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파업 이후 해직 2천일 넘겨
‘세상은 바꿀 수 있습니다’ 발간
“김재철 사장은 무소신에 의지 없어
청탁 물증이 없어 말을 못했을 뿐…
상식·합리적인 원전 공론화위처럼
공영방송 사장 국민 손으로 뽑아야”
‘세상은 바꿀 수 있습니다’ 발간
“김재철 사장은 무소신에 의지 없어
청탁 물증이 없어 말을 못했을 뿐…
상식·합리적인 원전 공론화위처럼
공영방송 사장 국민 손으로 뽑아야”
복막암으로 투병 중인 이용마 <문화방송>(MBC) 해직 기자가 자연 치유를 위해 머물고 있는 경기도 남양주시 수동면 축령산 원불교 오덕훈련원에서 지난해 12월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남양주/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지난 27일 발간된 이용마 기자의 책 <세상은 바꿀 수 있습니다> 표지.
다음은 이 기자와의 인터뷰 전문.
-서울중앙지검 국정원수사팀이 김재철 전 사장 자택과 방송문화진흥회 사무실 등을 압수수색 중이라는 뉴스가 나왔다. 앞서 국정원이 문화방송 장악을 시도한 문건이 일부 발견되기도 했는데, 이런 보도들을 보며 어떤 생각이 들었나.
“이전에는 심증만으로 있던 게 실제로 드러나는 과정이라고 봤다. 김재철은 누가 여당이 되든 항상 여당이 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었다. 처음 사장이 되고도 “큰집(청와대)에서 쪼인트 까였다”(김우룡 전 방문진 이사장이 2010년 <신동아> 인터뷰에서 한 말)고 하지 않았나. 외부 압력에 눌리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2012년 6개월 파업을 혼자 이겨냈을까? 그 정도 의지력이 있는 인물이 아니기 때문에, 당시에도 ‘이 사람의 배후에 국정원이나 청와대가 있다’고 추정했지만 물증이 없어서 말을 못 했다. 그런데 최근 보도를 보면 그때 우리가 추정한 게 맞았다는 생각이 든다.
또 하나, 이명박 정권이 얼마나 엠비시를 장악하려고 노력했는지 알 수 있다. 우리가 회사와 싸울 때 이상한 점이 있었는데, 분명 내부자들인데도 ‘엠비시가 아예 망해도 좋다’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마치 외부인인 것처럼 느껴졌다. 이 회사를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그렇게 할 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파업이 그렇게 길어지는데 사장이 신경도 안 쓰고. 그러다 보니 우리는 싸우기가 그만큼 더 쉽지 않았다. 최근 보도를 보니, 우리 앞엔 내부자가 있었지만 사실상 허수아비였다. 또 2012년에는 검찰에 김재철 수사를 촉구하는 시민 80만명의 서명을 전했는데도 꿈쩍도 안 하더니 이제야 움직이는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지난 25일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엠비시 파업 콘서트 때 무대에 올라 이효성 방통위원장을 향해 “고영주 방문진 이사장, 이인호 케이비에스 이사장을 해임하라”고 공개 요청했다. 일각에서는 방문진 여야 비율이 역전된 상황이라, 방통위가 고영주 이사장을 굳이 해임할 필요가 있느냐는 의견도 나온다. 이런 의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이사장직과 이사직을 나눠서 생각하면 된다. 내가 말한 건 고영주 이사장이 이사장직에서 물러나야 한다는 의미다. 고영주 이사장은 오는 11월2일 방문진 이사회에서 불신임안이 통과되면 이사장에서는 물러날 가능성이 크다. 내가 파업콘서트에서 발언할 당시에는 방통위가 보궐이사 2명 선임을 한 차례 미룬 뒤 언제 뽑을지 기약이 없었을 때다. 방통위가 빨리 빈자리를 채워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방통위가 방문진 이사 해임권은 갖고 있지만, 직접 해임하려면 정치적 부담이 될 거다. 그러나 새 이사들을 선임해서 방문진이 이사장직에서 물러나게만 해도 훨씬 부담이 덜한데 그런 일까지 미적대는 건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고영주 이사장이 비상임 이사로 머무는 건, 구여권 이사진이 이미 소수파가 된 상황에서 당장은 큰 의미가 없다고 본다.”
