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외국어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진보와 보수가 신고리 5·6호기 핵발전소 건설공사 중단 여부를 결정할 공론화위원회(이하 공론화위)의 성격과 역할에 대해 상반된 평가를 내놓는다. 진보적 성향의 시민단체와 언론은 공론화위가 한국 민주주의의 새로운 시험장이 된다(예, <한겨레> 7월31일치 1면)는 입장이다. 반면 보수적 논조의 종이신문은 공론화위가 시민사회 참여를 확대시켜 대의민주주의제를 보완하는 장치이지만 이번 공론화위는 국가가 정책 결정 책임을 시민사회에 떠넘기기 위해 만든 정치적 도구라는 비판적인 입장(예, <조선> 7월29일치 26면)을 전한다. 보수와 진보 진영의 논거를 살펴보면 둘 모두 숙의가 민주주의 제도 활착화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믿는다. 정치커뮤니케이션 연구자들은 숙의의 핵심 작동기제가 대인간 대화와 미디어 정보 두 가지이고, 숙의를 위해 시민이 지불해야 할 각 경로별 비용이 차별적이라는 데 동의한다. 가령 입장이 다른 지인과 대화할 때 우리는 토론 과정에서 적지 않은 정서적 비용을 치러야 하므로 솔직한 정치적 의견 표명을 꺼리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인터넷과 소셜미디어가 등장한 이후 다양한 정치적 의견에 노출될 기회는 늘어났고, 설령 나와 다른 정치적 입장에 노출되더라도 느끼는 정서적 거부감이 대인간 대화에 비해 작다. 특히 유권자들이 언론으로부터 대화에 필요한 소재를 얻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미디어 정보를 통한 숙의가 정치적 관심 제고에 미치는 영향은 크다. 숙의가 정치적 관심에 미치는 영향력을 최대화하려면 다양한 계층의 의견과 여러 전문가의 평가적 관점을 담은 정보 이용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런데 현재의 미디어 환경 하에서는 언론 정보를 활용한 숙의가 정치적 관심에 미치는 영향이 정적인 방향으로 진행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먼저, 미디어 정보의 질적 수준과 유권자의 정치 현실 인식에 미치는 영향력의 크기가 비례하지 않는다. 종이신문에 의존하는 시민은 줄어들고 복수의 소셜미디어 플랫폼을 통해 유통되는 파편화된 정보를 토대로 정치 현실을 지각하는 이들이 늘어난다. 게다가 정파성이 강한 소셜미디어 이용자들은 정치적 입장이 다르다는 이유로 친구 끊기를 하는 경향이 있어 제대로 된 숙의가 이루어질 수 없다. 둘째, 종이신문 뉴스가 소셜미디어 정보에 비해 질적 수준이 상대적으로 높지만 매체의 정파적 논조에 조응하는 한두 명의 실명·익명 취재원을 활용하여 기사를 작성하므로 정보의 내용이 일방적이다. 특정 신문만을 구독하는 경우 독자의 정치적 편향성이 강화될 가능성이 높아 이들에게서 바람직한 숙의를 기대하는 것은 난망하다. 셋째, 주류 미디어와 소셜미디어 모두 동일한 정보 가치 판단 기준(이른바 ‘야마’)을 공유한다. 예컨대 정치적 갈등에 주목하고 이를 진보와 보수 프레임으로 해석하여 특정 권력의 이해를 대변하는 언론의 관행은 숙의를 통한 사회 통합을 방해한다. 넷째, 정치적 식견 수준이 낮은 유권자들은 숙의에 필요한 물질적·정서적 비용을 지불하기를 꺼려 습관적으로 이용하는 미디어 이외의 다른 대안적인 정보원을 찾아 나서지 않는다. 언론이 공적 기구로 생존하려면 공론화위에 대한 정치권의 다툼을 전하는 대신 다양한 시민 계층이 탈원전 정책에 관한 대화에 참여하도록 자극하는 그런 역할을 해야 한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