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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미디어

MBC 기자들은 어떻게 ‘잉여’와 ‘도구’가 되었나

등록 2017-02-02 14:44수정 2017-02-14 18:25

2012년 파업 뒤 ‘저항적 실천’ 실종
경영진의 ‘비인격적 인사관리’가 원인

업무 배제된 기자도, 남은 기자도
모멸감과 공포 속에 ‘죽은 노동’

“환경과 조건 바뀌면 주체들의
실천 전략도 바뀔 것… 지켜볼 필요”
MBC 기자 임명현씨 석사논문서 분석

MBC 기자로서 파업 이후 MBC의 상황에 대한 논문을 쓴 임명현씨.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MBC 기자로서 파업 이후 MBC의 상황에 대한 논문을 쓴 임명현씨.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한때 거침없는 권력 비판으로 응원을 받았던 공영방송 <문화방송>(MBC)의 뉴스는 이제 시청자들이 ‘안 본다’며 조롱하고 기자들이 ‘죄송하다’며 반성문을 써내야 하는 대상이 됐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계기로 ‘공영방송 지배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받고 있지만, 과연 지배구조를 바꾸는 것만으로 ‘엠(문화방송을 가리키는 언론계 은어)의 비극’을 바로잡을 수 있을까?

문화방송 소속 14년차 기자인 임명현씨는 최근 성공회대 문화대학원에 석사학위 논문 ‘2012년 파업 이후 공영방송 기자들의 주체성 재구성에 관한 연구’(지도교수 김창남)를 써냈다. 2012년 문화방송 구성원들은 김재철 전 사장의 퇴진을 요구하며 170일 동안 ‘공정방송’ 쟁취 파업을 벌였는데, 논문은 22명의 문화방송 기자들의 심층 인터뷰 등을 통해 파업 뒤 문화방송 경영진이 도입한 ‘인사관리’(HR) 정책이 구성원들의 주체성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분석했다. 설 연휴를 앞두고 <한겨레>와 만난 임씨는 “기자가 아닌 연구자로서 인터뷰에 응한 것”이라 강조하며, 연구자로서 논문의 의미를 상세히 밝혔다.

무엇보다 임씨는 문화방송 구성원들이 더이상 저널리즘을 위한 ‘저항적 실천’에 나서지 않게 된 근본 원인이 무엇인지에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 정권이 정부·여당 편향적인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를 앞세워 문화방송을 압박하는 등 ‘지배구조’의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지만, 사실 지배구조는 오랫동안 그대로였던 반면 활발했던 ‘저항적 실천’은 어느 순간 눈에 띄게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 때만 하더라도 여러차례 파업이 있었고, 뉴스 조직 내부에서는 활발한 문제 제기와 열띤 토론도 있었습니다. 지배구조, 정권의 성격, 구성원도 바뀐 게 없다면, 결정적 원인은 다른 곳에 있을 거라 생각했죠.”

그래서 주목한 것이 바로 ‘비인격적 인사관리’(abusive HR)다. 최근 노동·조직학계에서 조명받는 개념으로, “관리자의 적대적인 언어적·비언어적 행위가 지속적으로 나타나고 이를 노동자들이 과하다 싶게 인식하는 경우” 정도로 풀이된다. 고용노동부도 “업무상 필요성이 없거나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전근·전출 등에 의해 노동자를 퇴직으로 유도하는 경우” 등 비인격적 인사관리 사례들을 제시한 바 있다. 문화방송 경영진은 파업 뒤 징계, 전보, 직종 전환 등 다양한 방식을 통해 파업 참가 구성원들을 본 업무에서 ‘배제’시켰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전국언론노조 문화방송본부(노조) 집계로는 전체 165명의 파업 참가자들이 ‘업무 배제’를 겪었고, 4년이 지난 지금도 91명이 여전히 ‘무관 부서’에서 일하고 있다. 임씨는 이를 ‘비인격적 인사관리’란 개념으로 풀이한 것이다.

단지 파업 참가에 대한 응징이나 보복의 차원이었다면, 이들 대다수가 아직까지도 본 업무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설명하기 어렵다. 이 대목에서 임씨는 논문의 커다란 줄기가 되는 가설을 찾았다. “비인격적인 인사관리는 현 경영진이 추구하는 새로운 뉴스를 만들기 위한 ‘엔진’이고, 그것이 구성원들의 정체성을 ‘잉여적 주체’와 ‘도구적 주체’로 변화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 문화방송은 저널리스트 개개인의 역량을 강하게 주문하는 등 ‘전문직주의’ 풍토가 강한 조직이었다. 임씨는 “저널리즘에는 고정된 기준이 없기 때문에 기자들이 각자의 전문성을 토대로 삼아 토론을 벌이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전문직주의는 뉴스 조직 내부의 커뮤니케이션을 촉발시키는 기제”라고 말했다. 그러나 현 경영진은 수직적으로만 작동하는 뉴스 조직을 원했으며, 이를 위해 ‘비인격적 인사관리’를 도입해 전문직주의를 파괴했다는 설명이다.