-엠비시 노조에서는 지난 26일 낸 성명에서 방문진이 김장겸 사장 해임안을 통과시키는 대로 총파업을 종료하겠다고 했다.
“방통위나 방문진이나 절차를 따르되, 필요한 순간에는 적절한 결단을 해서 앞으로 가야 한다. 김장겸 사장은 이미 법적 문제를 떠나서 2011년 정치부장에 오른 뒤 온갖 편파 보도를 주도하며 2012년 170일 파업을 야기한 장본인이다. 그 뒤에도 보도국장, 보도본부장, 사장까지 승승장구하면서 공영방송을 망가뜨렸다. 기존 경영진과 국정원 사이의 결탁이 드러나고 있는데, 김장겸 사장은 훌륭한 조력자 역할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 방문진은 서둘러 김 사장을 해임해서 엠비시가 공영방송으로서 제 길을 가도록 해야 한다. 주주총회 소집권이 법적으로 대표이사한테 있어서, 김 사장이 주총을 소집하지 않고 버틸 수도 있다. 그럴 경우 방문진이 주총을 열기 위한 가처분 신청을 내든지 해서 적극적으로 움직여야 한다고 본다.”
-고영주 이사장이나 김장겸 사장 모두 자신들이 문재인 정부 ‘방송장악’의 피해자라고 주장한다.
“지난 27일 국회에서 열린 방문진 국정감사장에서 고영주 이사장이 보여준 행태를 보라. 또 지난 토요일(28일) 엠비시 <뉴스데스크>에서 촛불집회 1주년과 태극기집회를 보도한 걸 보라. 얼마나 편파적인가. 수만 명이 참여한 촛불집회를 수천 명으로 보도하고, 태극기집회와 촛불집회를 나란히 일 대 일로 보도했다. 집회가 실제 어떻게 이뤄졌는지 보지 않은 사람이 엠비시 뉴스만 보면 ‘비슷한 규모의 사람이 모여서 서로 다른 주장을 했나 보다’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상식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엠비시를 장악하고 있어서 그렇게 편파적인 방송을 해오고 있었던 거다. 자유한국당과 사실상 한몸으로 보인다.”
책에는 저자의 유년 시절 성장기부터 1996년 문화방송에 입사해 사회부·전국부·경제부·문화부·외교부·정치부 등을 거치며 한국사회의 주요 변화를 가까이서 지켜본 목격담이 함께 담겼다. 현장 기자이자 정치학도, 공정방송 싸움에 앞장선 언론인으로서의 경험과 분석, 대안제시가 생생하고 명쾌하다. 특히 이 기자는 공영방송 사장을 무작위 추첨으로 선별한 ‘국민대리인단’으로 뽑자고 주장한다.
-국회에 계류 중인 ‘언론장악방지법’(방송법·방문진법 등 공영방송 관련 4개 법안 개정안을 묶은 것. 공영방송 이사 추천 여야 비율을 7 대 6으로 개편, 사장 선출 때 재적이사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야 하는 특별다수제 도입 등을 골자로 한다) 대신 국민대리인단으로 공영방송 사장을 뽑자는 주장을 책에도 담았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8월22일 방통위 업무보고 때 “(만약 이 법이 통과되면 방송사 사장으로) 소신 없는 사람이 될 가능성도 있다”며 책과 비슷한 지적을 하기도 했는데. 국민대리인단이 현재로써 최선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나.
“변함없다. 2011~2012년 노조 집행부 할 때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고민하면서 언론장악방지법 내용을 봤다. 그때도 ‘이건 좀 아닌 것 같은데’ 생각은 하면서도 대안 없이 무조건 반대만 할 수 없어서 울며 겨자 먹기로 받은 성격이 강하다. 그런데 피고인으로 엠비시 업무방해 혐의 관련 형사 소송 1심 재판을 국민참여재판으로 경험해보고 대안을 찾게 됐다. 배심원 평결을 보고 내가 너무 엘리트주의와 편견에 빠져있었구나 반성했다. 상식적이고 합리적이다. 정치권보다 당리당략에 덜 얽매인다. 최근 정부에서 시도한 원전 공론화위도 비슷한 제도라고 본다. 국무위원, 검찰총장, 경찰청장, 국세청장, 공영방송 사장 등을 뽑을 때 국민대리인단의 판단에 맡기는 거다.
