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 민주언론시민연합 이사 김시창 대표
“지금 기자들이 북한으로 달려가야 합니다.”, “북한에 대한 기사들을 물밀 듯이 쏟아내야 합니다.”, “언론이 만들어낸 북한에 대한 왜곡된 이미지를 언론이 바로잡지 않는다면, 남북미 정상회담의 성공도 낙관하기만은 어렵습니다.”, “북쪽 사람들이 남쪽 방송에 출연하고, 남쪽 사람들이 북쪽 방송에 나갈 수 있는 시대가 왔으면 좋겠습니다.”
인터뷰 도중 ‘남북 화해시대의 언론’이라는 주제에 이르자 그가 말을 쏟아냈다. 1994년부터 민주언론시민연합(민언련) 회원과 간사로 활동하다 지난 3월 이사가 된 김시창(51)씨다. 그의 직업은 중고자동차매매업이다. 자신의 이름을 내건 사이트 ‘김시창닷컴’(kimsichang.com/)을 운영하면서 <한겨레>에 거의 매일 ‘생활광고’를 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를 지난 21일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났다.
1994년 학생운동하다 ‘언론학교’ 수강
민언련 회원으로 시민언론운동 시작
97년부터 3년간 간사로 ‘노래패’ 결성도 ‘중고차매매’ 생업하면서 ‘운동’ 계속
‘신뢰’로 손석희·오연호 대표도 고객
“기자들 북으로 달려가 기사 쏟아낼 때” 사실 민언련은 그에게 ‘사회적 고향’이다. 그는 1997년 민언련 간사로 시작해 2002년 기획부장에 이르기까지 5년간 민언련을 굳게 지켰다. 계기는 1994년에 민언련에서 운영하는 언론학교를 수강한 것이다. 언론학교는 당시 성균관대 ‘예비역 복학생 회장’을 맡는 등 학생운동에 열심히 참여했던 그에게 인생의 큰 전환점이 되었다. “그때 저는 우리 사회의 여러 모순이 왜 해결이 안될까 고민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그동안 어설프게 알던 언론에 대한 문제들을 해직언론인 등 각 방면의 전문 강사들로부터 들은 거예요. ‘진짜 언론문제가 심각하구나’ 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졸업하면서 한국 사회에 보탬이 되는 일을 하려던 참이었기에, 그땐 언론개혁이 제겐 가장 중요해보였어요.” 그는 곧바로 민언련 회원이 됐다. 3년간 열성적으로 회원 활동을 했다. 이때 주도적으로 ‘민언련 노래패’도 만들기도 했다. <한국방송>(KBS) 노래패와 합동공연을 포함해 세차례 정기 공연을 하는 동안 대본·제목·선곡·스토리 구성·섭외까지 도맡아 열성을 다했다. 그런 인연으로 한겨레 평화의나무 합창단의 단원이 돼 9년째 활동중이기도 하다. “1990년대 중반은 민언련 회원들의 자발적 활동이 뜨거웠지요. 집회나 행사를 하면 얼추 70~80명은 참가하던 시절이었어요.” 그러다가 1997년부터는 아예 상근 활동가가 됐다. 그는 전문성을 키우기 위해 2000년 성균관대에서 <한국 신문의 ‘불공정 보도' 연구> 논문으로 언론학 석사학위도 받고, 회원 연대사업도 강화하는 등 언론개혁을 위해 바쁘게 뛰었다. 하지만 1998년 결혼해 2000년 첫 아이가 생기면서 ‘시민활동가 김시창’은 고민에 빠진다. 생활비에 턱없이 모자리는 활동비를 집에 가져다주면서 가장으로서 미안함이 커졌다. ‘목돈을 투자하면 안정적 수익금을 주겠다’는 말에 집안에서 큰 돈을 융통해 중고자동차매매를 하는 지인에게 투자한 것은 그런 고민에서 벗어나고자 한 고육책이었다. 하지만, 그 지인이 ‘사고를 치고’ 잠적해버렸다. 그는 뒷수습을 위해 수원에 있던 중고자동차매매업체를 찾았다. 자의는 아니었지만, 그렇게 시작한 일이 어느덧 생업이 돼버렸다. 그에게 중고자동차를 파는 일은 ‘뜻밖에’ 쉬웠다. 언론개혁운동을 하면서 배운 원칙이 사업에서도 통했기 때문이다. 바로 ‘신뢰’다. 