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은
강원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
‘한겨레신문이라면’ 달라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한겨레가 어떤 신문인가. 1961년 5월 서슬 퍼런 박정희 계엄군 치하에서 겨우 창간 3개월이던 <민족일보>가 종간되고 무려 27년을 기다려 우리 곁에 온 진보언론 아닌가. 한겨레를 만든 이들은 누군가. 1975년과 1980년, 박정희와 전두환 정권에 의해 강제해직됐던 동아투위, 조선투위, 80년 해직언론인들이 전면에 있었다면, 국민주 모금에 참여했던 2만7천여 주주들이 그 뒤에 든든히 자리하고 있었다. 더 크게는 87년 민주화 항쟁에 나섰던 시민 모두가 한겨레를 만든 이들이라 해도 무리가 아니다.
한겨레의 시도는 새롭고 혁신적이었다. 한글 전용 가로쓰기가 가져온 지면 변화는 일본식 판짜기와 기사쓰기를 답습하던 한국 언론에 변화의 물꼬를 텄다. 이념적으로는 친정부 보수언론 일색이던 언론장에 균열과 분화를 가져왔고, 편집국장 직선제와 윤리규정 마련 등 새로운 조직문화를 확산시켰다. 진보신문이 수익을 내기 어려운 미디어 생태계에서 이만큼이라도 버텨온 것은, 그래도 ‘한겨레라서’ 가능했던 일이었다.
한겨레를 쓰려는데 자꾸만 ‘헌겨레’로 오타가 난다. 계속 고치다가 문득, 어쩌면 한겨레가 가졌던 새로움과 혁신의 본능은 소멸하고 그저 그렇고 그런 주류언론의 하나가 되어버린 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생겨난다. 공교롭게도 ‘한겨레신문이라면’ 달라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충격과 배신감을 안겨준 일들이 최근 지속적으로 일어났다. 안타깝게도 의구심을 확신으로 전환시키는 데에는 단 몇 개의 기사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을 한겨레는 아직 모르는 것 같다. 언론에 대한 신뢰는 사실증거에 기반하기보다 추상적 신념 체계에 가깝기 때문이다.
한겨레는 시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길이 무엇인지 전사적 차원에서 고심하고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첫째, 무엇보다 한겨레만의 투철한 기자정신을 지면에서 증명해야 한다. 한국 언론의 나쁜 관행과 구조적 문제를 타파하려는 노력을 보다 선도적으로, 보다 치열하게 지속해야 한다. 다른 신문들이 대충 관습적인 기사를 써내도, 쓰나 마나 한 기사를 써도, 쓰다 만 것 같은 기사를 내보내도, ‘한겨레신문이라면’ 그래선 안 된다. 공들인 취재로 한겨레만의 깊이있는 분석과 해설이 담긴 기사를 내놓아야 한다. 사안을 큰 틀에서 파악하고 역사성과 맥락성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둘째, 취재원보다 독자와의 관계가 중요하다는 것을 한겨레는 받아들여야 한다. 말로만 독자를 외치면서 눈높이는 힘있는 자들에게 두고 그들과의 연대를 추구했다는 의심을 불식시키려면, 진심으로 독자를 파트너로 인정하고 독자를 중심에 두어야 한다. 그들의 의견을 듣고 반영하려는 노력과 시도가 다양하게 행해져야 한다.
시민들 역시 한겨레에 대한 지지와 믿음을 통째로 허물기보다 일정한 범위 안에서 생산적 비판을 해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시민과 진보언론의 갈등과 마찰로 이득을 보는 것이 누구인지 짚어보고 경계해야 한다. 공직자 후보들의 조그마한 흠결을 부풀려 흔들고 떨어뜨린 이들을 생각하자. 능력있는 후보 장관 만들어 마음껏 부려먹자고 했던 것처럼, 한겨레도 제대로 부려먹을 방법을 찾아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