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개표방송 ‘2017 국민의선택’ 제작진 인터뷰
온라인에서 국외 누리꾼들까지 감탄…‘개표방송 한류’
온라인에서 국외 누리꾼들까지 감탄…‘개표방송 한류’
‘<비비시>(BBC, 영국 공영방송)는 이 방송에서 영감을 얻어야 한다.’ 9일 유튜브에 게시된 <에스비에스>(SBS) 개표방송 동영상 아래, 가장 많은 추천을 받은 댓글이다. 이 댓글은 영어로 쓰였다. ‘방송을 보니, 한국을 방문하고 싶다’는 댓글도 여럿.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는 물론 여러 외신이 에스비에스 개표방송에 주목했다. 5월9일 단 하루를 위해 만든 개표방송이 온라인에서 다양한 ‘밈’(meme, 재미있는 메시지를 입힌 사진이나 영상)으로 확산됐다. 이번 에스비에스 개표방송은 전통적인 의미의 티브이 시청률에선 <한국방송>(KBS), <제이티비시>(JTBC)에 밀렸지만, 화제성은 ‘개표방송 한류시대’까지 열었다고 할 만하다.
에스비에스는 이에 호응해, 영상에 영어 자막을 붙인 영문판을 11일 유튜브에 게시했고, 12일에는 본방송에 내보내지 못한 미공개 장면을 포함한 ‘풀버전’ 동영상을 공개했다. 이번 개표방송을 이끈 하현종 선거방송기획팀 총연출, 이병희 바이폰(선거 관련 정보를 전달하는 그래픽) 담당 연출, 이상미 메인 작가를 14일 서울 목동 에스비에스 사옥에서 만나, 개표방송 뒷이야기를 들었다.
■ 문 대통령 ‘히말라야 사진’으로 지켜낸 ‘권좌를 찾아서’ 이번 개표방송에도 다양한 패러디의 향연이 펼쳐졌다. 모바일 게임 ‘포켓몬고’를 패러디한 ‘투표몬고(GO)’, <프로듀스101> 주제곡에 인형뽑기 게임을 결합한 ‘픽미픽미’를 포함한 패러디물의 정점은, 미국 드라마 <왕좌의 게임>을 패러디한 ‘대선 게임-권좌를 찾아서’였다. 실사 촬영이 불가능해 100% 컴퓨터그래픽(CG)으로 만들었다.
결과적으로 ‘권좌를 찾아서’는 개표방송 최대의 흥행몰이 역할을 했다. 기획 단계에서는 내부 반대가 컸다. “한국 대선에 웬 ‘미드’냐”, “화려한 시지에 치중하기보다 정보 전달에 충실하라”는 ‘윗분’들의 우려가 컸기 때문. 하지만 선거방송기획팀은 포기하지 않았다. “선거에서 중요한 건 누가 1위를 하느냐는 ‘결과’뿐이 아니다. ‘과정’도 중요하다. 다자 구도가 예측된 이번 ‘과정’을 개표방송 콘텐츠로 만들려면 <왕좌의 게임>이 적합하다고 판단했다.”(이 연출)
의도치 않게 문재인 대통령의 도움도 받았다. 팀에서 시험삼아 당시 문 후보의 히말라야 산행 사진을 ‘권좌를 찾아서’ 콘셉트로 합성했고, 이 이미지로 여러 사람의 우려를 불식했다. “시험 이미지를 본 사람들이 ‘새롭다’, ‘대선 후보를 저렇게 풀어낼 수도 있겠구나’라고 여기게 됐다.”(이 작가) 실제 ‘권좌를 찾아서’ 제작에는 히말라야 사진이 아닌 2014년 ‘세월호 단식’ 때 촬영된 문 대통령의 사진을 사용했다.
짧은 장면이었지만, 방송 즉시 ‘짤’(밈과 비슷한 의미의 인터넷 이미지)로 만들어져 누리꾼 입길에 올랐던 건, 박근혜 전 대통령을 연상시킨 장면이다. 지역별 선거예측 결과 정보를 전하면서, 대구 지역에서는 빨간 윗옷을 입은 채 올림머리를 하고 그네에 앉은 한 여성이 문 후보, 홍 후보의 달리기를 지켜보는 장면을 넣었다. 곧바로 이 여성이 문 후보, 홍 후보가 그려진 모래사장에 막대기로 원을 그리는 장면도 이어진다. “‘박 전 대통령이 차기 대통령 1, 2위 후보를 바라보는 심정은 어떤 심정일까, 이런 걸 담아보고 싶었는데 (시청자들이) 재미있게 봐주시더라. 모래 장면은 ‘저도의 추억’을 패러디했다. 박 전 대통령이 문 후보 얼굴에 흙을 뿌리는 거 아니냐고 해석하는 분들도 있던데, 후보 얼굴을 많이 건드리지 않게 하려고 일부러 거리를 조정까지 한 장면이다.”(하 총괄)
■ 상식과 공감을 나누는 ‘투표로’ 지난 개표방송에서 전국 명소와 대자연을 누비던 곰돌이 캐릭터 ‘투표로’는, 이번 개표방송에서 시민들의 희로애락이 담긴 현장들을 둘러봤다. 지역별 투표율·개표율을 전하는 영상에서 투표로는 비정규직 청년이 목숨을 잃었던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에서 ‘나는, 또한 당신입니다’라고 쓴 메모를 손에 들었다. 화재로 그을린 대구 서문시장의 검은 연기를 털어냈고, 강진으로 아픔을 겪은 경북 경주의 첨성대를 일으켰다. 경기가 어려운 경남 조선소를 밝히고, 3년여 세월호가 가라앉아 있던 전남 진도 앞바다에서 잠수부 복장을 하고 하늘의 ‘세월호 구름’을 바라봤다. 영상 마지막에서는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시민들과 함께 촛불을 든다.