‘잉여적 주체’는 해고되거나 보도본부 밖에서 무관 업무를 맡게 된 기자들, 보도본부 안에 있지만 지원 업무만 장기간 담당하고 있는 기자들이다. “경영진이 이들의 능력과 전문성 자체에 대해 필요성을 인정했다면, 이들을 이렇게 오랫동안 본업의 외부에 버려두지는 않았을 것”이었다. 버려진 시간이 길어지면서, 기자로서 스스로의 존재를 인정받지 못하게 된 이들은 모멸감과 분노, 공포 등을 점차 자기 자신과 주변으로 돌리게 됐다. 반면 뉴스생산 조직 안에 남은 기자들은 ‘도구적 주체’로, 여기에는 파업에 참가했다가 복귀한 기자들, 파업 이후 입사한 ‘시용·경력 기자’들 일부가 포함된다. 이들은 언제든 ‘잉여적 주체’가 될 수 있다는 위협 속에서 경영진이 강제한 새로운 뉴스 생산 체계에 적응하게 됐고, 일종의 ‘납품업자’가 됐다. 수치심과 무력감, 패배주의 등이 이들의 내면을 대변했다. 파업 뒤 입사한 시용·경력 기자들의 경우엔 파업 참가 구성원들과의 관계에서 따돌림, 모멸감 주기 등의 갈등도 겪었다. 이처럼 변화된 환경 속에서 각자의 생존을 모색한 결과, 저널리즘을 위한 실천은 사라졌고 이들이 수행하는 노동은 ‘죽은 노동’이 됐다.

그러나 임씨는 “무대 위는 평온해 보이지만, 권력은 무대 뒤까지 완벽하게 장악하진 못했다”며, 이 과정에 남은 ‘찌꺼기’에 주목했다. 잉여적 주체든 도구적 주체든, 대다수 구성원들은 저널리즘을 위한 ‘저항적 실천’을 포기했다기보다는 ‘유예’하고 있었다. 흔히 “그럴 거면 뭣하러 엠비시에 남아있냐”고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물론 ‘엠비시 정규직’이라는 사회경제적 지위를 유지하고자 하는 심리가 기본적으로 작동하고 있지만 그와 더불어 “언젠가 ‘예전의 엠비시’로 돌아가면 우리가 추구하는 저널리즘을 다시 실천할 수 있을 것”이라는 불확실한 희망도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무대 뒤에서 이를 갈면서 버티고 있는” 셈이다. 만약 ‘유예’해둔 실천이 또다시 봉쇄당하면, 그래서 영구적으로 잉여와 도구로서 살아가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그 때 구성원들은 문화방송을 완전히 이탈할 수도 있다. 임씨는 “‘유예’가 과도하게 낙관적이고 희망적으로 해석되는 것은 경계”한다면서도, “환경과 조건이 바뀌면 주체들의 실천 전략도 바뀐다. 외부적 국면의 진행에 따라 문화방송 구성원들의 실천 전략이 어떻게 변해가는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권력이 내 목소리를 전혀 들어주지 않을 때 과연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는 고민을 담았습니다.” 임씨는 자신의 논문이 지닌 사회적 의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문화방송 내부에서 권력이 작동하는 방식과 구성원들의 생존 전략은, 이 사회 전체의 모습과도 서로 통한다. 불안정한 신자유주의적 삶의 조건은 서로가 서로를 의지하지 않도록 가로막고, ‘내가 더 힘들다’고 경쟁하듯 말하게 만든다. 권력은 자신에 대한 비판을 봉쇄하고, 봉쇄당한 분노와 공포는 되레 자기 자신과 힘없는 주변 사람들을 향한다. 임씨가 들여다본 문화방송 내부 역시 권력에게 생존 기반을 공략당해 취약해진 주체들이 서로 벽을 쌓고 갈등을 빚고 있는 모습이었다. 임씨는 “이런 시기일수록 서로 간의 이해가 더 필요하다”며 자신의 논문이 그런 구실을 해주길 바란다고 했다. 또 파업 참가 기자들과 시용·경력 기자들 사이의 갈등에 대해서도 “시용·경력 기자들에 대해 윤리의식 부족 등 여러가지 비판이 있을 수 있지만, 미디어 환경 변화에 따른 불안정한 노동조건에 따라 선택에 내몰린 주체로서의 입장을 함께 살펴야 한다”고 덧붙였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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