중고차를 믿고 사고팔 수 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임동원 전 통일부장관, 손석희 <제이티비시>(JTBC) 사장,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 양정철 전 노무현 대통령 언론비서관, 변영주 영화감독 등 유명 인사들까지 고객이 됐다. 하지만 김 이사는 사업을 하면서도 언론개혁이라는 화두를 놓지 않았다. 민언련 회원으로서, 언론 보도 모니터링과 감시 활동도 꼼꼼히 하려 노력했다. 올해 그가 이사로 뽑힌 것도 어쩌면 ‘시민이 언론을 감시한다’는 민언련의 목표를 그가 상근활동을 그만 둔 뒤에도 누구보다 열심히 실천해왔기 때문인지 모른다. 그는 최근 두 차례의 남북정상회담과 지난 6·12 북미정상회담을 보면서 시민언론운동의 중요성을 새삼 느낀다고 말했다. “정말 언론이 잘 해야 합니다. 일부 보수언론이 예전과 같은 부정적 보도로 일관한다면 우리 민족은 통일과 평화의 결정적 기회를 놓칠 수 있어요.” 그래서 그는 “언론도 적폐청산을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특히 해킹사건 등 범인을 특정할 수 없는 사건만 일어나면 근거도 없이 북한탓으로 돌리는, ‘아니면 말고식’ 보도 행태에 대해 짚고 반성하고 넘어갔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북한에 대해 외눈박이 보도를 했던 과거의 언론과 한반도 운명을 바꿀 중대한 보도를 책임져야 할 현재의 언론. 김 이사는 그 간격을 메울 수 있는 것은 여전히 ‘시민언론운동’이라고 생각한다. “보다 많은 시민들이 언론의 변화에 관심을 가진다면, 우리 언론도 남북이 함께 번영하는 데 기여할 수 있는 ‘통일 언론 르네상스’ 시대를 맞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는 민언련 이사로서 꼭 하고 싶은 일이 있단다. 손석희, 김제동 같은 대표 방송인들을 강사로 초빙해 ‘언론학교’를 여는 것이다. 그가 꿈꾸는 언론학교에서 ‘자신의 생업에 종사하면서도 바른 언론에 관심을 갖는 제2, 제3의 김시창’이 탄생하기를 기대해본다. 김보근 기자 tree21@hani.co.kr
민언련 이사를 새로 맡은 시민언론운동가 김시창 ‘김시창닷컴’ 대표가 지난 21일 오후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민언련 간행물을 소개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민언련 회원으로 시민언론운동 시작
97년부터 3년간 간사로 ‘노래패’ 결성도 ‘중고차매매’ 생업하면서 ‘운동’ 계속
‘신뢰’로 손석희·오연호 대표도 고객
“기자들 북으로 달려가 기사 쏟아낼 때” 사실 민언련은 그에게 ‘사회적 고향’이다. 그는 1997년 민언련 간사로 시작해 2002년 기획부장에 이르기까지 5년간 민언련을 굳게 지켰다. 계기는 1994년에 민언련에서 운영하는 언론학교를 수강한 것이다. 언론학교는 당시 성균관대 ‘예비역 복학생 회장’을 맡는 등 학생운동에 열심히 참여했던 그에게 인생의 큰 전환점이 되었다. “그때 저는 우리 사회의 여러 모순이 왜 해결이 안될까 고민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그동안 어설프게 알던 언론에 대한 문제들을 해직언론인 등 각 방면의 전문 강사들로부터 들은 거예요. ‘진짜 언론문제가 심각하구나’ 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졸업하면서 한국 사회에 보탬이 되는 일을 하려던 참이었기에, 그땐 언론개혁이 제겐 가장 중요해보였어요.” 그는 곧바로 민언련 회원이 됐다. 3년간 열성적으로 회원 활동을 했다. 