‘투표로’의 행보 또한 사내 반대에 부딪쳤다. ‘정치적’으로 보일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하지만 결국, 상식과 치유에 초점을 맞췄다. “과거 개표방송 때는 ‘숫자만 봐야 하는 시청자들이 갑갑하지 않을까’ 싶어 자연의 모습을 많이 담으려고 했는데, 이번 선거 국면에는 국민들이 있던 현장에 ‘투표로’도 함께 있었다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이 작가) “사회적 연대를 표현하고 싶었다. 연대는 다른 게 아니라, 곁에 함께 있다는 의미다. 구의역, 강남역 사건 등에서 시민들이 보여준 모습이 바로 ‘나도 당신들과 뜻을 함께 한다’는 행위였고, 그런 행동이 집약적으로 나타난 게 ‘촛불’이었다. 그래서 투표로가 국민들 곁에 가야한다고 설득했다. 정치적 사건인지 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상식적인 사람들이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어디에 공감하는지에 집중하자고 했다.”(하 총괄)
배우 유인나가 내레이션으로 참여한 ‘하늘을 날아서’도 호평받았다. 전국 개표 현황을 지도 위에서 수평적으로 보여주는 대신, 각 대선후보가 풍선을 들고 수직 상승하는 이미지로 표현했다. “투표라는 행위가 우리가 모르는 미지의 세계로 데려간다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 희망을 전하려고 했다.”(이 작가) “예상했던 것보다 ‘고퀄’로 나왔다. 결과 이미지를 보고 이건 기자나 아나운서가 맡을 게 아니라고 판단했고, 유인나씨를 섭외했다. 담당 디자이너(이효원)의 역량이 많이 발휘된 그래픽이다.”(하 총괄)
■ 다음 개표방송도 시대 ‘민심’ 파고든다 에스비에스 개표방송 제작에는 200여명이 참여했다. 단 하루 방송을 위해,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힘을 모은다. 이번 개표방송은 특히 준비 기간이 8~9개월가량 되는 다른 선거의 반토막에 불과했다. 지난 1월부터 기획과 실행이 동시에 이뤄졌다. 예상치 못한 큰 변수로, 방송을 타지 못한 ‘비운의 이미지’도 나왔다. 지난 2월1일 디자이너가 밤낮없이 사흘을 꼬박 들여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 3D 모델링 작업을 완성하고 30분 뒤, 반 전 총장이 대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사무실 전체가 얼어붙었고, 담당 디자이너는 말없이 사무실을 나갔다. 선거방송기획팀은 카메라 앞은 물론 카메라 뒤에서 역할한 모든 이들을 소개하려고, 특별영상을 제작해 유튜브로 배포했다.
‘개표방송의 미래를 어떻게 전망하는지’ 물었다. 하 총괄이 답했다. “2012년, 2016년 젊은 유권자들은 이미 온라인에서 유머와 패러디를 즐기는 문화에 익숙했고, 그런 분위기에 바탕했기 때문에 입소문을 탄 것이다. 다음 개표방송도 유권자들이 어떤 걸 기대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을 것 같다.”
김효실 기자 trans@hani.co.kr
지난 11일 에스비에스는 ‘권좌를 찾아서’(Korea Election broadcast looks like game of thrones) 영어 자막 버전을 게시했다. 에스비에스 제공
에스비에스 선거방송기획팀이 기획 단계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히말라야 산행 사진을 미국 드라마 <왕좌의 게임> 콘셉트로 만들어본 시험 이미지. 에스비에스 선거방송기획팀 제공
유일하게 머리가 길었던 막내 작가가 박 전 대통령의 올림머리를 재현하고자 연기까지 나섰다. 에스비에스 갈무리
김민영 디자이너가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 3D 모델링 작업을 마친 날 오전, 반 전 사무총장은 대선 불출마 선언을 했다. 에스비에스 선거방송기획팀 제공
<한겨레>는 이번 에스비에스 개표방송을 이끈 하현종 선거방송기획팀 총연출(가운데), 이병희 바이폰(선거 관련 정보를 전달하는 그래픽) 담당 연출(왼쪽), 이상미 메인 작가를 14일 서울 목동 에스비에스 사옥에서 만나, 개표방송 뒷이야기를 들었다. 세 사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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