공영방송 내부에서 사내 정치에 능한 사람들이 승진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사람들이 사장이 되기 위한 노력을 많이 하는데, 그래서 사장 직선제에도 반대했다. 내부 파벌 형성되고 분란이 일어날 것 같다. 국민대리인단이 사장을 뽑게 되면 이들은 후보자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기자·피디 출신이라면 어떤 보도·방송을 해왔는지를 보고 결정할 것이다. 그래서 꾸준히 국민을 위해 일해왔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 그런 사람이 사장이 되어야 후배들도 국민을 보면서 열심히 일해야 한다고 생각하겠구나 싶었다.”
-방문진에서 김장겸 사장을 해임하고 새 사장을 뽑을 경우, 국민대리인단 제도를 시범적으로 시도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렇게 해도 될 거다. 지금은 입법되어 있지 않아서 국민대리인단이 추천하면 방문진에서 최종 결정을 하면 된다. 방문진 이사들이 얼마나 준비가 되어 있느냐의 문제인데, 얼마든지 가능한 사안이라고 본다.”
-김장겸 사장이 나간 뒤 엠비시 새 사장이 될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자질 혹은 덕목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문재인 대통령은 촛불 항쟁에 의해서 새롭게 선출된 대통령이다. 문 대통령에게 제일 중요한 건 촛불이 요구한 사회적 적폐 청산이다. 일차적으로 신경 써야 할 게 그 문제다. 엠비시도 마찬가지다. 새 사장이 해야 할 일은 적폐 청산. 엠비시가 과거 9년 동안 철저하게 망가졌다. 이 철저하게 망가진 엠비시를 재건하려면 9년 쌓였던 적폐를 일소하지 않으면 할 수 없다. 해방 이후에 기존 친일파를 척결하지 않으면 새 국가 건설하지 않을 수 없는 것처럼 기존 엠비시를 망가뜨렸던 사람, 제도에 대해서 바꾸지 않으면 새로 건설될 수 없다. 사장이 모든 걸 다 하는 건 아니지만, 이 부분에 대한 엄격한 철학과 자기 방침을 갖고 지시하면 된다.”
-‘조직의 화합·통합이 중요하다’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을 수 있다. “화합은 일단은 조직이 제대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해놓은 뒤에 이뤄지는 거다. 나치 하에서 프랑스가 점령됐었다. 그때 나치와 협력했던 사람들과 화합했다면, 지금 프랑스라는 나라가 성립하기 힘들었을 거다. 엠비시도 지금까지 ‘엠x신’, ‘기레기’ 소리를 들었는데 어떻게 기존 정책과 제도, 사람을 화합을 명분으로 쓸 수 있겠나. 화합은 일단 엠비시를 제대로 된 반석 위에 올려놓고 난 뒤에 할 수 있다. 엠비시 재건에 많은 지혜가 필요하다.”
-쌍둥이 아들들을 위해 쓰기 시작한 원고가 책으로 탄생했다. ‘우리 사회를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바꾸려는 꿈을 가진 분들이 함께 들어줬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페이스북에 쓴 걸 봤다.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들이 이 책을 봐주었으면 하는지.
“책을 권하고 싶은 두 집단이 있다. 일단 젊은층이 봐주었으면 좋겠다 싶다. 아들 현재와 경재가 이 책을 십년 뒤에 읽을 수 있을 거라고 했는데, 10년 뒤면 두 아이는 20대다. 그래서 지금 스무살 안팎, 그 세대들이 이 책을 읽으면 좋지 않을까. 일단 앞으로 살아갈 사회에 대한 모습을 알아야, 여기서 나는 무엇을 할지 결정할 수 있지 않겠나.
또 하나는, 우리 사회를 현재 바꾸려고 하는 사람들. 문재인 대통령부터 시작해서 우리 사회에서 개혁을 추구하는 정치세력들. 이런 사람들도 함께 봐줬으면 좋겠다. 왜냐하면 이 글의 시대적 배경은 상당 부분이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이다. 기자 시절 가까이서 개혁의 어려움을 지켜봤기 때문이다. 새로 개혁하려는 사람들은 과거를 반면교사 삼아서 시행착오를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을 갖고 썼다. 개혁을 지지하는 시민분들도 많이 봐주셨으면 좋겠다.”
