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에서 온 라문황씨의 사모곡

어머니가 별세하기 1년 전인 2016년 설날 8남매와 자손들이 다함께 찍은 마지막 가족사진이다. 왼쪽 분홍 티셔츠 차림이 필자 라문황씨. 사진 라문황씨 제공
타국 시집가는 딸에게 해준 당부
“네 등에 ‘대만인’ 써있다 생각해” 2011년부터 6년 투병 모친 돌보며
“결혼생활 30여년 견디게 해준 힘” 1989년 멀리 한국으로 시집가는 저에게 어머니는 당부했지요. “너의 시댁 친인척들은 모두 처음으로 ‘대만 사람’과 접촉하게 될 거다. 그들은 단지 너의 행동거지만으로 ‘대만 사람’이 좋다 나쁘다 평할 것이다. 너의 등에 ‘대만인’ 세 글자가 짊어져 있으니 말은 삼가고 행동은 신중해야 한다. 한국 사람들이 등 뒤에 손가락질하며 대만 사람이 안 좋다고 말하게 해선 안 된다. 아침에 큰 동서가 6시에 일어나 아침을 준비하면 너는 반드시 5시 반에 일어나라. 윗사람이 일어나기 전에 꼭 먼저 일어나라. 어떤 일이든 ‘저는 대만사람이라 못해요’라는 소리는 하지 마라. 눈치껏 손 빠르게 배우고, 할 수 있는 일이면 잽싸게 손을 놀려라. 집안일도 열심히 해야 한다. 나는 아직 집안일이 힘들어 죽은 사람 못 봤다.” 어머니는 또 덧붙여, “결혼이란 단지 남편과 시부모만 돌보는 것이 아니란다. 가까운 이웃이나 먼 친척도 반드시 정성을 다해야 한다. 먼저 다른 사람을 선하게 대해야만 다른 사람도 너를 선하게 대할 것이다.” 제가 한국에서 보낸 30년의 결혼생활, 비바람도 많이 겪었지요. 만약 누군가가 저에게 타국에서의 결혼생활을 어떻게 참고 견딜 수 있었느냐고 묻는다면? 곰곰이 생각해보니, 아무래도 어머니의 가르침으로 버텼다는 생각이 드네요. 2017년 어머니가 87살로 세상을 떠난 이후 저는 대만에 가면 언제나 어머니와 함께 잤던 침실에서 잡니다. 마치 어머니가 여전히 제 곁에 있는 것 같습니다. 어머니를 돌보던 그 세월이 정말 귀중한 시간이었음이 요즘들어 점점 또렷해집니다. 만약 그 시간이 없었더라면 우리는 마음 속 중요한 부분을 서로 깨닫지 못했을 것입니다. 어머니! 이제 다시는 당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지만 가르침은 꼭 새겨둘게요. 추억이 가장 아름답다고 하지요. 사람은 누군가의 기억 속에 살아 있다고 합니다. 어머니의 모든 것을 내가 기억하고 있는 한, 어머니는 영원히 살아 계실 것입니다. 라문황/대만인

<한겨레>가 어언 32살 청년기를 맞았습니다. 1988년 5월15일 창간에 힘과 뜻을 모아주었던 주주와 독자들도 세월만큼 나이를 먹었습니다. 새로 맺는 인연보다 떠나보내는 이들이 늘어나는 시절입니다. 올들어서는 코로나19 탓에 이별의 의식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기억합니다’는 떠나는 이들에게 직접 전하지 못한 마지막 인사이자 소중한 추억이 될 것입니다. 부모는 물론 가족, 친척, 지인, 이웃 누구에게나 추모의 글을 띄울 수 있습니다. 사진과 함께 전자우편으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한겨레 주주통신원 (mkyoung60@hanmail.net 또는 cshim777@gmail.com), 인물팀(Peop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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