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방송>(MBC) 구내식당 임형욱 주방장.
문화방송(MBC) 구내식당에서 일하는 임형욱 주방장의 별명은 ‘명언 제조기’다. 매일 아침 명언 한 구절을 떠올려 문화방송의 친한 기자, 아나운서들에게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내는데, 가끔 소재가 떨어져 보내지 못하는 날에는 ‘주방장님 명언 좀 보내달라’는 요청이 쇄도한다. 한 달 가까이 이어지고 있는 문화방송 파업 관련 명언도 있느냐는 질문에 임 주방장이 답했다. “‘늪에서 나오려면 바로 움직여야 한다’는 말이 있어요. 늪에 발이 빠졌을 때 조금 더 있어볼까 하다가 늦어서 못 나오거든요. 저 위에 계신 분들(경영진)도 늪이다 싶으면 지금 나오셔야 해요.”
전국언론노조 문화방송본부(노조)가 공영방송 정상화를 외치며 파업에 돌입하면서, 서울 상암동 본사 구내식당도 처음으로 운영을 멈췄다. 정규직 조리사 11명과 영양사 1명도 파업에 동참했기 때문이다. 구내식당 직원들이 파업에 동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들이 매일 만들던 1500인분의 식사는 간편식 등으로 대체됐다. 한 달 가까이 파업에 참여하고 있는 임형욱 주방장을 지난달 27일 오전 상암동 문화방송 사옥에서 만났다.
1986년 문화방송 구내식당 조리사로 입사한 임 주방장은 올해 31년차인 베테랑이다. 3년 전부터는 주방장으로 일하고 있다. 그러나 이달 초부터는 새벽 6시에 출근해 음식을 만드는 대신, 다른 조합원들과 함께 본사 로비에서 ‘김장겸 퇴진’ 구호를 외치거나 거리 선전전에 나서고 있다. 임 주방장은 한솥밥을 먹는 문화방송 구성원들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고 파업에 동참하기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식당에 잘 오던 아나운서가 일을 그만두고, 어떤 피디는 노조 활동을 한다는 이유로 입사 20년 가까이 됐는데도 보직을 못 맡은 경우도 있어요. 이런 일들을 옆에서 보면서 안타까워했던 조리사들이 ‘이번엔 주걱 놓고 다 같이 파업에 동참하자’는 얘기를 한 거죠. 국가정보원의 블랙리스트 문건 보도를 보면서 ‘정말 엠비시를 말살하려고 했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런 걸 보면서 파업에 동참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지난달 7일 노조 집회에서 임형욱 주방장. 전국언론노조 문화방송본부 제공
지난달 7일, 임 주방장은 본사 로비에서 열린 노조 집회에서 커다란 나무주걱을 들고 무대에 올라 조합원들의 박수와 환호를 받았다. 임 주방장이 그날을 기억하며 말했다. “경영진이 회사에 저항하는 피디·아나운서·기자들을 아이스링크, 문서실로 부당 전보를 냈어요. 한마디로 ‘너 일하지 마라’ 이런 소리거든요. 파업을 성공적으로 끝내고 모두 자신의 본업에 돌아가 바른 방송을 만들자는 의미에서, 주방의 상징인 주걱을 들었습니다.”
365일 멈추지 않는 방송의 특성상, 방송국 구내식당 조리사들은 명절에도 짧은 기간밖에 쉬지 못했다. 그러나 올해는 다르다. 임 주방장은 ‘파업에 참여한 덕분에’ 추석 연휴를 1주일이나 쉴 수 있게 됐다며 웃어 보였다. “기자는 시청자들의 궁금증을 풀어주고, 아나운서는 마이크를 잡고, 조리사는 칼을 잡는 그날을 위해 추석 연휴 동안 맛난 한가위 음식 먹고 다시 돌아와서 힘내겠습니다.”
글·사진 황금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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