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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병상에 누워 나눴던 따스한 순간들 영원히 기억할게요”

등록 2020-11-12 19:42수정 2020-11-13 02:35

대만에서 온 라문황씨의 사모곡
어머니가 별세하기 1년 전인 2016년 설날 8남매와 자손들이 다함께 찍은 마지막 가족사진이다. 왼쪽 분홍 티셔츠 차림이 필자 라문황씨. 사진 라문황씨 제공
어머니가 별세하기 1년 전인 2016년 설날 8남매와 자손들이 다함께 찍은 마지막 가족사진이다. 왼쪽 분홍 티셔츠 차림이 필자 라문황씨. 사진 라문황씨 제공

2013년 11월 정적에 싸인 깊은 밤, 어머니 어깨에 기대어 있던 저는 낙숫물소리에 잠이 달아납니다. 온몸이 마비된 어머니는 그저 눈빛으로 말합니다. ‘가을비가 내리고 나면 그만큼 추위도 따라온단다. 애야! 이불 잘 덮고 추위 조심해라!’ 저는 대꾸합니다. “엄마, 걱정하지 마! 엄마 몸이 따뜻해. 이불보다 포근한 걸!” 내년 겨울에도 차가운 손발을 이불 속에 밀어 넣으면 엄마가 따뜻이 녹여주기를 바랄게.

어머니가 병석에 눕기 전까지, 저와 어머니 사이는 자녀가 마땅히 해야 하는 효도 정도였습니다. 2011년 쓰러진 어머니는 장기간 입원을 반복해야 했습니다. 저는 어머니를 돌보고자 대만으로 건너갔지요. 그때부터 우리 모녀는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고, 지나간 숱한 일을 소환했습니다. 어머니는 상세하게 제 어릴 때 기억을 채워주었지요.

하루는 어머니에게 물었습니다. “어머니는 아이를 여덟 명이나 낳았으니, 나는 다섯째라 가장 관심 밖이었지. 그래 안 그래?” 어머니가 웃기만 하고 대꾸를 안 하니 한명씩 숫자를 들먹이며 따졌지요. “큰 언니는 첫 번째 태어난 보배였고, 둘째 언니는 비록 여자 아이지만 아직은 상큼하고. 세번째는 큰오빠, 고추를 달고 나왔고 집안의 장손이니 얼마나 기뻤을까? 네번째인 세째 언니는 대만 속담에 ‘셋째 딸은 복을 타고 난다’고 하잖아. 거기다 미인상이니 어머니 아버지의 총애를 받았고.”

제 차례는 건너뛰고 계속 이어나갔습니다. “여섯번째는 둘째 아들, 기다리던 고추가 또 태어났으니 총애를 받았지. 일곱째를 낳고는 어머니가 더 안 낳겠다고 했지. 그렇지만 여동생이 예쁘고 애교가 넘쳤으니 당연히 사랑을 받을 수밖에. 거기에다 이후 생각지도 못했던 고추가 또 출현했어. 막내동생은 귀염둥이였지. 어려서부터 할머니는 막내를 ‘꼬마 변호사’라고 즐겨 불렀어. 그래서 막내도 총애를 받으며 자랐고!”

저는 어머니에게 한 번 더 물었습니다. “나는? 다섯 번째에 고추도 없고, 까맣고 못생긴 데다 들창코. 사실 사랑받을 이유가 없잖아. 그렇지?” 어머니는 저를 보더니 자애로운 목소리로, “열 손가락 물어봐라. 어느 손가락이나 다 아프단다.” 그래서 제가 어머니 양손을 올리고 손가락 열 개를 하나씩 깨물었지요. “다섯 번째 손가락은 안 아프지?” “그래, 안 아프다.” 하셨지요. “애들은 많고, 집안 형편은 어려우니 누가 울어야 먹였다. 너는 어려서부터 울지도 않고 뭘 달라고도 못 했어. 지금부터는 원한다는 말도 할 줄 알아야 한다!” 그나마 언어장애가 오기 전 어머니와 나눈 대화이자 저에게 한 마지막 분부로 기억합니다.

