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 국제법률전문가협회 창립 김기태 미국변호사
국제법률전문가협회 창립 김기태 미국변호사
‘협회’ 꾸려 상근부회장 맡아 주도
회원 네트워크·자격증 교육 ‘계획’ 법대시절 학생회 간부 맡아 ‘운동’
340달러 들고 뉴욕…7년만에 ‘합격’
촛불시위·세월호 서명지기로 참여 이 협회의 특징은 회원의 80% 이상이 김 변호사가 2010년부터 운영해온 미 로스쿨 과정 준비 학원(KTK 아카데미) 수강생이라는 점이다. 학원의 사제간 인연이 협회로 이어진 것이다. “협회 설립 기획과 준비에 1년 이상 걸렸어요. 변호사 관료 기업인 등 다양한 배경의 전문가들이 제 강의를 들었죠. 그들을 네트워크로 연결하고 싶었어요.” 회장은 그의 고교 선배인 박양진 변호사가 맡았고, 그는 상근부회장으로 일하고 있다. 김 변호사는 2010년 미국 뉴욕주 변호사 자격증을 딴 뒤 귀국해 투자이민 전문 변호사로 잠시 일하다 바로 학원 사업에 뛰어들었다. “미국에서 변호사 시험을 준비할 때부터 미국변호사가 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시험 자료를 꾸준히 정리해놓았어요. 강의에 큰 도움이 되었죠.” 첫해 수강생은 2명에 불과했으나 올해는 150명으로 늘었다. 강사도 10명이나 된다. 민간학원으로는 가장 큰 규모라고 한다. 2년 전엔 서울변호사협회와 업무협약을 맺고 협회 회원들의 미국변호사 자격 취득 교육도 맡고 있다. 그는 “미 변호사가 된 뒤 나이지리아나, 홍콩에서 일하는 학원 수강생도 있다”면서 “수강생의 70% 이상은 직장인이며, 나머지는 학생”이라고 밝혔다. 그는 협회를 통해 여러가지 일을 하고 싶어했다. 가장 시급한 것은 미국변호사들의 취업 문제라고 했다. “우리나라에 미국변호사 자격증 보유자가 3천명 이상 있어요. 이 가운데 10% 정도만 변호사나 컨설팅, 교육 사업 등 분야서 자격증을 활용하고 있죠. 나머지 90%는 ‘장롱면허’입니다. 미변호사가 돼도 미국에서 취업하기 힘들어요. 전문직 취업 비자(H1B) 취득이 가능한 회사에 들어가기 쉽지 않아서죠. 협회라는 네트워크가 일자리를 구하는 데 도움이 될 거라 봅니다.” 협회는 회원들의 전문 지식을 활용한 교육에도 적극 나설 계획이다. “미국은 변호사가 된 뒤 실무교육이 따로 없습니다. 협회에서 이민법이나 회사법 등 미국변호사를 위한 실무교육 코스를 개설할 겁니다.” 또 미국에서 변호사 시험을 바로 볼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는 비학위 과정도 열기로 했다. 이밖에 직업능력개발원 인증을 받아 법정 통역사나 법률사무원 등의 민간 자격증 취득 교육도 할 참이다. “참여연대나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과도 함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려고 합니다. 하자있는 제품으로 피해를 입은 시민들의 법적 구제나, 채무자들의 빚 탕감 목적으로 설립된 주빌리 은행을 좀더 발전시키는 방식의 사업도 추진하려고 합니다.” 시민단체에 버금가는 공익 활동을 하겠다는 포부인데, 그의 최근 행보를 보면 이해가 된다. 그는 최근 박근혜 정권 퇴진 촛불시위에서 ‘시민나팔부대’를 이끌고 있다. 페북을 통해 만난 시민 150~200명이 주말마다 광화문에서 ‘행동하는 양심, 깨어있는 시민’ 구호가 적힌 깃발 아래에서 ‘박근혜 퇴진’을 외친다. 지난 한달 동안 평일 점심 시간엔 수십여명의 시민과 함께 서울 강남역 11번 출구에서 대통령 퇴진 피케팅 시위를 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 이후 강남역 11번 출구에서 2년 이상 진행중인 세월호 진상규명 활동의 서명지기로도 참여하고 있다. 그는 이른바 ‘고등학생 운동’ 세대에 속한다. 중학교 1학년 때인 1987년 살고 있던 영등포 지역 도서관의 독서클럽에 가입하면서 사회의식에 눈을 떴다고 했다. 고교에 들어가선 학생회 활동에 적극 참여해 학생회 직선제와 동아리의 자율적 예산집행권을 따내기도 했다. 안진걸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그의 중앙대 법대 2년 선배이기도 하다. 안 처장이 법대 학생회장 시절에 그는 학생회 집행부 간부로 함께 일했다. 그는 2003년 10년만에 대학을 졸업한 뒤 단돈 340달러를 들고 미국에 갔다. 그리고 7년 동안 이를 악물고 버틴 뒤 미 변호사 시험에 합격했다. 왜 미국이었을까? “선천적으로 악필이었고 글 쓰는 속도도 매우 느렸죠. 상근예비역으로 군 복무를 할 때 악필을 교정하기 위해 1년6개월 가량 서예·펜글씨 학원을 다니기도 했어요. 그런데 사시 2차 때는 손으로 빠르게 써야 한다는 이야기를 뒤늦게 들었어요. 사시 응시를 포기했죠. 죽고 싶었어요.” 미국변호사 시험은 수기가 아니라 컴퓨터로 응시할 수 있다는 얘기가 그에게 다시 희망을 줬다. 물론 미국에서 공부도 쉽지는 않았다. 3년짜리 정규 로스쿨 코스에 응시했으나 잇달아 실패했다. 1년 과정의 단기 특별코스로 방향을 틀어 과정을 마쳤고, 변호사 시험 역시 4수 만에 붙었다. 그동안 생활비와 학비도 직접 벌어 해결했다. 사회운동과 함께 현실정치에 참여하는 꿈도 가지고 있다는 그에게 왜 정치인가 물었다. “정치는 사회운동과 달리 불특정 다수의 시민들을 대상으로 하잖아요. 복지나 고용과 같은 분야에서 시민들에게 도움이 되는 법안을 직접 만들고 싶어요.” 글·사진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연재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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