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1일 MBC 뉴스데스크는 탄핵 반대를 주장하는 ‘태극기집회’를 부각하는 보도 태도를 보였다. MBC 화면 갈무리
<문화방송>(MBC)이 지난 3·1절 서울 시내 집회와 관련, 이례적으로 ‘태극기집회’ 관련 보도를 ‘촛불집회’ 관련 보도보다 앞에 배치하는 등 태극기집회를 부각하는 보도를 내보내 눈길을 끌고 있다. 최근 새 사장 선임 강행에 대해 “문화방송을 극우세력의 보루로 삼으려 한다”는 비판이 일었는데, 이런 움직임이 현실화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지난 3월1일 문화방송은 메인뉴스 프로그램 <뉴스데스크>에서 ‘유례없는 3·1절 집회, 도심 곳곳 태극기 물결’이란 제목의 헤드라인을 내보낸 뒤, 박근혜 대통령 탄핵 반대를 주장하는 태극기집회에 대한 보도를 잇따라 3꼭지 배치했다. 탄핵을 촉구하는 촛불집회에 대해서는 이어지는 2꼭지로 보도했다. 반면 <한국방송>(KBS)은 <뉴스9>에서 촛불집회 관련 보도를 3번째 꼭지로, 태극기 집회 관련 보도를 4번째 꼭지로 배치했다. <에스비에스>(SBS)도 촛불집회 관련 보도를 2번째 꼭지로, 태극기집회 관련 보도를 3번째 꼭지로 배치했다.
그동안 방송사들은 대체로 촛불집회 관련 보도를 먼저 내보내고, ‘맞불집회’ 성격을 띤 태극기 집회 관련 보도를 뒤이어 내보내는 태도를 취해왔다. 촛불집회가 더 먼저 시작됐을 뿐 아니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촉발된 시민 여론을 대표하는 광장이라는 공통의 인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문화방송 역시 이런 보도 태도를 유지해왔고, 지난달 25일 뉴스데스크에서도 촛불집회를 5번째 꼭지로, 태극기집회를 6번째 꼭지로 보도한 바 있다.
그런데 문화방송의 지난 3월1일 보도는 이 순서를 뒤집었을 뿐 아니라 아예 태극기집회에 더욱 힘을 싣는 모습을 보였다. 3·1절 스케치 성격의 헤드라인 리포트에서부터 “지난해 11월 주최측 추산 6만명, 경찰 추산 1만명으로 시작된 태극기집회는 오늘 수많은 태극기의 물결이 됐다”고 전하는 등 태극기집회에 방점을 찍었다.
태극기집회 규모와 양상을 전한 2번째 꼭지에서는 “끝이 보이지 않는 태극기 물결이 탄핵 무효를 외치는 함성과 함께 광장을 흔들어 놓았다”는 감성적인 표현까지 동원됐다. “탄핵을 당해야 할 사람은 박근혜 대통령이 아니라 국회의원들이다. 반드시 저들을 탄핵하자”는 박 대통령 대리인 김평우 변호사의 연단 발언을 비롯해, 탄핵 반대 세력의 주장들을 인터뷰 등으로 상세하게 담았다. 탄핵을 요구하는 사람들을 ‘종북세력’이라고 비난하는 발언까지 담겼다. 3번째 꼭지에서 취재 기자는 “태극기집회가 회차를 거듭하면서 참가자들은 불의와는 타협하지 않겠다고 입을 모았다”고 전하기도 했다.
지난 3월1일 MBC 뉴스데스크는 탄핵 반대를 주장하는 ‘태극기집회’를 부각하는 보도 태도를 보였다. MBC 화면 갈무리
이에 견줘 촛불집회 관련 보도는 간략했다. 촛불집회 참가자들이 참여한 ‘국민주권선언’ 등을 별도의 꼭지로 다루긴 했으나, 전체적으로 이날 촛불집회의 핵심 주장은 “헌재의 탄핵 인용과 함께 특검 연장을 거부한 황교안 권한대행 퇴진을 외쳤다” 정도의 리포트로 압축됐다.
문화방송은 그동안 <제이티비시>(JTBC)가 보도한 최순실씨 소유 태블릿 피시의 출처에 대한 의혹 보도, 고영태씨가 국정농단의 축이었다는 식의 의혹을 담은 ‘고영태 녹취’ 보도 등에 집중하며, 사안의 핵심을 제대로 전하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반면 탄핵 반대 세력들은 “문화방송만 공정보도를 한다”며 문화방송 사옥 앞에서 집회를 여는 등 환호를 보냈다. 최근 김장겸 보도본부장이 언론시민사회의 반대에도 새 사장으로 임명되면서 문화방송이 앞으로 더 적극적으로 탄핵 반대 세력을 대변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이 때문에 이번 3·1절 집회 보도가 그 신호탄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이름을 밝히길 꺼린 한 방송기자는 “방송사가 촛불집회를 앞세워 보도하는 것은 지극히 합리적인 상식으로부터 나온 일종의 관행이다. 최근에는 방송사들이 비상식적인 주장이 난무하는 태극기집회를 촛불집회와 ‘반반씩’ 나란히 보도하는 태도를 보여, 내부에서 이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은 실정”이라고 전했다. 또다른 방송기자는 “이런 상황에서 태극기집회를 앞세워 보도하는 것은 박근혜 대통령 세력과 같은 배를 탔다는 선언이나 마찬가지”라고 비판했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