어느날 밤 깨어나자 습관적으로 어머니 침대를 바라봤습니다. “엄마, 잠이 안 와? 내가 엄마 곁에서 잘까?” 어머니는 눈을 깜박여 좋다는 표시를 합니다. 저는 어머니의 좁은 침대로 올라가 이마를 어머니 뺨에 대고 누웠습니다. 귓가에 작은 콧소리로 흥얼흥얼 노래를 불러드리자 어머니가 편안하게 눈을 감습니다. 만약 그 몇 해 밤낮으로 함께 지내지 못했다면 응석을 부리며 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누는 정을 이해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물론 병상 곁에서 어머니의 나날을 지켜봐야 하는 일이 쉽지는 않았지만, 우리 사이 마음의 거리는 함께 지내는 시간만큼 점점 가까워졌으니까요.

8남매 다섯째로 1989년 한국으로
타국 시집가는 딸에게 해준 당부
“네 등에 ‘대만인’ 써있다 생각해”

2011년부터 6년 투병 모친 돌보며
“결혼생활 30여년 견디게 해준 힘”

1989년 멀리 한국으로 시집가는 저에게 어머니는 당부했지요. “너의 시댁 친인척들은 모두 처음으로 ‘대만 사람’과 접촉하게 될 거다. 그들은 단지 너의 행동거지만으로 ‘대만 사람’이 좋다 나쁘다 평할 것이다. 너의 등에 ‘대만인’ 세 글자가 짊어져 있으니 말은 삼가고 행동은 신중해야 한다. 한국 사람들이 등 뒤에 손가락질하며 대만 사람이 안 좋다고 말하게 해선 안 된다. 아침에 큰 동서가 6시에 일어나 아침을 준비하면 너는 반드시 5시 반에 일어나라. 윗사람이 일어나기 전에 꼭 먼저 일어나라. 어떤 일이든 ‘저는 대만사람이라 못해요’라는 소리는 하지 마라. 눈치껏 손 빠르게 배우고, 할 수 있는 일이면 잽싸게 손을 놀려라. 집안일도 열심히 해야 한다. 나는 아직 집안일이 힘들어 죽은 사람 못 봤다.” 어머니는 또 덧붙여, “결혼이란 단지 남편과 시부모만 돌보는 것이 아니란다. 가까운 이웃이나 먼 친척도 반드시 정성을 다해야 한다. 먼저 다른 사람을 선하게 대해야만 다른 사람도 너를 선하게 대할 것이다.”

제가 한국에서 보낸 30년의 결혼생활, 비바람도 많이 겪었지요. 만약 누군가가 저에게 타국에서의 결혼생활을 어떻게 참고 견딜 수 있었느냐고 묻는다면? 곰곰이 생각해보니, 아무래도 어머니의 가르침으로 버텼다는 생각이 드네요.

2017년 어머니가 87살로 세상을 떠난 이후 저는 대만에 가면 언제나 어머니와 함께 잤던 침실에서 잡니다. 마치 어머니가 여전히 제 곁에 있는 것 같습니다. 어머니를 돌보던 그 세월이 정말 귀중한 시간이었음이 요즘들어 점점 또렷해집니다. 만약 그 시간이 없었더라면 우리는 마음 속 중요한 부분을 서로 깨닫지 못했을 것입니다.

어머니! 이제 다시는 당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지만 가르침은 꼭 새겨둘게요. 추억이 가장 아름답다고 하지요. 사람은 누군가의 기억 속에 살아 있다고 합니다. 어머니의 모든 것을 내가 기억하고 있는 한, 어머니는 영원히 살아 계실 것입니다.

라문황/대만인

<한겨레>가 어언 32살 청년기를 맞았습니다. 1988년 5월15일 창간에 힘과 뜻을 모아주었던 주주와 독자들도 세월만큼 나이를 먹었습니다. 새로 맺는 인연보다 떠나보내는 이들이 늘어나는 시절입니다. 올들어서는 코로나19 탓에 이별의 의식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기억합니다’는 떠나는 이들에게 직접 전하지 못한 마지막 인사이자 소중한 추억이 될 것입니다. 부모는 물론 가족, 친척, 지인, 이웃 누구에게나 추모의 글을 띄울 수 있습니다. 사진과 함께 전자우편으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한겨레 주주통신원 (mkyoung60@hanmail.net 또는 cshim777@gmail.com), 인물팀(Peop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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