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오전 서울 상암동 <문화방송>(MBC) 사옥 로비에서 열린 ‘국정원의 문화방송 장악 문건 폭로’ 기자회견에서 최승호 피디가 발언하고 있다. 전국언론노조 문화방송본부 제공
이명박 정부 당시 국가정보원이 <문화방송>(MBC)을 장악하려 한 로드맵의 일부 내용이 공개된 가운데, 국정원의 의도대로 문화방송에서 프로그램 폐지·인사 개입·노조 파괴 등이 구체적으로 이행됐다는 증언이 나왔다.
전국언론노조 문화방송본부(노조)는 20일 오전 서울 상암동 문화방송 사옥 로비에서 ‘국정원의 문화방송 장악 문건 폭로’ 기자회견을 열고 “국정원 문건에 나오는대로 지난 7년간 문화방송 프로그램 폐지·노조 압박 등 방송장악 로드맵이 실행됐다”고 주장했다. ‘엠비시 정상화 전략 및 추진방안’이라는 이름의 문건이 작성된 2010년 3월 <피디수첩> 제작진이었던 최승호 피디는 “2011년 초 김재철 사장이 ‘1년 이상 있었던 제작진을 다 교체한다’는 명분으로 나를 포함해 피디수첩 제작진 6명을 한번에 날리는 인사를 단행했다”며 “당시 누구도 이해하지 못할 인사를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청와대와 국정원 등 권력이 강력하게 개입하지 않고서는 가능하지 않은 일”이라고 했다.
국정원이 만든 ‘엠비시 정상화 전략 및 추진방안’에는 “제작진 교체, 진행자 포맷 변경 등이 필요한 시사고발프로그램”의 사례로 <피디수첩>, <엠비시 스페셜>, <후플러스>, <시사매거진 2580>등이 열거돼있다. 특히 <피디수첩>은 “대외적 상징성 때문에 당장 폐지가 어려울 경우 사전심의 확행 및 편파방송 책임자 문책으로 공정성 확보”라는 구체적인 지시까지 적혀 있다. 최 피디는 이를 언급하며 “이처럼 섬세한 지시를 봤을 때, 국정원이 김재철 사장 등 엠비시 내부 ‘공범자들’과의 의견 교환을 통해 문서를 작성했을 것이라 본다”고 말했다.
국정원의 문화방송 노조 파괴 공작 역시 로드맵대로 진행됐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세훈 조합원은 “국정원 문서에는 노조에 대해 ‘징계는 물론 법적 대응을 확행하라’는 지시가 있는데, 실제로 김재철 사장은 2010년 파업 도중 노조 간부를 업무방해 혐의로 영등포경찰서에 고소한 바 있다”고 했다. 이 조합원은 이어 “문건이 작성된 시점인 2010년 이후 현재까지 해고 10명을 포함해 총 216명이 대기발령 이상의 징계를 받았다”며 “회사는 특히 2012년부터 노조에 대해 보복성 손해배생소송까지 진행했다”고 했다.
노조는 국정원의 문화방송 장악 문건의 실체가 드러남에 따라 형사고소 등 강력한 조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김연국 노조위원장은 “아직 국정원 문서를 누가 작성했는지, 누가 지휘부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이 밝혀지지 않았다”며 “국정원이 개혁과 반성의 의지가 있다면, 당시 문건의 요약본이 아닌 원문을 모두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황금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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