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동 바리의 꿈 대표
[짬] 고려인 사회적기업 바리의 꿈 김현동 대표
‘바리데기 공주처럼 버려졌지만…”
10여년 방치됐던 땅 콩재배로 개척 2013년 가공식품만 아니라 콩 반입돼
‘비유전조작콩’ 안전한 먹거리 각광
최근 누리집·페북·카페 등 새로 개설 “고려인들이 재배하는 비유전자조작-유기농콩 이야기는 우리의 바리데기 공주 설화와 많이 닮아 있습니다.” 우리나라 곳곳에 구전된 바리데기공주 설화는 버림받은 공주가 끝내 자신을 버린 아버지의 목숨을 구하는 이야기다. 옛날 한 임금이 연이어 7명가 공주만 태어나자 마지막 공주를 강물에 띄워서 버렸다. 하지만 막상 왕이 죽을 운명에 처하자 버림받은 바리데기 공주가 저승세계까지 가서 불사약을 구해와 아버지인 왕을 구한다는 얘기다. “연해주 고려인들의 삶은 바리데기 공주의 삶과 마찬가지로 역사 속에서 버림받은 존재처럼 느껴집니다.” 연해주에 처음 고려인들이 발을 디딘 것은 1864년이었다. 이들은 특유의 부지런함으로 연해주땅에 벼농사를 도입했고, 조국이 병탄된 뒤에는 독립운동을 지원하기도 했다. 그러나 37년 17만여명이 스탈린에 의해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를 당하면서 많은 이들이 터전을 버린 채 심지어 목숨까지 잃어야 했다. 더욱이 소련 해체 뒤인 90년 이후에는 우즈베키스탄이나 카자흐스탄 등 중앙아시아 국가들에서 민족주의가 발흥하면서, 또다시 수십년 터전을 떠나 연해주로 되돌아와야만 했다. 김 대표는 이 바리데기 고려인의 꿈을 우리 사회와 연결하는 일로 젊은 시절을 보냈다. 그가 이들과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90년대 말. 시민단체 동북아평화연대의 활동가로서 이들의 정착을 도우면서부터였다. 2004년에는 중앙아시아에서 돌아온 무주택 고려인들을 위한 집단정착촌인 ‘우정마을’을 만드는 데 앞장섰다. 그는 심지어 가족과 함께 우정마을로 이주해 지금까지 그들의 자립을 돕고 있다. 지원사업은 국내에서의 지원이 이어졌다 끊어졌다 하면서 어려움도 많았다. 그때 이들의 눈에 띈 것이 바로 비유전자조작-유기농 콩이었다. 연해주의 비유전자조작-유기농 콩은 러시아의 비유전자조작식품 정책과 사람의 손이 닿지 않는 연해주의 넓은 땅이 있어 가능했다. “러시아의 비유전자조작식품 정책은 매우 강력합니다. 러시아는 식품에 유전자 변형 성분이 0.9%만 넘어도 유전자조작식품으로 규정합니다. 이는 미국의 5%나 한국의 3% 기준에 비해 매우 엄격한 편입니다.” 김 대표는 더욱이 바리의 꿈과 계약을 맺고 있는 고려인들은 “10년 이상 방치된 토지에서 콩을 재배하고 있다”고 전했다. “10여년 동안 제초제, 화학비료 등을 전혀 사용하지 않은 땅에서 콩, 보리, 밀, 귀리 등을 윤작으로 생산하기 때문에 유기농 생산지로는 최적의 조건을 가지고 있지요.” 하지만 꿈을 실천하는 발걸음은 너무나 느렸고 장애물도 많았다. 우선 외국산 콩이라는 편견이 문제였다. 한 사례로 바리의 꿈은 2011년부터 연해주 콩을 사용한 ‘유기농 전통장 협동조합’ 결성을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준비위’ 단계에 머물고 있다. “각 지자체가 국내산 콩을 사용할 때만 전통장 인증을 내주는 제도적 장벽에 부닥쳤기 때문”이다. 그나마 2013년부터는 연해주에서 수확한 콩을 직접 수입하는 일이 가능해졌다. 그 이전에는 청국장이나 된장 등 가공식품으로만 들여올 수 있었다. 이를 계기로 사회적기업을 지원하는 취지로 설립된 단체인 ‘이로운넷’과 공동으로 두유를 생산하고, 노동자협동조합 해피브릿지와 함께 두부를 생산하는 등 ‘꿈’의 영역들을 넓혀가고 있다고 한다. “우선 콩으로 우리 민족의 바른 먹거리 형성에 도움을 주었으면 합니다. 2014년 국내 수입된 유전자조작식품은 모두 1천만t 가량 됩니다. 사료 등도 결국 고기를 통해 섭취한다고 할 때, 1인당 1년에 200kg 이상 유전자조작식품을 먹은 것입니다.” 김 대표는 연해주 비유전자조작-유기농 콩이 “이런 먹거리 환경이 변화 불가능한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작은 희망이 되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연해주 콩에서 싹튼 희망은 남북한을 넘어 동북아 전체 동포의 연대와 통일을 향해 자라고 있다. “바리의 꿈은 또 고국으로부터 버림받았다고 생각하는 고려인들에게 재활의 꿈을 심어줄 수 있습니다. 그들이 지원이 아니라 자기 손으로 경작한 농산물을 통해 자기의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할 것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남북러 삼각협력 등을 통해 아직도 식량난에 허덕이는 북녘 동포들에게 풍족한 먹거리를 선사하는 날을 꿈꾸며 기대하고 있습니다.” 김보근 한겨레평화연구소장 tree21@hani.co.kr, 사진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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