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언론노조 <한국방송>(KBS) 본부는 24일 오전 고대영 사장이 기사 삭제를 대가로 국가정보원으로부터 금품을 받았다는 논란에 대해 기자회견을 열었다.
고대영 <한국방송>(KBS) 사장이 보도국장 시절 국가정보원으로부터 기사 비보도를 대가로 금품을 받았다는 파문이 커지고 있다. 한국방송 보도에서 이 기사가 비정상적인 경위로 누락됐다는 주장도 나왔다. 한국방송 이사회에서도 이 사안을 주요 의제로 다룰 전망이다.
전국언론노조 한국방송본부(노조)는 24일 오전 서울 여의도 노조 대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정원 개혁위원회의 발표 내용이 사실이면, 전례없는 저널리즘 파괴행위”라고 지적했다. 앞서 23일 국정원 개혁위는 2009년 5월 국정원 한국방송 담당 정보관이 당시 보도국장이던 고 사장에게 <조선일보>에 나온 ‘국정원 수사개입 의혹’을 보도하지 말아달라고 요청하며 그 대가로 200만원을 건넸다고 밝혔다. 해당 기사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검찰 수사 과정에 국정원이 부당개입했다는 내용이었다.
노조는 “당시 한국방송에서 해당 의혹에 대한 단신이 작성됐지만, 소속 부서장은 승인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노조가 공개한 한국방송 정치외교부 보도정보시스템을 보면, 이회창 당시 자유선진당 총재가 국정원의 수사 개입을 비판한 단신 기사가 당일 작성됐지만 보도되지 않았다. 김준범 노조 대외협력국장은 “기사를 썼는데 승인이 나지 않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며 “회사 쪽에서 당일 기자들이 아무 기사도 쓰지 않았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사실관계가 다르다”고 말했다.
노조는 또 “문제의 의혹은 매우 중요한 폭로성 기사였다. 내부 심의에서도 이 기사 비보도가 지적됐다”고 밝혔다. 실제로 <문화방송>(MBC) 메인 뉴스는 이 문제를 네 번째 꼭지로 주요하게 다뤘다. 문화방송 <뉴스데스크>는 ‘검찰, 노 전 대통령 구속 고심…잡음’ 리포트를 통해 “국정원도 검찰총장에게 불구속 의견을 전달한 사실이 드러나 파문이 일고 있다”고 보도했다. 당시 한국방송 심의실은 문화방송 뉴스가 해당 기사를 내보낸 것을 거론하며 문화방송 보도가 한국방송보다 더 다각적이었다고 평했다. 심의실이 한국방송의 해당 보도 누락을 우회적으로 지적한 셈이다.
노조는 국정원 개혁위 발표가 그간 고 사장에게 제기된 ‘편파보도 논란’, ‘권력기관 유착’ 의혹과 같은 선상에 있다고 비판했다. 성재호 노조위원장은 “고 사장은 보도국장 시절 천성관 검찰총장 후보자 특종을 막는 등 편파보도를 했다. 위키리크스에는 고 사장이 미국대사관 쪽에 2007년 대선 관련 정보를 넘기며 정보원 역할을 했다고 기록돼 있다”고 말했다. 또 “(금품을 건넨 것으로 지목된) 국정원 정보관은 10년 이상 한국방송을 담당했다. 그런 사람이 국정원 자체 조사에서 현직 한국방송 사장을 상대로 돈 줬다고 진술한 것”이라며 “고 사장은 무조건 그런 사실이 없다고 주장하는데, 진실을 밝히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노조는 고 사장이 이 사안과 관련해 책임 있는 답변을 내놓지 않을 경우 그를 고발할 계획이다. 신인수 변호사는 “국정원 개혁위 조사 결과가 사실이면 고 사장에게 세 가지 죄가 성립한다. 수뢰 후 부정처사죄와 국정원법상 직권남용, 방송법 위반 등이다”라고 말했다.
지난 23일 한국방송 쪽은 고 사장의 금품수수 의혹을 두고 입장문을 내어 “2009년 5월 고 사장이 국정원 관계자로부터 기사 누락을 대가로 돈을 받았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라며 “법적 대응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한국방송 이사회는 25일 열릴 정기이사회에서 고 사장의 금품수수 의혹 문제를 논의할 예정이다. 옛 야권 추천 김서중 한국방송 이사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다수이사(옛 여권 추천)들이 합의하지 않아 이번 이사회에서는 이 사안으로 안건 상정을 못하고 현안질의를 한다”며 “공영방송에서 가장 중요한 게 독립성과 자율성이다. 보도국장으로 이 가치를 지켜야할 사람이 이런 행위를 한 게 사실이면 (사장) 해임 사유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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