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 왼쪽부터 박아란 한국언론진흥재단 선임연구위원, 김양순 한국방송 ‘저널리즘토크쇼 제이’ 팀장, 권태호 한겨레 편집국 부국장, 남재일 경북대 교수, 사회자 양승찬 숙명여대 교수, 이정환 미디어오늘 대표, 최지향 이화여대 교수, 홍성철 경기대 교수.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한국 언론의 정파성은 경영 위기 속에 선정적, 상업화된 정파성으로 저널리즘 품질을 크게 떨어뜨리는 핵심 동인이 되고 있다며 윤리적 시민의 더 많은 정치적 참여로 이를 저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한겨레>는 한국언론학회와 함께 8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신뢰받는 저널리즘이란 무엇인가'를 주제로 토론회를 열고 ‘기레기’로 불신받는 한국 언론의 위기 극복 방안에 대해 집중 논의했다.
남재일 경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정당과의 병행적 양극화 속에 정파성이 심각한 우리 언론의 특징적 현상을 짚으며 어떻게 정론 회복이 가능한지를 타진했다. 남 교수는 “한국사회의 정파성은 정당에 대한 태도다. 상업주의를 추구한 언론의 선정적 정파성은 저널리즘의 질적 하락의 핵심 동인이 되었다”며 “정파성 보도에서 이념성과 선정성을 구별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객관적 저널리즘의 한계에도 주목했다. 남 교수는 “디지털 매체 환경과 다양한 주장들이 쏟아지는 다원화된 사회에선 과거 대중 매체들이 일방향적 소통에 적합한 방식으로 보여준 저널리즘의 가치인 ‘객광성’이 유효한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언론사 조직도 독립성을 가진 다원적 조직으로 전환하고 선정적 정파성에서 탈피하기 위해 윤리적 시민의 더 많은 참여을 유도해 사회 정책에 대한 일관된 관점과 태도를 뜻하는 정치성으로 이행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이정환 <미디어오늘> 대표는 ‘이야기가 폭발하는 시대, 저널리즘 신뢰 회복의 조건’이라는 발제를 통해 “우리가 옳다고 믿는 것이 옳은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달라지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더 비판적이어야 하고, 투명성을 부여해야 하며 감시견으로서 더 많은 맥락과 신뢰성을 부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토론자로 참여한 권태호 한겨레신문 부국장은 언론의 과도한 정파성이 한국 언론의 신뢰성을 떨어뜨리는 가장 큰 원인이라는 데 동의했다. 권 부국장은 “방송과 달리 신문은 어느 정도 정파성을 띠는 게 여론 다양성 확보에 도움이 된다고 본다. 일부 독자들이 특정 언론에 (객관성보다) 정파성을 강하게 요구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때, 일종의 자기검열이 언론사 내부에서 작동하게 되는데, 이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많지만 내부 자기검열이 논리적 귀결성과 사실관계를 더 강화하는 쪽으로 이뤄진다면, 긍정적인 효과도 없지 않다고 본다”며 “언론이 정파 보도에서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파(진영)든 무관하게 사실관계 확인과 상식과 합리에 기반한 논리적 연결에 더욱 신경써야 한다고 본다. 무엇보다 정파에 앞서 가치를 추구하는 보도에 충실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양순 <한국방송>(KBS) <저널리즘토크쇼J(제이)> 팀장은 저널리즘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언론 수익구조와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김 팀장은 “신문·방송이 돈을 벌지 못하니까 선정적 정파주의로 나간다. 자극적인 기사는 클릭이 늘고 돈이 된다. 선정적으로 쓰레기 같은 기사를 많이 쏟아낸 것이 박원순 시장 사망 때 언론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줬다”며 ”날씨 스케치 기사에도 단독을 붙인다. 장사가 되니까 그렇게 한다. 말도 안 되는 이런 단독을 붙이는 행태는 절대 하지 말자”고 주장했다. 그는 또 기사 수정 이력제를 도입하자고 제안했다. “무얼 수정하고 무얼 바꿨는지 투명하게 밝히는 것이 투명성 강화의 첫 걸음이다. 또 외국에서 가짜뉴스에 ‘빨간딱지’를 붙이는 것도 검토할 만하다”고 주장했다.
김양순 <한국방송>(KBS) <저널리즘토크쇼J(제이)> 팀장
박아란 한국언론진흥재단 선임연구위원은 로이터저널리즘 연구를 통해 우리 뉴스 이용자들이 자신과 관점이 비슷한 것을 선호해 환증편향이 강해지는 현상을 짚었다. “덴마크 등 주요국은 객관적 뉴스를 선호하는데 한국은 진보든 보수든 정파적 기사에 쏠렸다. 이용자가 편향적이어서 언론이 편향적인지 논쟁이 되기도 했지만 둘다 편향적이라면 언론이 중심을 잡고 사회 감시 역할을 충실하게 해야 한다. 그런데 최근 언론보도에서 왜 그렇게 누구 가족 이야기만 하는지 모르겠다. 중요한 기사를 제쳐놓은 채 가족 기사 이야기를 1절만 하고 끝내지 11절까지 나가나”라고 비판했다.
최지향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 미디어학부 교수는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듯 나쁜 뉴스가 휩쓸고 있는 언론 현상에 대해 “학부 수업에서 좋은 기사 리스트를 제시한다. 좋은 기사가 확산되도록 언론재단 등에서 제도적으로 실천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홍성철 경기대 교수는 언론사의 비즈니스 모델을 거론했다. 홍 교수는 “20년 전과 비교하면 언론사마다 기자수가 줄고 기사량은 늘었다. 고품질 기사를 생산하기 쉽지 않은 구도”라며 “공짜에 대해 당연시 여기는 시대가 되었다. 이용자도 언론이 건강해지는 방식을 고민해야 한다. ‘돈을 적게 받지만 자부심 갖고 살아라’가 아니라 물적 토대를 후원하며 언론에게 신뢰를 요구해야 한다. 언론은 기업에 의존하는 광고 중심 모델에서 기사 중심의 후원 모델을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디지털로 여러 매체를 병독하는 미디어 소비자들은 입맛에 맞는 기사를 선택할 수 있다. 선택이 많아지면서 편향성을 갖고 정파적 소비를 한다. 이에 대해 플랫폼 사업자들이 오른쪽 뉴스와 왼쪽 뉴스를 함께 읽도록 알고리즘을 통해 소비자에게 균형감있는 시각을 제공하는 방식도 검토할 만하다”고 말했다.
문현숙 선임기자
hyunsm@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