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8일 오전 서울 상암동 MBC 사옥 로비에서 MBC 기자들이 펼침막을 걸고 ’보도 참사’에 대한 보도책임자들의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MBC기자협회·영상기자회 제공
박근혜 ‘국정파탄’ 게이트에서 가장 비판받은 분야 가운데 하나는 언론이었다. 언론의 보도 경쟁이 ‘비선실세’가 국정을 농단해온 정권의 흑막을 밝혀내긴 했지만, 이는 역설적으로 언론이 그동안 권력의 실체를 제대로 비판하지 못하고 ‘깜깜이’ 보도를 해왔다는 말과도 같다. 특히 사람들의 분노는 국민이 내는 수신료로 운영되는 공영방송에 집중됐다. 촛불집회 현장에서 사람들은 “언론도 공범”이라고 외쳤다. <한국방송>(KBS) 중계차에는 “니들도 공범”이라는 딱지가 붙었다. <문화방송>(MBC) 기자들은 쏟아지는 사람들의 분노가 두려워 ‘엠비시’ 로고를 뗀 채 중계를 해야 했다.
정부·여당의 입김을 업은 사장이 지휘하는 공영방송은 그동안 정권을 비판하지 않았다. 올해 7월 종합편성채널(종편) <티브이조선>이 ‘미르재단에 청와대가 개입했다’고 보도했을 때, 9월 <한겨레>가 ‘미르·케이스포츠 재단의 뒤에 최순실씨가 있다’고 보도했을 때, 공영방송은 줄곧 이 사안을 외면했다. 한국방송에서는 기자협회와 전국언론노조 한국방송본부(새노조) 등이 심층 취재의 필요성을 제기했지만 보도국 간부들은 “특정 정치 세력의 정략적 공세”라고 일축했다. 이명박 정부 때 170여일 파업을 거치며 징계·인사 등으로 내부 비판 세력에 단단히 재갈을 물린 문화방송에서는 아예 노사가 보도에 대한 의견을 주고받는 자리조차 사라진 상태였다.
10월24일 종편 <제이티비시>가 최순실씨 소유로 추정되는 태블릿 피시에서 ‘국정농단’의 근거를 찾아내어 보도하고, 다음날 박근혜 대통령이 대국민 사과를 했다. 정권 비판을 외면한 결과는 ‘보도 참사’로 드러났다. 그동안 침묵해온 두 공영방송에 안팎에서 분노가 끓어올랐다. 뒤늦게 특별취재팀이 꾸려졌으나 이미 물은 엎질러진 뒤였다. 공영방송 구성원들은 “종편과 신문의 뉴스를 받아써야 하는” 처지에 자괴감을 호소했다. 두 공영방송 노조들은 즉각 “보도책임자 사퇴”, “‘청와대 방송’ 중단” 등을 요구하며 천막농성과 손팻말 시위 등에 돌입했다.
한국방송 새노조는 10월26일 낸 성명에서 “한때 가장 신뢰받고 영향력이 있는 뉴스를 만들었다는 방송사의 구성원으로서 희대의 사건 앞에서 케이비에스가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쓸모없는 존재로 떨어졌음을 두 눈과 귀로 확인해야 하는 현실이 비참하다”고 했다. 징계·전보 등의 조처로 내부 비판을 억눌러온 문화방송에서도 오랜만에 입길이 트였다. 김주만 문화방송 기자는 11월7일 사내게시판에 “엠비시 뉴스데스크가 시청률 30%대를 기록한 적은 있어도 창사 이래 3%대를 기록한 적은 없다”며 보도국장·간부들의 퇴진, 보도국 밖으로 내쫓은 기자들의 원대복귀 등을 요구했다. 그 뒤로 문화방송의 반성과 쇄신을 요구하는 수십 건의 글이 릴레이로 올라왔다.
그러나 책임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뒤 공영방송뿐 아니라 다른 언론사들 내부에서도 반성과 쇄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왔고, 대다수 언론사는 보도책임자 교체 등으로 일부 변화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민영방송인 <에스비에스>(SBS)는 12월7일 대표이사를 새로 임명하고 보도책임자 교체를 포함한 조직개편과 인사를 단행했다. 반면 가장 큰 비판에 직면한 한국방송과 문화방송은 아직까지도 요지부동이다. 한국방송 양대 노조는 12월초 총파업 찬반 투표와 함께 본부장 6명에 대한 신임 투표를 실시했는데, 김인영 보도본부장을 포함한 3명이 구성원 3분의 2 이상의 ‘불신임’을 받았다. 한국방송 양대 노조는 단협에 따라 이들에 대한 해임을 건의했으나 경영진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제대로 된 단협조차 열리지 않고 있는 문화방송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한 문화방송 기자는 “불과 얼마 전까지 최순실 관련 뉴스를 내보내지 않으려 애쓰던 보도국 간부가 여전히 같은 자리에 앉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보도를 지휘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이런 가운데 가뜩이나 하락세였던 공영방송의 위상은 갈수록 추락하고 있다. 지난 16일 한국갤럽의 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 45%가 가장 즐겨보는 방송사 뉴스로 제이티비시를 꼽았다. 반면 한국방송은 18%, 문화방송은 5%에 머물렀다. 지난 10월 이후 ‘박-최 게이트’가 불거진 석달 동안 한국방송은 26%에서, 문화방송은 11%에서 이처럼 추락한 것이다.
이처럼 백척간두의 위기에 선 공영방송 구성원들의 목소리는 “사장 퇴진”까지 촉구하는 등 갈수록 절박해지고 있다. 한국방송에서는 최근 15년차 이상 고참급 기자 104명과 중견 피디 251명이 “고대영 사장 퇴진”을 촉구하는 성명을 냈다. 문화방송에서는 지난 28일 기자협회·영상기자회 소속 기자들이 김장겸 보도본부장과 최기화 보도국장 사퇴를 요구하는 성명을 냈는데, 회사 로비에서 진행한 손팻말 시위에 80여명이나 참여했다. 정권의 입김에 좌우되는 공영방송의 구조적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도 계속되고 있다. 현재 국회에는 정부·여당에 일방적으로 치우친 공영방송 이사회 구성을 바꾸는 내용을 담은 ‘언론장악방지법’(방송법 개정안)이 계류되어 있는데, 전국언론노조 등은 법안의 조속한 통과를 요구하며 새누리당사 앞에서 천막농성을 벌이고 있다. 정권의 ‘언론장악’ 실태를 밝히기 위한 국회 청문회 개최도 언론계의 주된 요구 사항이다.
최원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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