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언론노동조합 한국방송(KBS)본부가 18일 오후 서울 여의도 노조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2010년 6월 국가정보원이 작성해 청와대에 보고한 ‘케이비에스 조직개편 이후 인적쇄신 추진방안’ 보고서 일부 내용을 입수해 공개하고 있다. 엄경철 기자가 들고 있는 문서는 국정원의 보고서 내용을 노조가 정리한 것이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이명박 정부 때 국가정보원이 <문화방송>(MBC)과 <한국방송>(KBS)을 장악할 구체적인 로드맵을 만드는 등 공영방송 장악을 기획한 사실이 드러난 데 이어, 실제로 이 로드맵이 두 방송사에서 실행된 것으로 18일 확인됐다.
원세훈 당시 국정원장이 직접 지시해 2010년 3월 작성된 ‘엠비시 정상화 전략 및 추진방안’엔, “이근행 노조위원장에 대해 업무방해 혐의로 사법처리” 등 노조 핵심 간부들과 최문순 전 사장 관련 인물들을 모두 퇴출시키는 내용이 담겨 있다. 공교롭게도 김재철 당시 사장은 한달 뒤인 2010년 4월 말 이근행 당시 노조위원장과 집행부를 불법파업 등의 이유로 고소했고, 다시 두 달 뒤인 6월엔 이 전 위원장을 해고했다. ‘좌편향’으로 지목된 오행운·강지웅 피디는 각각 2010년과 2012년 해고됐다. ‘극렬노조원’이라고 꼽은 박성제 기자 역시 2012년 해고됐다. 국정원의 노조 탄압 구상이 그대로 실현된 것이다.
“지방사·자회사 사장단 일괄사표 제출”이라는 대목도 현실화됐다. 유기철 당시 <대전문화방송> 사장(현재 옛 야권 추천 방송문화진흥회 이사) 등 지역사 사장 7명이 ‘살생부’ 명단에 올랐는데, 이들 가운데 6명이 2010년 3월 교체됐다. 당시 이들의 임기는 1년가량 남아 있었다.
국정원 방송장악 로드맵이 구체적으로 실행된 건 한국방송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날 오후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전국언론노조 한국방송본부 기자회견에서 용태영 기자는 “2010년 3월 <취재파일> 팀장(부장)을 맡았는데, 3개월 만에 국장이 불러 이유도 없이 ‘너 다른 데 가야겠다’고 말했고, 결국 6월에 자리를 옮겼다”고 했다. 그는 2010년 6월 국정원이 작성한 ‘케이비에스 조직개편 이후 인적쇄신 추진방안’에 “정연주 전 사장 추종하는 인물로, 노조를 비호하고 반정부 왜곡보도에 혈안”이므로 “반드시 퇴출”해야 할 인물로 적혀 있다. 문건에서 “과거 편파방송 자성 없고 좌파 세력 비호”라고 평가된 소상윤 라디오 피디는 라디오국 이피(EP)를 하다 2010년 평피디로 발령이 났다.
성재호 노조위원장은 이날 회견에서 “이 문건은 (국정원이) 공영방송 인사에 개입하고 언론인을 탄압한 언론공작·파괴 문건”이라며 “(한국방송) 내부에 국정원이나 청와대로부터 지시를 받아 실행에 옮긴 책임자들이 있을 것이다. 김인규 당시 사장은 당연히 책임을 져야 하고, 당시 보도본부장·부사장 등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이어 “이명박·박근혜 정권 내내 공영방송 상대로 장악 공작이 있었는지 국정조사를 실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박준용 황금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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