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언론노동조합 경기방송지부가 지난 6일 사옥 앞에서 “경기방송 이사회 자진 폐업 규탄”을 외치고 있다. 전국언론노조 제공
“지방노동위원회 기일(9일)도 잡혔는데, 부당해고 판정을 받는다 해도 복직할 직장이 없어지게 생겼네요.”
대통령에 대한 욕설과 일본 제품 불매운동 비하를 일삼은 <경기방송> 현아무개 전무이사에 대해 내부고발을 했다가 지난해 11월 해고된 노광준 피디와 윤종화 기자는 착잡함을 감추지 못했다.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경기방송이 최근 사상 초유의 “자진 폐업” 선언을 하면서, 직장으로 돌아가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해고자들뿐 아니라 남은 구성원들까지 직장을 잃을 위기에 처했다. 지상파 방송사업자 가운데 자진 폐업을 선언한 것은 경기방송이 처음이다.
■ “예산 삭감으로 언론탄압, 폐업하겠다”
지난달 24일 경기방송 사쪽은 노조에 “이사회에서 폐업을 결정했으며, 3월16일 주주총회를 열어 최종 폐업한다”고 통보했다. 이어 같은 달 27일에는 ‘폐업 결의에 대한 입장문’을 내어 폐업 선언을 공식화했다.
이들이 폐업 이유로 꼽은 것은 외부세력의 정치적 언론탄압과 노사갈등으로 인한 수익 악화 등이다. 경기방송은 입장문에서 “지방의회가 정치적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예산을 지속해서 삭감했고, 이를 무기로 인사에까지 개입했다”며 “또 노조의 지나친 경영 간섭은 경영진이 두 손을 들게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앞서 지난해 말 방송통신위원회는 경기방송의 재허가를 한차례 보류했다가 조건부 재허가를 결정한 바 있다. 방통위는 소유와 경영 분리, 경영 투명성을 위한 3개월 내 경영진 재구성 등을 조건으로 내걸었다. 또 현 경영권자의 경영 배제도 요구했다. 경기방송은 방통위의 조건부 재허가 승인에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폐업을 선언한 것이다.
이 모든 사태의 시발점엔 지난해 8월 현 이사의 ‘일본 제품 불매운동 폄훼 발언’에 대한 내부고발과 해고 등 내부갈등이 자리한다. 경기방송은 현 이사의 발언을 폭로한 노광준 피디와 윤종화 기자를 해고하며 논란을 키웠다. 방통위는 재허가 보류 당시 ‘방송의 공적 책임, 공공성 실현 가능성’ 항목에 낮은 점수를 줬는데, 현 이사의 막말과 부당해고 등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 “청취자 권익과 직원 생존권 무시”
경기방송 구성원들은 “폐업은 청취자의 권익 보호와 직원의 생존권을 무시한 독단적 처사”라고 비판하고 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경기방송지부는 6일 성명을 내어 “폐업 결정은 지난 22년간 청춘을 바친 구성원의 피땀 어린 노력과 경기방송 애청자들에게서 등을 돌리는 무책임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99.9㎒ 방송 주파수는 경기도민의 것으로 청취자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방송은 계속돼야 한다”며 “방통위는 청취자 권익 보호와 직원들의 고용 안정을 위한 대책을 하루빨리 마련해달라”고 호소했다.
경기방송 내부 분위기 역시 뒤숭숭하다. ㄱ 피디는 “노조와 비노조 모두 포함된 직원 협의체를 만들어 회사와 협의를 하려 했지만, 시작도 하기 전에 이사회 입장문이 나왔다”고 말했다. ㄴ 기자는 “노조가 지나친 경영 간섭을 했다는데, 보도·제작·편성·경영을 분리하고, 채용 과정을 명확히 하자고 한 것뿐”이라며 “두달째 협상도 회피하더니 일방적으로 폐업을 통보했다는 사실이 참담하다”고 말했다.
■ 손 놓은 방통위…16일 주주총회 주목
현재 방송법은 방송사업자가 폐업할 때 신고의무만을 규정하고 있다. 지난달 26일 열린 방통위 전체회의에서 한상혁 방통위원장은 “방송시설 매각 금지 같은 부분을 강제할 수 있는지 검토해달라”고 말했다.
하지만 방송법상 자진 반납을 결의하고 주주총회에서 이를 승인하면, 방통위도 이를 되돌릴 방법이 없다. 주주총회 전 방통위가 나서 청취자 보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목은 16일 열릴 주주총회로 쏠린다. 50여명의 주주 중 과반수가 총회에 참석해 과반 찬성이 나오면 폐업이 결정된다. 끝내 폐업 결정이 주주총회를 통과하면 경기방송의 전파는 재공모 절차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해당 전파를 원하는 사업자가 계획서를 제출하고 방통위가 이를 심사하는 절차다.
방통위 관계자는 “조건부 재허가 두달여 만의 폐업은 무책임한 행위다. 설혹 폐업을 하더라도 청취자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방송 공백 최소화와 고용승계 방안 등을 고민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방송사업자의 폐업이 신고사항인 것은 현행 방송법의 한계이므로 추후 보완을 검토하겠다”고 덧붙였다.
신지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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