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영의 미디어전망대]
넷플릭스를 흔히 ‘공룡’에, 이에 맞서는 신규 미디어 서비스는 ‘대항마’로 빗대곤 한다. 은유의 의도를 모르지 않지만 이 경쟁 프레임은 요즘 말로 ‘밸붕’(밸런스 붕괴)으로 보인다. 실력이나 기술이 낫고 못함이 없어 백중할 때야 겨루기가 성립되는데, 넷플릭스는 방송사나 제작사도 아닌 엔지니어 중심의 아이티(IT) 기업이라 방송사나 통신사의 니치(niche)와 확연히 다르다. 공룡과 말이 역사상 공존한 적이 없기에 이 은유를 대할 때마다 무엇을 의미하는지 명료하게 상상하기 어렵다. 그래서 ‘공룡의 공습, 공세, 위협’에 ‘대항하는 토종 연합군의 승부수’와 같은 언론의 레토릭은 크기와 힘, 포식성이 강조되어 열세가 도드라지는 착시까지 일으킨다. 조지 레이코프가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라고 했음에도 코끼리를, 공룡을 먼저 떠올리는 인지적 오류를 자주 범하는 것이다.
아마도 넷플릭스를 공룡으로 칭하는 이유는 현재 약 1억4천여만명으로 추정되는 전세계 구독자 규모 때문일 것이다. 이들은 기존 미디어 관행과 전혀 다른 길을 가면서도 전략을 대외적으로 거의 드러내지 않는다. 첫째, 넷플릭스는 우선 시간 편성이 아닌 구독 기반이다 보니 시청률을 알 필요가 없다. 어떤 지역에서 어떤 규모의 시청이 발생하고 있는지 자체 실시간 데이터 분석이 더 정확하다. 둘째, 구독 기반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를 한 이래 가입자 수가 떨어져본 적이 없다. 구독 해지가 왜 발생하지 않는지 미스터리다. 지속적으로 개선되는 추천 알고리즘 때문으로 추정할 뿐이다. 셋째, 오리지널 시리즈 제작에 돈을 아끼지 않고 창작자들에게 최고의 대우를 해준다. 마지막으로 넷플릭스 파트너십을 통해 제작 품질 가이드를 만들어 업계에 새로운 표준을 만들어 내고 있다.
넷플릭스의 성장을 보고 있노라면, 생태학의 경쟁 배타 원리(competitive exclusion principle)가 미디어 생태계에도 적용되고 있음을 느낀다. 자연계에서 동일한 생태적 지위나 역할을 점유하지 않은, 즉 유사성이 낮은 종과는 공생할 수 있다는 이론이다. 너무 유사한 니치를 지닌 완전 경쟁 생물은 공존이 어렵다. 그래서 기존 미디어의 유사성을 피해 자기 영역을 개척하는 넷플릭스의 천이(遷移, succession) 과정은 참고할 충분한 가치가 있다.
동영상 스트리밍이 보편화된 지금 기존 미디어 사업자들의 고민은 깊어질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공룡처럼 군림해오면서 인터넷 미디어 생태계에서의 시청자와 이용자, 창작자의 적응적 진화를 간과한 채 전파라는 희소 자원을 독점하며 안주해온 경향은 없는지 또한 돌아봐야 할 일이다. 넷플릭스의 비밀스러운 영업과 성장이 몹시 불편하겠지만, 이들과 공생할 수 있는 환경을 찾아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넷플릭스는 얼마 전 자신들의 최대 경쟁자로 포트나이트 게임을 지목했다. ‘재미’라는 동일 자원을 두고 시간 경쟁이 불가피하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대항과 경쟁 프레임은 죽기 아니면 살기라는 두가지 선택에 놓일 확률이 높다. 지금까지 인간계를 포함한 자연계가 진화해온 방향이 그렇다.
최선영 이화여대 에코크리에이티브협동과정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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