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영방송은 어떻게 더 나은 ‘시민의 마이크’가 될까. 이러한 고민이 공영방송 지배구조와 경영에 시민의 직접 참여를 확대하자는 제안으로 이어지고 있다. 시민이 공영방송 이사진 후보를 직접 면접하자는 제안 등 몇몇 구체적 대안도 나왔다. 언론·시민사회·학계는 이런 제안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모양새다. 하지만 현재 국회에 계류돼 있는 ‘언론장악방지법’에 비해 비현실적이라는 목소리도 있다.
■
1년째 언론장악방지법 계류…새 제안들 나와 정치권에서 공영방송의 지배구조를 바꾸자는 입법안은 이미 1년 전에 나왔다. 지난해 7월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당시 야당 소속 의원 162명이 발의한 방송법·방송문화진흥회법 등 방송관계법 개정안이다. 이를 묶어 흔히 ‘언론장악방지법’이라 부른다. 핵심은 여야 6 대 3, 7 대 4 등 구도로 여권에 쏠렸던 △공영방송 이사 추천권을 여야 7 대 6 구성으로 바꾸자는 것이다. 또 △사장을 뽑을 때 재적 이사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야 하는 ‘특별다수제’ 도입 △사업자와 노동자 동수의 편성위원회 구성 명문화 △법 통과 시 공영방송 사장·이사 재구성 등을 담았다. 이 법안은 그간 공청회와 수많은 논쟁을 거쳤지만 자유한국당의 반대로 국회 소관 상임위인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 계류돼 있다. 이런 상황에서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자는 움직임이 나왔다. 추혜선 정의당 의원이 이달 말 또는 새달 초 발의할 ‘공영방송 이사 국민면접제’다. 공영방송 이사진을 꾸릴 때, 원내정당이 각각 한명씩 추천하고 나머지 인원은 임의로 선정된 시민 추천인단이 추천하는 내용이다. 가령 이사진이 13명이면 현재 원내정당 5곳에서 5명을, 시민 추천인단이 8명을 추천하는 방식이다. 추 의원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추천인단이 100명이면 이들이 생방송으로 이사 후보자에 대해 공개 면접을 보는 것이다. (추천인단) 득표순으로 이사를 뽑는다”고 말했다. 이어 “대통령 탄핵 사태를 거치면서 우리 사회가 공영방송을 바라보는 깊이가 깊어졌다. 사법체계처럼 국민배심원제를 공영방송에도 도입하자는 것”이라고 법의 취지를 설명했다.
이용마 <문화방송>(MBC) 해직기자도 언론장악방지법의 대안을 찾자고 제안했다. 그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언론장악방지법의 대안을 만드는 데 공감한다. 공영방송 사장 임명에는 정치적 이해관계가 많이 개입되기에, 사장 추천위원회를 국민으로 구성해야 한다”고 밝혔다.
■
시민참여 확대 공감 목소리…‘언론장악방지법’ 우선 통과 의견도 전문가들은 공영방송 운영에 시민의 발언권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대체로 공감하는 분위기다. 강형철 한국방송학회장은 “정당 쪽에 가 있는 공영방송 이사 추천권을 좀 더 사회화할 수 있는 부분이 없을까 고민한다. 전향적으로 생각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시민사회가 이사진에 다수 참여하는 독일 제2공영방송 <체트데에프>(
ZDF) 사례도 이 주장의 지지 근거로 꼽힌다. 서명준 언론소비자주권행동 대표는 “체트데에프 이사에는 70여명의 시민 각계 대표들이 들어가 있다. 이처럼 공영방송을 정치권으로부터 독립시켜도 시민사회가 충분히 잘 이끌 수 있다”며 “현재 나오는 제안들처럼 이사진·사장을 뽑을 때 시민의 몫을 넣는 게 독일 공영방송 모델에 부합한다”고 말했다.
다만 현실적으로 상황을 개선하려면 언론장악방지법 통과에 집중해야 한다는 의견도 만만찮다. 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국회에 계류된 법안을 중심으로 처리해가는 게 지금 현실에서는 적절하다”며 “이사진이 정파 이익에 휘둘린다는 비판은 언론장악방지법의 특별다수제로 상쇄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공영방송에 시민 참여를 확대할 경우 더 세밀한 제도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최선욱 <한국방송>(KBS) 방송문화연구소 연구원은 “시민사회가 공영방송 이사 구성에 ‘국민면접제’로 참여하더라도 어떤 사람이 시민들의 어떤 영역을 대표할지 정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역설적으로, 시민참여 확대 제안들은 현재 막혀 있는 언론장악방지법 논의에 물꼬를 틀 가능성도 있다. 자유한국당이 그간 언론장악방지법을 반대하면서 내세운 주장이 “공영방송 이사를 정치권의 진영 논리에 따라 모두 추천해선 안 된다”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사진 구성에 정치권 개입을 줄이자는 것인데, 자유한국당 일부에선 시민 참여 가능성도 열어두고 있다.
박준용 기자
juneyo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