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근 KBS 이사장이 2일 오후 광화문 한카페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한국방송>(KBS) 사장을 뽑을 ‘시민자문단’에 참여하실 의사가 있으십니까?“ 이달 안에 누군가는 이런 전화를 받게 된다. 지난달 31일 한국방송 이사회는 사장 후보자를 평가할 시민자문단을 꾸리고, 이들이 낸 의견을 사장 추천에 반영하겠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이는 한국방송에서 처음 시도되는 일이어서 이목을 끈다.
“새 사장 뽑는 절차를 정하는 일은 한국방송이 ‘국민의 방송’으로 다시 자리매김할 수 있을지 선례를 남기는 일입니다. 그만큼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김상근(78) 한국방송 이사장은 지난 2일 서울 광화문 인근 한 카페에서 취재진과 만나 차기 사장 선임 절차에 시민의 목소리를 반영하게 된 배경, 방송 정상화 과제 등을 <한겨레>에 밝혔다. 지난달 8일 한국방송 이사로 선임된 그는 곧바로 고 사장 해임 절차에 관여했고, 같은 달 31일 이사장에 선출됐다. 이사로 선임된 지 한 달 만에 ‘고대영 이후’ 한국방송 재건을 관리·감독할 이사회를 이끌게 된 셈이다. 기독교계 원로이며, 민주화·평화·통일 운동가인 김 이사장은 <기독교방송>(CBS) 부이사장과 방송개혁위원회 위원을 지내는 등 언론 개혁 활동을 해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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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 자문단과 이사진의 평가 합산해 KBS 사장 추천” 김 이사장은 이번에 정한 사장 선임 방식이 단순한 ‘시청자 의견 청취’를 뛰어 넘을 것이라 설명했다. 그는 “각 지역·연령·세대별로 기준을 둬서 자문단 150명 안팎을 선정할 계획이다. 시민에게 임의로 전화해서 참여 의사를 물은 뒤, 한다는 사람은 기준에 맞으면 누구나 자문단이 될 수 있다”면서 “참여 의사를 밝힌 정도면 그야말로 (한국방송 사장이 누가 되느냐에) 긍정적, 부정적 관심이 있다는 것으로 해석한다. 그 이상 전문성이 필요하지 않다고 본다”고 했다. 이렇게 선정된 자문단은 후보들의 공약을 듣고, 그룹별 토의를 하게 된다. 자문단은 후보자를 두고 점수를 매기는데, 그 점수가 사장 후보 평가에 일정 비율로 반영된다. 기존 이사회가 100% 행사하던 한국방송 사장 임명 제청 역할 일부를 시민자문단에게 맡긴 셈이다. “(공영방송이어도)한국방송은 <문화방송>(MBC)과 또 달라요. (한국방송은) 국민의 수신료로 운영되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사진들이 ‘플러스알파’를 고민했습니다. " 김 이사장은 문화방송도 사장을 뽑을 때 △후보자 공개 정책발표회·면접 △면접에 시민 질문 반영 등 절차 투명화를 고민했지만, 한국방송은 ‘시민자문단평가’로 그보다 한 발짝 더 나아간 방법을 도입하려 했다고 설명했다.
김 이사장은 ‘시민자문단 평가’ 도입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법률상 한국방송 사장 임명권자인 대통령의 의사와 시민자문단의 평가는 다를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촛불 혁명’을 거친 시민의 합리적 선택이 이 우려를 해소해줄 것이라고 봤다. “임명권자의 판단이 시민의 결정과 같지는 않더라도 최소 근사치는 될 거라고 믿습니다. 만약 임명권자(대통령)가 시민의 결정과 생각이 다르다 해도, 시민의 뜻이 존중될 거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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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사장은 지난 KBS 상황 꿰뚫고 있어야” 한국방송은 지난 10년 간 △보도·제작 자율성 침해 논란△신뢰도 하락△경영진의 도덕성 논란 등으로 구성원과 시민의 “정상화” 요구를 받아왔다. 이 때문에 김 이사장은 새 사장의 자격 요건으로 그간 한국방송에 일어난 일에 대한 ‘상황 인식’을 강조했다. “(새 사장은)전문성만 가지고 한국방송 상황을 수습할 수 없다. 적어도 지난 시기 한국방송 사태에 대해 꿰뚫고, 정확한 가치판단이 있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김 이사장은 고 사장 해임 제청에 참여하면서도 ‘지난 상황 인식’의 중요성을 느꼈다고 했다. “고 사장 해임 과정에 무리수는 없었다고 본다. 고 사장이 (해임에)동의 안 한다고 해도 상황이 거기까지 이르게 것에 사장으로서 유감 표명은 했어야 했다. 사과 한마디 없었던 그 태도를 보고, 사태가 지경에 이를 수밖에 없었겠구나 생각을 했다.”
한국방송 정상화 과제가 새 사장에게만 달린 것은 아니다. 이사회도 지난 10년간 정권의 ‘방송 독립’ 침해에 대응하지 못했고, 적극적 행위자로 나서 ‘정권의 거수기’라는 비판도 받았다. 김 이사장은 이를 두고 “제작·보도 독립성은 최대한 보장해야 한다고 본다. (프로그램에 대한)평가가 갈릴 수 있어도, 이사회 차원에서 의사를 표명하는 방법은 상식적이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또 “(임명한 쪽과) 일일이 협의해서 의사결정 하는 일을 멈춰야 한다”면서 독립적 이사회를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박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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