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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곡기 끊고 풍운의 삶 마감하신 ‘종손의 기개’ 따르오리다”

등록 2020-12-24 20:25수정 2021-01-04 16:19

[기억합니다] 아버지의 말년 추억하는 막내딸
슬하에 1남2녀를 둔 필자의 부친 고 김택동(왼쪽)씨와 모친 이수방(오른쪽)씨가 1977년 큰아들의 결혼식 때 나란히 섰다. 사진 김자현씨 제공
슬하에 1남2녀를 둔 필자의 부친 고 김택동(왼쪽)씨와 모친 이수방(오른쪽)씨가 1977년 큰아들의 결혼식 때 나란히 섰다. 사진 김자현씨 제공

벌써 30년 전 돌아가신 아버님을 소환하는 마음은 너무도 착잡하다. 인생은 너나 할 것없이 파란과 굴곡의 파노라마다. 정계든 재계든 사회적으로 드러나지 않으셨으나, 아버님도 시대의 풍운아임에는 틀림없다. 관악산에 오르셨다가 허리가 덜컥 내려앉아 지나던 청년의 등에 업혀 하산하셨다. 현대의학을 두루 수소문하며 오빠 내외가 수고를 다했다. 골다공증으로 무너지기 시작한 뼈가 신경을 눌러 기어서도 화장실을 가실 수 없게 되자 아버님은 스스로 단식에 드셨다.

내가 1990년대 중반 역사를 찾는 사람들(역찾사)에 합류했을 때 일화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지난해 초 별세하신 유초하 교수와 대진대 동양철학과의 권인호 교수를 처음 뵈었다. 그런데 ‘안동 김가’이라고 소개하자 이분들의 표정이 부쩍 어두워졌다. ‘세도가 하도 막중하여 안동 김씨는 발톱의 때까지 양반이더라!’ 하던 문장이 세간에 회자되던 시절이었다.

아버님(김택동)은 고려 개국 삼태사의 한 분이자 안동 김씨 시조 태사공 ‘선평’(휘자)의 28세손이다. 대대로 불천지위(나라에서 공훈을 인정해 위패를 영구히 사당에 두도록 허락한 신위)가 네 분이나 된다는 종가의 종손이셨다.

그 가운데 13대조는 ‘선원’으로 휘자가 상용이시다. 병자호란 때 묘사주를 받들고 빈궁과 원손을 수행하여 강화도에 피난했다가, 그마저 함락되자 초문에 쌓아놓은 화약에 불을 지르고 자결하신 바로 그 분이시다. 그때 그 어른의 슬하에는 영특한 7살 손자가 늘 뒤를 따랐다고 한다. 별별 궁리를 다하여 손자를 떼놓고자 하였으나 의중을 알아챈 손자가 울면서 조부의 소맷자락을 붙들고 놓지 않아 그대로 달고 화약고에 뛰어들어 함께 산화했다는 것이다. 오리 밖에서 그 아이의 신발 한 짝을 겨우 수습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가 우리 집안에 내려오는 선원 어른의 정사에 가까운 야사다.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 보자 한강수야/ 고국산천을 떠나고자 하랴마는/ 시절이 하 수상하니 올동말동 하여라’. 우리가 널리 배웠던 이 시조 ‘가노라 삼각산아’는 당시 예조판서였던 청음 김상헌(1570~1652)이 옥살이를 하러 청으로 끌려가며 읊은 시조다. 병자호란 때 청 태종의 회유에 끝내 굴복하지 않았던 척화파의 삼학사(홍익한·윤집·오달제)가 태종에게 참형을 당한 4년 뒤였다. 청음은 13대조 김상용 어른의 동생이시다. 상용·상헌 형제는 청 태종이 12만 대군을 끌고 와 조선을 겁박했을 때 남한산성에서 인조와 함께 47일을 대치하며 끝까지 싸우자며 비굴한 항복을 가로막았던 척화파의 선봉이었다.

두 어른은 문사철에 능했을 뿐만 아니라 당대에 그렇게 강직했었는데, 어쩌다가 그 정신이 변질되어 역사를 아는 분들마저 ‘안동 김’이라면 덜레머리를 젓는 지경에 이르렀는지. 외척, 세도가, 이런 단어들은 ‘장동 김’, 그러니까 훗날 청음 자손들의 계보에 나오는 이야기다. 나는 엄연히 선원 어른의 계보인데 하마터면 장동 김으로 오인되어 ‘역찾사’의 일원이 될 수 없을 뻔했다는 이야기가 이렇게 길어졌다.

필자의 부모는 1944년 결혼해 1990년 남편(김택동)이 먼저 세상을 떠날 때까지 46년간 해로했다. 사진 김자현씨 제공
필자의 부모는 1944년 결혼해 1990년 남편(김택동)이 먼저 세상을 떠날 때까지 46년간 해로했다. 사진 김자현씨 제공

혹여 당대에 내세울 것이 없어 가문의 선조를 끌어낸 것은 전혀 아니다. 정말 피는 못 속이는 것인지 강직하기로 소문난 아버지는 말년도 멋지게 장식하셨다. 그토록 골다공증이 심해지도록 모르고 있었던 자손이니 실상 ‘천추의 한’으로 남았다. 아들에게도 당신의 국부를 보이는 것을 끔찍해하셨다. 링거를 꽂아드리면 빼어버리며 항거하시곤 했다. 그나마 딸들이 식사를 유도하기 위해 한우를 사다가 지글거리며 냄새를 피웠을 때 원초적인 유혹에 넘어가 맥주 한 잔에 고기 몇 첨으로 이승의 몇 날을 유보할 수 있었을까. 그렇게 단식에 드신 지 석 달 만에 아버지는 일흔여섯 생을 마감하셨다. 먼저 쓰러진 어머님(이수방·경주이씨)을 수년째 수발하시던 아버님이 앞서 떠나실 줄이야.

이제 어느덧 말년에 접어든 우리 남매들은 욕심이 사납거나 불의하면 자식이라도 용납 못 하시고 대의와 공의를 먼저 앞세우셨던 아버님을 부쩍 자주 떠올리고 있다. 그럴 때마다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혹시 남루한 나날 만을 남겨놓게 될 때 구차하게 연명하지 말고 아버지처럼 단호한 결단으로 최후를 마치자고! 김자현/막내딸

<한겨레>가 어언 32살 청년기를 맞았습니다. 1988년 5월15일 창간에 힘과 뜻을 모아주었던 주주와 독자들도 세월만큼 나이를 먹었습니다. 새로 맺는 인연보다 떠나보내는 이들이 늘어나는 시절입니다. 올들어 코로나19 탓에 이별의 의식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기억합니다’는 떠나는 이들에게 직접 전하지 못한 마지막 인사이자 소중한 추억이 될 것입니다. 부모는 물론 가족, 친척, 지인, 이웃 누구에게나 추모의 글을 띄울 수 있습니다. 사진과 함께 전자우편으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한겨레 주주통신원 (mkyoung60@hanmail.net 또는 cshim777@gmail.com), 인물팀(Peop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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