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 당시 보도국 간부에게 “대통령을 도우라”는 보도지침을 내렸다는 폭로가 나온 윤세영 <에스비에스>(SBS) 회장이 결국 사임했다.
윤 회장은 11일 오후 에스비에스 사내 방송을 통해 담화문을 발표해 “에스비에스 회장과 에스비에스미디어홀딩스 의장직을 사임하고, 소유와 경영의 완전 분리를 선언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이어 “윤석민 의장도 에스비에스 이사와 이사회 의장직, 에스비에스콘텐츠허브와 에스비에스플러스의 이사직과 이사회 의장직도 모두 사임하고, 대주주로서 지주회사인 에스비에스미디어홀딩스 비상임 이사 직위만 유지한다”고 밝혔다. 윤석민 의장은 윤 회장의 아들이다.
윤 회장은 최근 노조가 제기한 ‘보도지침 논란’도 사과했다. 윤 회장은 “우리가 안고 있는 어려움을 개선하기 위해 부득이 당시 정권의 눈치를 일부 봤던 것도 사실이지만, 언론사로서 에스비에스가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은 적은 없다”면서도, “이런 충정이 돌이켜보면 공정방송에 흠집을 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며 사과의 뜻을 밝혔다. 앞서 지난 5일 전국언론노동조합 에스비에스본부(노조)는 윤 회장이 2015년 초 보도본부 간부들을 부른 자리에서 ‘박근혜 정권을 비판하지 말라’, ‘4대강 사업 비판을 자제하라’ 등의 지시를 거듭했다고 폭로했다.
1990년 에스비에스를 창업한 뒤 대표이사를 지낸 윤 회장은 2011년 에스비에스 회장과 이사회 의장직에서 물러났다가, 5년 만인 지난해 지주회사인 에스비에스미디어홀딩스의 등기이사 및 이사회 의장으로 복귀했다. 에스비에스미디어홀딩스의 최대주주가 윤 회장 일가가 최대주주인 태영건설인 탓에 에스비에스는 사실상 윤 회장 쪽이 사유화하고 있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되어왔다.
이 때문에 윤 회장의 사임은 올해 말 있을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의 지상파 방송 재허가 심사에 미칠 부정적인 영향을 사전에 방지하려는 시도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효성 방통위원장은 지난달 22일 업무보고에서 “방송사 재허가·재승인 때 보도·제작의 중립성과 자율성, 인력 운용 등을 중점 심사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방송의 공적 책임’과 ‘공정성’이 재허가 심사의 주요 기준이라고 못박은 것이다. 그런데 보도지침 폭로 등으로 에스비에스 대주주의 방송 사유화 논란이 확산되면, 에스비에스 재허가 심사에 빨간불이 켜질 수 있다. 지상파 방송 3사의 허가는 올해 12월31일 만료되며, 방통위는 지난 6월 방송사들의 재허가 신청 서류를 받았다. 방통위는 10월 심사위원회를 구성해 11월 재허가안을 의결할 계획이다.
노조는 윤 회장의 사임 선언을 ‘수용할 수 없다’는 태도다. 노조는 이날 규탄 성명을 내어 “윤 회장은 이미 오래전부터 에스비에스에 아무런 법적 권한이 없는 상태에서 대주주의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사실상 모든 경영 행위를 지배·통제해왔다”며 “이사 임면권을 계속 보유하겠다는 것은 에스비에스의 경영을 계속 통제하겠다는 뜻”이라고 비판했다. 앞서 6일 노조는 △소유와 경영의 분리 △대주주와 경영진의 부당한 방송통제·개입 방어 등을 뼈대로 한 ‘리셋 에스비에스 투쟁 결의문’을 채택했다. 지난달 23일에는 ‘이명박·박근혜 정권 기간 방송 사유화 실태조사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대주주의 방송 사유화 의혹을 추가로 조사하고 있다.
황금비 박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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