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방송>(MBC) 심의국이 제작부서장에게 보낸 메일.
<문화방송>(MBC)이 제작부서장에게 “심의국 업무를 맡으라”고 요구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회사가 제작·심의를 분리하도록 한 방송심의규정을 어겼다는 지적이 나온다.
15일 복수의 문화방송 구성원들에 따르면, 지난달 말 문화방송은 교양·예능·드라마 등 분야 제작부장들에게 일괄적으로 심의업무를 맡으라는 지시를 했다. <한겨레>가 입수한 전자우편을 보면, 심의국은 각 제작부서장에게 심의 업무를 관리하는 회사 시스템 이용 방법을 알려주며, 내용을 입력하라고 한다. “심의 신청이 자동으로 발송되는 문자 메시지를 수신하면, 관리자 페이지에 접속해서 심의 내용을 입력하면 된다”, “심의 완료일시는 해당회차 방송예정시간 이전으로 등록돼야 한다”는 식이다.
이를 따를 경우 제작부서장은 자신이 만든 프로그램을 스스로 심의하는 꼴이 된다. 이는 방송심의 규정 위배 소지가 크다. 방송심의 규정상 방송사업자는 ‘자체 심의기구’를 두고 프로그램을 심의하는 게 원칙이다. 제작부서에 심의업무를 넘기는 것은 이 ‘자체 심의기구’의 역할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이 된다. 이는 문화방송 사규에도 위반된다. 문화방송 사규는 심의 업무를 전담하는 심의국을 두고, 이 부서를 제작업무와 분리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간부 피디 ㄱ씨는 “파업 상황이 되더라도 다른 부서의 직원을 파견발령을 내서 심의하는 게 맞다”며 “제작부서장에게 심의를 맡기면 이후 감독기관에서 징계·제재할 수 있다”고 말했다.
문화방송의 지시는 파업·제작거부로 인한 심의 인력 부족에 대비한 것으로 보인다. 일부 제작부서는 공식 논의를 거쳐 회사의 심의업무 요청을 거부했다. 부장급 피디 ㄴ씨는 “심의를 해달라고 전화와 이메일이 왔다. 부장단이 모여서 회의한 결과 이 업무를 제작부서에서 하지 않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해 회사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답변했다”며 “답변 이후에도 회사가 업무시간 외에만 제작부서에서 자체심의를 해달라 했지만, 제작거부·파업이 진행되며 없던 일이 됐다”고 말했다. 또 다른 부장급 피디 ㄷ씨도 “부장급 피디들이 회의한 결과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생각했다. 법규정 위반이라 못하겠다고 통보했다”고 전했다.
문화방송 심의국 관계자는 <한겨레>의 해명 요청에 “내가 조치를 취한 것은 없다. 답변할 내용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문화방송 쪽도 “해당 부서원이 파업 중이라 확인이 어렵다”고 밝혔다.
박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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