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호 <한국방송> 이사장이 저녁 시간에 관용차를 쓰는 모습. 전국언론노조 한국방송본부 제공
이인호 <한국방송>(KBS) 이사장이 관용차를 500여차례나 사적으로 썼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한국방송 경영진은 이 이사장에게 규정에 없는 관용차를 지급하고, 사적으로 활용하는 상황을 사실상 묵인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전국언론노조 한국방송본부(노조)는 22일 오전 10시 여의도 노조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 이사장이 관용차를 사적으로 쓴 사례를 공개했다. 노조가 2015년 1월부터 지난 6월까지 2년 반 동안 이사장 관용차 운행 실적을 조사한 결과, 이사회가 열리지 않은 날에도 538일이나 차량이 쓰였다. 이사회는 한 달 평균 4일 열렸는데, 관용차는 한 달 평균 22일간 운행된 셈이다.
공개된 사례를 보면, 이 이사장은 이사회가 없는 날 강연을 다니며 저녁 시간 이후까지 관용차를 썼다. 가령 2015년 4월 14일에 서울여대에서 특강을 했는데, 관용차 운전기사는 이날 오전 7시25분부터 오후 11시35분까지 일했다. 이 이사장은 2년 반 동안 휴일에도 67차례나 관용차를 썼다. 토요일이었던 지난해 3월26일 이승만 전 대통령 관련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오전 8시20분부터 오후 10시35분까지 차량을 쓴 것이 대표적 예다. 이 이사장에게 지급된 관용차는 그가 일본과 중국 등 국외에 나가 있는 기간에도 운행됐다. 그는 2015년 6월 ‘평화 오디세이' 행사에 참여하려고 5박6일 일정으로 중국에 갔는데, 그 기간 관용차는 국내에서 4일간 운행됐다. 지난해 3월 이 이사장이 일본 도쿄에 체류한 날에도 관용차가 국내에서 쓰였다.
이인호 한국방송 이사장의 관용차 운행일지. 전국언론노조 한국방송본부 제공
노조는 고대영 사장을 비롯한 한국방송 경영진이 이 이사장의 관용차 문제를 알면서도 묵인했다고 지적했다. 이 이사장의 관용차 논란은 2014년 국정감사에서 이미 제기됐었다. 하지만 이후 이사장 관용차에 대한 회사의 감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이 이사장이 관용차를 쓰게 된 과정도 석연치 않다. 한국방송 사규상 비상임인 이사장에게 관용차를 지급하는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노조는 “한국방송 이사회 사무국이 이사장 관용차 운행 실태를 파악하고 있다”며 “(경영진이) 이사장 예우를 빙자한 특혜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노조는 이 이사장이 인건비, 유류비, 차량임차료 등 약 1억6800만원의 손실을 회사에 끼쳤다고 추정했다. 또 이 이사장과 한국방송 경영진에게 업무상 배임·부정청탁금지법 위반 등 혐의를 적용할 수 있다고 봤다.
이날 노조는 이 이사장이 관용차 논란에 답변한 녹취록도 공개했다. 녹취록에서 이 이사장은 “이사장의 대외적 위상을 지키자는 의미로 (관용차를) 타고 다닌 것”이라며 “음악회라든가 뭐 그런 데 갔을 때 타고 다녔다. 내가 거기 가면 한국방송 이사장으로 사람들한테 다 인지가 되고 하니까 관용차를 타고 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관용차 사적 유용을 일부 시인한 셈이다. 그는 <한겨레>의 해명 요청에 “얘기할 사안이 아니다”라고 답했다. 이와 관련해 한국방송 쪽은 입장문을 내어 "이사장의 업무 범위를 공식적인 이사회 일정으로만 제한하기 어렵고, 차량 제공은 총무국 예산서에 근거가 있다. 이미 과거 10명의 이사장에게 차량이 지원됐다"면서 "해당 관용차는 이사회 사무국의 업무용으로도 사용하기 때문에 이사장이 해외에 나가 있는 동안에도 운행할 수 있다"고 반박했다.
박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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