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이른바 ‘고영태 파일’ 내용을 다룬 MBC <뉴스데스크> 리포트. MBC 화면 갈무리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심판이 코앞에 다가온 가운데 공영방송 <한국방송>(KBS)과 <문화방송>(MBC)이 이른바 ‘고영태 파일’을 집중 보도하는 등 주로 탄핵 반대 세력의 입맛에 맞는 보도를 내놓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 과정에서 박 대통령쪽은 고영태 전 더블루케이 이사가 측근들과 나눈 대화가 녹음된 이른바 ‘고영태 파일’을 근거로 ‘국정농단’ 사태를 “대통령과 상관없는 고씨의 기획”이라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사안의 핵심과는 큰 관련이 없어서, 박 대통령쪽의 ‘시간 끌기’ 전략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그러나 유독 두 공영방송만은 ‘고영태 파일’에 대한 ‘단독’ 보도 등을 이어가며 이 사안에 매달리는 태도를 보였다.
지난 2월8일부터 19일까지 한국방송은 ‘고영태 파일’에 대해 13건, 문화방송은 11건의 리포트를 내놨다. 4건의 리포트를 낸 같은 지상파 방송 <에스비에스>(SBS)에 견줘 보도 분량이 갑절 이상 많다. 게다가 보도 내용을 보면, ‘고영태 파일’ 가운데 박 대통령이나 최순실씨와 연관된 지점은 제쳐둔 채 대체로 고씨의 사익 추구와 언론 폭로 기획 정황만을 집중적으로 다뤘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이 지난 20일 낸 방송 모니터 보고서를 보면, 한국방송은 전체 ‘고영태 파일’ 보도 13건 가운데 10건을, 문화방송은 전체 11건 가운데 10건을 ‘최순실 국정농단’ 프레임이 아닌 ‘고영태 게이트’ 프레임으로 다룬 것으로 나타났다.
전국언론노조 한국방송본부(새노조)는 지난 17일 낸 ‘대선방송감시단 보고서’에서 “한국방송은 국정농단 실체가 낱낱이 기록된 ‘안종범 업무수첩’과 ‘정호성 녹취록’, ‘조원동 녹취록’ 등에 대해 꿀먹은 벙어리였는데, 박 대통령쪽이 주장하는 ‘고영태 음모론’을 부각시키는 데에는 발벗고 나서고 있다. 탄핵 반대 세력의 프레임을 따르고 있다”고 비판했다.
특히 문화방송은 일부 언론이 국정농단 사태를 ‘기획’해서 터뜨린 것이라는 의혹을 담은 보도도 내놨다. 문화방송은 지난 18일과 21일 ‘고영태 파일’ 관련 보도에서 “모 언론사 이모 기자”가 등장하는 대목에 초점을 맞추고, “특정 언론사 기자가 증거인멸을 지시하는 등 깊숙이 개입한 정황도 들어있다”고 보도했다. 그동안 극우단체 등을 중심으로 “국정농단 사태는 특정 언론사가 조작한 기획”이라는 주장이 나왔는데, 이런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듯한 보도다. 실제로 문화방송에서 이 같은 보도들이 나오자, 친박단체 등 탄핵 반대 세력들이 서울 상암동 문화방송 광장을 찾아가 “엠비시만 공정방송을 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집회를 열기도 했다. 문화방송은 이런 움직임을 겨냥한 듯, 방송법 개정안 등 ‘언론장악방지법’ 관련 움직임과 자사 경영진의 부당노동행위를 따져보는 국회 청문회 등을 “언론장악 의도”라고 주장하는 보도를 잇따라 내놓기도 했다.
최원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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