이때 주도적으로 ‘민언련 노래패’도 만들기도 했다. <한국방송>(KBS) 노래패와 합동공연을 포함해 세차례 정기 공연을 하는 동안 대본·제목·선곡·스토리 구성·섭외까지 도맡아 열성을 다했다. 그런 인연으로 한겨레 평화의나무 합창단의 단원이 돼 9년째 활동중이기도 하다. “1990년대 중반은 민언련 회원들의 자발적 활동이 뜨거웠지요. 집회나 행사를 하면 얼추 70~80명은 참가하던 시절이었어요.” 그러다가 1997년부터는 아예 상근 활동가가 됐다. 그는 전문성을 키우기 위해 2000년 성균관대에서 <한국 신문의 ‘불공정 보도' 연구> 논문으로 언론학 석사학위도 받고, 회원 연대사업도 강화하는 등 언론개혁을 위해 바쁘게 뛰었다. 하지만 1998년 결혼해 2000년 첫 아이가 생기면서 ‘시민활동가 김시창’은 고민에 빠진다. 생활비에 턱없이 모자리는 활동비를 집에 가져다주면서 가장으로서 미안함이 커졌다. ‘목돈을 투자하면 안정적 수익금을 주겠다’는 말에 집안에서 큰 돈을 융통해 중고자동차매매를 하는 지인에게 투자한 것은 그런 고민에서 벗어나고자 한 고육책이었다. 하지만, 그 지인이 ‘사고를 치고’ 잠적해버렸다. 그는 뒷수습을 위해 수원에 있던 중고자동차매매업체를 찾았다. 자의는 아니었지만, 그렇게 시작한 일이 어느덧 생업이 돼버렸다. 그에게 중고자동차를 파는 일은 ‘뜻밖에’ 쉬웠다. 언론개혁운동을 하면서 배운 원칙이 사업에서도 통했기 때문이다. 바로 ‘신뢰’다. 중고차를 믿고 사고팔 수 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임동원 전 통일부장관, 손석희 <제이티비시>(JTBC) 사장,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 양정철 전 노무현 대통령 언론비서관, 변영주 영화감독 등 유명 인사들까지 고객이 됐다. 하지만 김 이사는 사업을 하면서도 언론개혁이라는 화두를 놓지 않았다. 민언련 회원으로서, 언론 보도 모니터링과 감시 활동도 꼼꼼히 하려 노력했다. 올해 그가 이사로 뽑힌 것도 어쩌면 ‘시민이 언론을 감시한다’는 민언련의 목표를 그가 상근활동을 그만 둔 뒤에도 누구보다 열심히 실천해왔기 때문인지 모른다. 그는 최근 두 차례의 남북정상회담과 지난 6·12 북미정상회담을 보면서 시민언론운동의 중요성을 새삼 느낀다고 말했다. “정말 언론이 잘 해야 합니다. 일부 보수언론이 예전과 같은 부정적 보도로 일관한다면 우리 민족은 통일과 평화의 결정적 기회를 놓칠 수 있어요.” 그래서 그는 “언론도 적폐청산을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특히 해킹사건 등 범인을 특정할 수 없는 사건만 일어나면 근거도 없이 북한탓으로 돌리는, ‘아니면 말고식’ 보도 행태에 대해 짚고 반성하고 넘어갔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북한에 대해 외눈박이 보도를 했던 과거의 언론과 한반도 운명을 바꿀 중대한 보도를 책임져야 할 현재의 언론. 김 이사는 그 간격을 메울 수 있는 것은 여전히 ‘시민언론운동’이라고 생각한다. “보다 많은 시민들이 언론의 변화에 관심을 가진다면, 우리 언론도 남북이 함께 번영하는 데 기여할 수 있는 ‘통일 언론 르네상스’ 시대를 맞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는 민언련 이사로서 꼭 하고 싶은 일이 있단다. 손석희, 김제동 같은 대표 방송인들을 강사로 초빙해 ‘언론학교’를 여는 것이다. 그가 꿈꾸는 언론학교에서 ‘자신의 생업에 종사하면서도 바른 언론에 관심을 갖는 제2, 제3의 김시창’이 탄생하기를 기대해본다. 김보근 기자 tree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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