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미디어·언론 상생 태스크포스(TF) 소속 위원들이 11일 오전 국회에서 신문 부수 부풀리기 의혹과 관련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위원들은 국가보조금 부당 수령 등에 대한 조사·환수와 문화체육관광부의 개혁방안 발표 등을 촉구했다. 공동취재사진
종이신문과 잡지 등의 발행·유료 부수를 공식 인증해주는 한국ABC협회(부수공사기구·이하 협회)의 신뢰성이 도마 위에 올랐다. 협회 내부고발자가 “정부가 공사(부수인증) 과정에서 발생한 부정행위를 조사해달라”며 ‘부수 부풀리기 의혹’을 제기하자, 정치권·언론시민단체가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여는 등 논란이 확산하고 있다. 언론시민단체와 전문가들은 “신문업계의 자성과 부수공사시스템 개혁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터질 게 터졌다”…독립성 낮은 공사에 권한만 늘려
협회는 신문·잡지 등의 ‘유료부수’를 객관적으로 검증해 합리적인 광고비를 산정하기 위한 근거를 마련한다는 취지에서 1989년 창립되었다. 광고주로선 신문사들이 무료로 배포하는 신문까지 포함하는 ‘발행부수’만으로 광고 단가를 측정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협회 참여는 자율에 맡겨 오랜 기간 매체 참여도가 낮았다.
변곡점은 2009년 정부가 협회의 검증에 참여한 언론에 대해서만 정부 광고나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집행하기로 법령을 바꾼 때다. 당시 정부 광고 규모는 연간 2000억원으로, 정부가 인쇄매체 광고시장의 ‘최대 광고주’라는 위치를 활용해 부수인증제를 확대하고자 한 것이다. 참여사가 이때를 기점으로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2020년 기준 975개 매체가 부수인증을 받았다.
‘부수 부풀리기’ 우려는 2009년부터 꾸준히 제기됐다. 협회에서 ‘신문 부수 공사 규정 시행세칙’의 유료부수 기준을 기존 구독료 정가의 80%에서 50%로 낮추는 등 범위를 넓히면서 “음성적으로 만연한 신문사의 불공정경쟁행위를 더욱 부추기는 결과를 낳는다”는 지적이 언론시민단체를 중심으로 나왔다.
이때 바뀐 유료부수 기준은 지국에서 ㄱ신문 1부와 ㄴ신문 1부를 ‘끼워넣기’하며 독자에게 신문 1부의 구독료만 받아도 ㄱ·ㄴ신문 모두 각각 유료부수 1부로 인정될 수 있다. 신문 구독료를 내기 전 6개월 무료 구독도 유료부수로 인정받을 수 있다.
유료부수 범위는 계속 넓어져 2010년 이후 기업 등이 신문사에 ‘후원’ 명목으로 단체 구독하는 부수까지 포함됐다. 20여년 동안 광고·홍보업계에서 일한 한 관계자는 “업계에서는 (이번 ‘부풀리기’ 의혹을 보며) ‘언제든 터질 게 터졌다’고 생각한다. 일반 기업체 광고 담당자들에게 부수인증 신뢰는 사라진 지 오래”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협회의 자본구조 및 지배구조가 부수공사기구의 독립성을 해칠 우려가 크다고 지적한다. 형태는 비영리 사단법인이지만 공익자금이 기금으로 투입됐으며, 1996년부터는 회원사 회비와 기금 이자수익으로 연 19억원에 가까운 운영비를 충당하고 있다. 협회의 이사회는 신문·잡지 등 매체사, 광고주, 광고회사 등 3자로 구성된다. 심영섭 경희사이버대 미디어영상홍보학과 겸임교수는 “주요 신문사 판매국장의 발언권이 센 이사회 구조를 바꿀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부풀리기 선 넘었다”…실태조사와 제도혁신 논의 필요
지난해 11월 박용학 당시 협회 사무국장은 주무관청인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에 “부수공사와 관련한 부정행위를 조사해야 한다”는 요지의 진정서를 넣었다. 그는 진정서에서 “협회가 누리집에 발표한 공사결과를 보면, 2020년(2019년도분) <조선일보>의 경우 발행부수(121만2208부) 대비 95.94%(116만2953부)의 유가율을 기록하고, 2019년(2018년도분) <한겨레>의 경우 발행부수(21만4832부) 대비 93.26%(20만343부)다.현실에서는 발생할 수 없는 불가능한 상황을 가능하다며 조사 결과로 발표한 것”이라고 폭로했다.
