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친박집회를 “보수권 집회의 새로운 장을 마련했다”고 평가한 MBC <뉴스데스크> 보도. MBC 화면 갈무리
박근혜 전 대통령이 파면된 뒤, 그동안 탄핵 반대 세력의 입장을 주로 반영해왔다는 평가를 받아온 <문화방송>(MBC)의 행보에 눈길이 쏠린다. 최근 시사 프로그램 불방, 기자·피디 ‘부당 전보’, 박 전 대통령에게 초점을 맞춘 보도 태도 등이 불거지며, “문화방송이 극우파 선전매체로서의 정체성을 다지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전국언론노동조합 문화방송본부(이하 노조)는 지난 15일 발행한 노보에서 “지난 13일 방송 예정이었던 <엠비시 스페셜> ‘탄핵’ 편이 불방됐다”고 밝혔다. 지난 10일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 선고 이후, 방송사들은 탄핵 관련된 다큐멘터리를 앞다투어 내보냈다. <한국방송>(KBS)은 11일 ‘제18대 대통령 박근혜 탄핵’ 제목의 1시간짜리 프로그램을 긴급 편성했고, <에스비에스>(SBS)는 12일 <에스비에스 스페셜>에서 ‘사건번호 2016헌나1’ 제목의 프로그램으로 탄핵의 배경과 의미를 짚었다.
그러나 문화방송은 아무런 특집도 내보내지 않았다. 애초 ‘탄핵’ 편이 13일 밤 <엠비시 스페셜>에서 방송될 예정이었으나, 대신 ‘탈북자의 귀농’ 편이 방송됐다. 지난 2월28일 김현종 당시 편성제작본부장(현 목포엠비시 사장)이 갑자기 ‘탄핵’ 편의 제작 중단을 지시했기 때문이다. 제작진은 지난 12월 승인을 받은 것으로 알고 제작을 진행해왔다. 그러나 김현종 당시 본부장은 “보고받은 기억은 있지만 승인한 적은 없다”고 말했고, 후임인 김도인 편성제작본부장은 “인수인계받은 것이 없으며, 본인도 이 아이템의 방송을 승인할 수 없다”고 말했다고 노보는 전했다. 이에 노보는 “헌정 사상 최초로 대한민국 대통령이 헌법과 법률 절차에 따라 파면된 역사적 사건을 기록으로 남기는 것은 방송제작자의 당연한 의무인데, 공영방송인 엠비시가 이를 포기했다”고 비판했다.
‘부당 전보’ 논란도 함께 일었다. 탄핵 선고가 있던 10일 오전 사원 인사발령이 났는데, 피디와 기자 7명이 자신의 본래 업무와 관련 없는 ‘뉴미디어포맷개발센터’로 전보 발령을 받은 것이다. 이번에 ‘불방’된 ‘탄핵’ 편을 제작한 이정식 피디를 포함해, 노조 위원장을 역임했던 이근행 피디, ‘황우석 논문 조작’ 사건을 파헤쳤던 한학수 피디 등이 여기에 포함됐다. 문화방송은 그동안 본래 업무와 관련 없는 부서로 보내는 방식의 ‘부당전보’와 ‘업무배제’로 내부 구성원들을 잡도리해왔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특히 2014년 10월 신설된 뉴미디어포맷개발센터는 본사에서 지리적으로 떨어져 있는데다 별다른 예산 배정도 없어, 내부에서 ‘유배지’로 악명이 높았다. 노보는 “반면 이달 초 단행된 보직 인사에서는 ‘불공정 보도’의 주범들이 요직으로 승진 배치됐다. 김장겸 사장 취임 뒤 문화방송은 극우파 선전매체로 정체성을 확고히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지난 13일 박근혜 전 대통령의 눈물을 강조한 MBC <뉴스데스크> 보도. MBC 화면 갈무리
이러한 문화방송의 현주소를 종합적으로 드러내주는 것은 보도다. 탄핵 선고가 있던 10일 문화방송 <뉴스데스크>는 ‘보수세력 결집… 태극기 집회 ‘새 바람’’ 리포트에서 “주최측 추산 누적 참가자 1500만명. 19번에 걸쳐 펄럭였던 태극기의 물결은 대통령 퇴진을 막지 못했지만 보수권 집회의 새로운 장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날 친박집회가 사망자 3명을 낼 정도로 폭력적인 양상을 띠었는데, 비판보다는 긍정적인 의미 부여에 주력한 것이다. 다음날인 11일에는 머리기사로 박 전 대통령의 동정을 두 꼭지 전한 뒤 곧이어 ‘탄핵 무효’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인터뷰 등을 중심으로 구성한 친박집회 관련 보도를 내보냈다.
지난 13일 ‘박근혜의 복심’이라는 이정현 의원을 조명한 MBC <뉴스데스크> 보도. MBC 화면 갈무리
박 전 대통령의 동정을 전한 문화방송 보도에는 어김없이 지지자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제목과 표현이 붙었다. 12일 청와대를 나온 박 전 대통령의 모습을 전한 보도에는 ‘엷은 미소를 띠며 지지자들의 연호에 화답’ 제목이, 13일에도 전날의 상황을 다시 되짚은 보도를 내보내며 ‘박 전 대통령 끝내 눈물… 과거 대통령과 달랐던 귀갓길’이란 제목이 달렸다. “차마 눈물까지 감추진 못했다”, “사저 현관에 들어서는 순간 눈물이 쏟아져 화장이 지워졌다” 등의 표현도 들어갔다. ‘진용 갖춘 친박계… 탄핵 반대 세력화?’(3월12일), ‘박근혜 복심… 이정현 어디에?’(3월13일) 등 이른바 ‘사저 정치’를 부추기는 듯한 보도도 나왔다.
노동조합 민주언론실천위원회와 엠비시기자협회, 엠비시영상기자회는 최근 120여명으로 이뤄진 ‘대선 보도 감시단’을 공동 출범시키고, “근거 없이 특정 후보 진영이나 정파를 비호하거나 비난하는 편파·왜곡 보도, 선거 보도를 회사 경영진의 안위에 이용하는 ‘뉴스 사유화’ 등을 철저히 감시하고 기록해 그 책임을 묻겠다”고 밝혔다.
최원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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