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 때 청와대가 <한국방송> 뉴스·다큐 내용에 직접 개입한 정황이 청와대 문건으로 확인됐다. 전국언론노조 한국방송본부 페이스북 화면 갈무리
박근혜 정부 때 청와대가 <한국방송>(KBS) 뉴스·다큐 내용에 직접 개입한 정황이 드러났다. 전국언론노조 한국방송본부 ‘파업뉴스’팀은 박근혜 정부 ‘청와대 캐비닛’ 문건을 확보해 이런 내용을 포함한 이병기 전 청와대 비서실장의 발언을 11일 공개했다.
‘파업뉴스’가 공개한 문건 내용을 보면, 이 전 실장은 2015년 3월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2015년) 2월 초 한국방송에서 방영된 <뿌리 깊은 미래>는 건국 가치를 부정하고 역사를 왜곡하는 내용으로, 방심위(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 제재가 필요한 사안”이라고 말했다. <뿌리 깊은 미래>는 한반도 분단과 6·25 전쟁 등을 다룬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이다. 김 전 실장의 발언이 있고 약 한 달 뒤 방심위는 해당 프로그램에 법정 제재인 ‘경고’ 처분을 내렸다.
문건에는 이 전 실장이 교과서 국정화·누리과정 예산과 관련한 한국방송 보도에 개입한 내용도 담겼다. 논란이 되는 두 가지 주제를 정부에 유리한 방향으로 보도하라는 지시였다. 2015년 9월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이 전 실장은 “교과서 국정화 성공 위해 국민을 설득하고 비판세력을 제어해야 한다. 대국민 홍보 강화를 위해 한국방송 등 매체를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2016년 1월에는 “누리과정 예산 문제와 관련해 보수 언론에서 정부 입장을 지원해줘 그나마 다행이다. 이 내용이 한국방송 등 방송매체에 방영되도록 해야 한다”고 말하는 등 누리과정 예산 논란의 보도 방향도 두 차례 지시했다.
이날 한국방송 옛 여권 추천 인사인 김경민 이사는 방통위에 사퇴서를 제출했다. 김 이사의 사퇴로 한국방송 이사진 11명 가운데 옛 여권 추천 이사는 7명에서 6명으로 줄었다. 현 여권에서 보궐이사를 임명하면 한국방송 이사진은 옛 여권 추천 6명과 옛 야권 추천 5명의 구도로 바뀐다.
한편, <문화방송>(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는 이날 오후 서울 여의도 사무실에서 정기이사회를 열어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의 검사·감독권을 수용할 수 없으며, 통상적인 범위 내의 자료 요청에만 협조한다”고 의결했다. 또 “통상적인 범위 내의 자료”인지 판단은 고영주 이사장과 방문진 사무처에 맡기기로 했다. 방통위가 지난달 21일 방문진 검사·감독권을 발휘해 문화방송 관리·감독 관련 자료 등을 제출하라고 한 요구에 불응한 것이다. 이에 따라 업무추진비와 법인카드·국외출장비 사용 내역, 이사회 회의 속기록 등 민감한 내용이 담긴 자료는 모두 제출 대상에서 빠질 것으로 보인다.
박준용 김효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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