또 이러한 공사 결과가 나온 이유는 △현장 실사를 나갈 신문지국 표집·교체의 불투명성 △역량·적격성이 떨어지는 공사원을 업무 중요도 높은 매체에 배정하는 문제 △공사 결과를 보정하는 과정의 불투명성 등이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했다. 부수공사기구의 책무는 본사·지국 등을 현장 실사해 신문사가 보고한 부수 자료와 부합하는지 검증하는 것인데, 특정 신문사의 ‘부수 부풀리기’를 의도적으로 잡아내지 않은 정황이 엿보인다는 설명이다. 문체부는 진정서를 접수한 뒤 협회에 대한 사무검사를 시작했다.
박 전 사무국장은 1992년 공사원으로 협회에 입사해 2008년부터 지난해 말까지 사무국장을 지냈다. 지난 1월 협회의 운영비를 옵티머스 펀드에 투자했다가 회수하지 못한 책임으로 해고됐으며, 협회로부터 고소·고발당한 상태다.
그는 지난 7일 <한겨레>와 만나 “부당해고에 대한 구제신청을 준비 중이며, 내부고발은 이러한 징계와 무관하게 (일간신문 공사 과정의 ‘부수 부풀리기’ 행태가) 선을 넘었다고 생각해서 진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신문 발행부터 배달 과정 사이에 이런저런 이유로 누수되는 비율이 20% 안팎이라고 추정한다. 신문사와 협회 임원들의 이해관계에 맞춰 부수공사를 일부러 느슨하게 하거나 근거 데이터를 누락시킨 정황을 수차례 보거나 들었다”고 덧붙였다.
협회는 신문사 구독률·열독률이 모두 급감하는 상황에서도 유가율이 높은 이유에 대해, 과거에 유료부수에서 비중이 높았던 지국 유료부수나 가구 독자 비율이 낮아지고 비가구 독자(영업장·가판)와 기업·제휴 부수 등 다른 영역의 비중이 늘어났기 때문이라는 견해다.
전문가·언론시민단체는 협회를 둘러싼 의혹에 대한 진상규명은 물론 공사시스템 혁신이 필요하다고 짚는다. 협회의 인증위원회에 참여하는 곽혁 광고주협회 상무는 “가장 공정하게 선정되어야 할 (현장 실사 나갈) 지국을 뽑는 일을 공사팀장 혼자 처리한다는 것을 알고 놀라 의문을 제기한 적이 있다. 인증위 절차는 형식적인 데 그쳐서 공사 절차나 인증 절차를 바꾸자고 제안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종이신문 구독자가 줄어도 디지털을 포함한 다양한 수단으로 신문 기사를 읽는 경우까지 포함하면 신문사들의 영향력이 줄어든 것은 아니다”라며 “이미 해외에선 오프라인 부수와 디지털 페이지뷰를 통합한 모델을 만들고 있다. 하루빨리 미디어 환경 변화에 발맞춘 시스템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신미희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은 “신문시장 자체가 불투명하고 불공정거래가 만연한 후진적 구조를 유지하는 게 문제다. 특정 신문사의 문제로 바라보지 말고 전반적인 신문시장 정상화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부수 부풀리기’ 의혹을 둘러싼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미디어·언론 상생 티에프(TF·단장 노웅래) 소속 위원 9명은 11일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의 사무검사 결과 및 재발 방지를 위한 개혁방안 발표를 촉구했다. 문체부 관계자는 이날 <한겨레>에 “사무검사 결과를 다음주에 발표하려고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이러한 의혹과 관련해 <한겨레>는 “현재 부수공사의 인증 부수 신뢰도에 흠결이 있고, 부수공사가 애초 출범 취지에 제대로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에 공감한다. 제기된 논란에 대한 진상 파악과 제도 개선에 적극 협조하겠다”고 밝혔다. <조선일보>는 “본보는 협회에서 요청하는 대로 관련 자료를 제출하고 공사에 임했다. 본보는 공사를 받는 입장이며, 부수인증 결정 권한은 협회에 있다”고 밝혔다.
김효실 기자 tran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