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전국언론노조 한국방송본부 소속 한규석 촬영기자가 파업 선전물을 나누고 있는 한국방송 아나운서들을 인터뷰하며 페이스북 생중계하고 있다. 황금비 기자 withbee@hani.co.kr
<한국방송>(KBS), <문화방송>(MBC) 노조가 총파업에 돌입하고 사흘째를 맞은 지난 6일 오후. 임시이사회 출석을 피해 강원도 평창 동계올림픽 경기장을 방문한 고대영 한국방송 사장이 성재호 전국언론노조 한국방송본부(노조) 위원장을 비롯해 20여명의 조합원들과 맞닥뜨렸다. “고대영 사장 나오십시오!”라고 외치는 조합원들을 피해 차 안에서 90여분간 ‘셀프감금’한 고 사장의 영상은 노조 페이스북 계정에서 생중계됐다. ‘고대영을 잡아라’라는 제목의 이 영상은 동시 접속자수가 최대 800여명에 이르며 화제가 됐다. 같은 시각 서울 여의도 한국방송 본사에서 열린 파업 집회에서 임시로 흰 전지 두개를 이어붙여 영상을 생중계했다는 신봉승 한국방송 촬영기자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기억했다. “웬만한 ‘셀럽’이 등장하는게 아니면 생중계가 그렇게 인기를 끌기 힘들거든요. ‘고대영 잡아라’ 영상이 노조 집회의 새 장을 연 거죠.”
두 공영방송 총파업이 17일로 2주째를 맞으며 방송 파행이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티브이(TV) 화면 대신 페이스북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시청자들과 소통하려는 노조의 시도가 인기를 끌고 있다. 파업이라는 무거운 소재를 재미있는 콘텐츠로 만들어 홍보하면서 누리꾼들의 응원도 이어지고 있다.
한국방송 노조의 페이스북 생중계는 올해로 각각 입사 12년차, 11년차를 맞은 신봉승·한규석 촬영기자가 번갈아 하고 있다. 뉴스 영상을 촬영할 땐 무거운 촬영용 장비를 챙겨야 했지만, 페이스북 생중계는 휴대전화 하나만 준비하면 된다. 신 기자는 생중계 인기의 ‘공’을 고대영 사장에게 돌렸다. “고 사장이 취임하고 나서 (휴대전화를 활용한 페이스북 생중계 같은) 디지털 사내교육을 많이 시켰어요. 게다가 영상의 주인공이 고대영 사장이 되면서 ‘페이스북 생중계’가 케이비에스 파업에 꽃을 피운 거죠.” ‘고대영을 잡아라’ 시리즈는 지난 1일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방송의날 시상식이 끝난 뒤, 조합원들을 피해 행사장 옆 별관으로 들어갔다가 한시간 정도 ‘셀프감금’한 고 사장을 찾으며 처음 시작됐다. 이는 자신을 촬영하는 조합원 폭행 논란을 빚은 보도본부장 ‘홍기섭을 잡아라’, 옛 여권 추천 이사인 ‘강규형을 잡아라’ 등의 시리즈로 이어졌다.
한국방송에 ‘고대영을 잡아라’가 있다면, 문화방송에는 기자·피디 등 10여명의 조합원이 익명으로 운영하는 페이스북 계정 ‘마봉춘 세탁소’가 있다. 이름엔 문화방송이 쌓아온 안좋은 이미지와, 공정방송을 훼손한 경영진들을 세탁해 깨끗해지자는 의미가 담겨있다. 7월 초 기자 5명이 의기투합해 시작한 이 계정은 두달여만에 팔로워수가 8000여명으로 늘었다.
세탁소를 운영하는 익명의 ‘세탁지기’들은 ‘재미’와 ‘감동’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것이 목표라고 강조했다. 영화 <다운폴>(‘몰락’이라는 뜻)에서 패전 직전 나치군의 모습을 현 문화방송 경영진의 상황으로 패러디한 영상은 페이스북에서 1000회가 넘는 공유수를 기록하며 인기를 끌었다. 영화에서 히틀러로 묘사된 김장겸 사장이 “네놈들이 내가 순순히 사장직에서 물러날거라 생각한다면 틀렸어. 끌어내릴 때까지 잔여연봉 다 받을거야”라고 다짐하는 장면은 영상의 백미다. 파업이 본격화된 12일부터는 ‘공범자들’에 맞서 그간 문화방송 내부에서 싸워온 ‘파업자들’의 이야기를 인터뷰로 공개하고 있다. 한 세탁지기는 “처음 계정을 만들었을 땐 ‘이제 와서 왜 그러냐’, ‘너희도 그동안 똑같이 월급받고 부역자 노릇 하지 않았냐’며 욕도 많이 먹었지만, 해직되거나 불이익을 받은 구성원들의 이야기를 충실히 알리면서 지금은 응원하는 댓글이 더 많아졌다”고 했다.
‘고대영을 잡’고, ‘엠비시를 세탁’하겠다는 이들의 최종 목표는 무엇일까. “요리조리 피해다니는 고대영 사장을 실제로 맞닥뜨릴때까지 생중계 방송을 해야겠죠. 하지만 유경근 4·16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이 말씀하셨던 것처럼, 최종 목표는 공영방송이 제자리를 찾는 것이라고 생각해요.”(신봉승 기자) “마봉춘 세탁소의 최종 목표는 더 이상 세탁할 것이 없어 폐업하는 일이예요. 공정방송을 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었을 때 폐업할 수 있지 않을까요.”(‘마봉춘 세탁소’ 세탁지기)
황금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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