난까지 감수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고 전했다. <한국경제>는 8일 “기업들이 지난해 낸 준조세 성격의 돈을 모두 합하면 20조원이 넘는다”는 내용의 기획기사를 싣고, “대기업 53곳이 최순실씨가 주도한 미르·케이스포츠재단에 774억원을 ‘반강제적’으로 출연(기부)한 것이 대표적 사례”라고 썼다. 대기업은 정치권력의 강압에 못 이겨 돈을 건넨 일방적 피해자일 뿐이라는 인식이다.
검찰 수사나 국회 국정조사, 특검에 딴죽을 거는 모습도 보인다. 여야가 국정조사에 합의한 뒤인 17일 매일경제는 ‘검찰·특검·국정조사 3각 파고에 골병드는 기업’이란 제목의 사설에서 “무차별적인 반복 조사로 경제계를 쑥대밭으로 만들지 않을까 걱정이다. 이런 조리돌림식 수사가 이뤄진다면 글로벌 시장에서 우리 기업들의 이미지나 신뢰가 추락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썼다. 같은 날 김정호 한국경제 수석논설위원은 ‘기업 한다는 게 기적인 나라’라는 제목의 기명 칼럼에서 “총수들은 그때(국정조사 기간)까지 이리저리 불려다니며 정치의 희생양 노릇이나 하게 됐다”고 주장했다.
검찰의 중간 수사 결과 발표 뒤인 22일 한국경제는 ‘검찰에선 ‘기업은 피해자’ 명시했는데… 또 국조 불려나가는 총수들’ 제목의 기사에서 “국회가 또다시 기업 총수들을 불러놓고 ‘면박주기’나 ‘망신주기’를 반복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썼다. 23일치 1면 기사는 아예 “내라고 하니까 냈다. 검찰 조사도 받았다. 이번엔 국회 국정조사와 특별검사 수사를 받아야 한다. 죄인이 되어야 할 판이다”라며 대기업의 시점에서 서술한 문장으로 시작한다. 매일경제는 22일치 1면에 ‘그룹총수 9명 또 조사, 피해자 불러 망신주기’ 제목의 기사를 싣고, 관련 기사에서 “‘기업은 피해자’라고 규정한 검찰 수사 중간 발표 후 하루 만에 또다시 ‘준범죄자’ 취급을 받는 처지에 놓였다”고 전했다.
이들 신문은 비슷한 내용을 담은 기사와 사설을 하루가 멀다 하고 싣고 있다. “경제 위기”와 “대외 신인도 하락, 경영 공백” 우려가 도식처럼 따라붙는다. 아예 대기업 쪽 해명에 지면을 할애해주는 모습도 보인다. 한국경제는 18일과 23일 두 차례에 걸쳐 ‘팩트체크’라는 형식으로 국민연금의 삼성 합병 찬성건을 다뤘는데, 의혹 제기에 대한 국민연금과 삼성 쪽의 해명이 주된 내용을 이뤘다.
전국언론노동조합 민주언론실천위원회는 지난주 낸 긴급보고서에서 경제지들의 이런 보도 행태를 지적했다. 김동훈 민주언론실천위원장은 “전국경제인연합이 대주주이거나 대기업 광고를 주된 수입원으로 삼는 경제지들이 대기업에 종속된 기사를 양산하는 모습을 보이며 저널리즘을 훼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