-책에는 노무현 정부 시절 엠비시 뉴스에 대한 평가도 나온다. “<조선일보>를 베껴 노무현 정부를 비판하는 엽기적인 행태”, “당시 우리 뉴스는 노무현 정부를 비판해야 언론으로서 정도를 가는 것인 양 보여주기식 보도가 많았다”는 등으로 비판했다. 노무현 정부 시절 문화방송 사장을 지낸 이긍희·최문순 씨에 대한 평가도 부정적인 것 같다.
“권력을 비판하는 건 언론으로서 당연히 필요한 일인데, 비판을 어떤 관점에서 할 것인가가 문제였다. 조선일보를 일방적으로 베껴서 하는 건 별로 바람직하지 않다. 예를 들어 ‘노무현 정부가 재벌 개혁을 해야 하는데 제대로 궤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이런 건 정당하고 필요한 사안인데, 그런 비판이 아니고 노무현 대통령이 프로야구 시구를 하는데 2루 심판이 경호원이었다는 사실을 공개한 걸 갖고서 엄청난 국가기밀을 누설한 것처럼 보도하는 행태. 당시 엠비시 보도국 선배들을 봤을 때는 노무현 정부를 비판할 만한 자질이 안 되어 있었다. 그렇다 보니까 시답지 않은 문제로 비판, 아니 비난을 하면서 자기들은 보도 제대로 하는 것처럼 뻐기는 게 문제였다고 봤다.”
-아프간전쟁을 취재하는 종군기자에 지원했는데 전쟁터랑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도시에서 인터넷으로 외신과 통신사 기사를 검색해서 기사를 만들어 보냈고, 이러한 기사를 서울 보도국에서 외국 방송 화면으로 재구성해서 기자가 마치 현장에 있는 것처럼 보도를 내보냈다는 경험 등 기자로서 공개적으로 이야기하기 어려운 부분도 많다. 한국 언론의 부끄러운 부분도 가감 없이 나온다.
“이건 원래 아이들에게 주려고 쓴 글이라, 가식 없이 진솔하게 썼다. 또 시청자들도 진실을 알아야 한다. 가상현실이라고 하지 않나. 티브이에 비친 이미지에 현혹되는 부분이 너무 많다.”
-지난 8월 <와이티엔>(YTN) 해직 언론인들이 복직하면서, 현재 가장 오랜 기간 해직 상태를 유지 중인 언론인이 됐다. 오늘로써 해직 2066일인데, 2012년 해고 당시 2천일이 넘도록 복직하지 못할 거라고 예상했나.
“이렇게까지 갈 거라고는 생각 못 했다. 와이티엔과 달리 엠비시 해고 무효 소송은 1·2심 다 노조가 승소했기 때문에 (복직에 대한) 약간의 기대를 갖고 있었는데 대법원이 판결을 2년째 미루고 있다. 박근혜 정부가 지속했다면 복직도 훨씬 어둡지 않았을까. 박근혜 정부가 탄핵당하지 않았다면 지난 9월 임기가 완료된 양승태 대법원장 후임으로 ‘일베 성향 대법원장’을 지명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판결은 계속 미뤄졌을 거다. (상황이 바뀐 것은) 촛불 덕분이다.”
-엠비시 역사에서 노조가 승리한 파업은 한 번도 없다고 얘기했었는데.
“이번엔 승리할 거다. 엠비시 노조 역사상 처음으로 승리가 눈앞에 보인다. 그런데 승리란 건 새로운 출발이다. 우리가 가야 할 게 꽃길이면 좋을 텐데, 그렇지 않을 거다. 기존에 엠비시가 꽃밭이었다면 과거 9년 동안 완전히 황무지로 만들어놨기 때문이다. 당장은 승리가 기쁘겠지만 새로 시작하려면 굉장히 힘들 거다. 그런 만큼 모두 의지를 새로 다잡고 시작해야 한다. 지금까지 싸우면서 유지했던 초심, 그것만 계속 유지할 수 있다면 빨리 복원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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