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 ‘퇴진행동’ 전 공동대변인 안진걸 활동가
시민운동가 안진걸씨는 대학 졸업을 앞둔 1999년 1월 참여연대 간사가 됐다. 아이엠에프 위기로 경제가 어려운 시절이었다. 파탄난 민생을 보듬는 삶을 꿈꾸면서 시민운동의 문을 두드렸다. 그리고 19년이 흘렀다. 희망제작소와 인터넷 언론에서 2년가량 외도한 것을 빼곤 국내 최대 시민단체 활동가의 삶을 살았다. 지난 5년은 협동사무처장과 공동사무처장을 맡아 60명에 가까운 활동가를 이끌었다. 이런 그에게 <시사저널>은 ‘2017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 전문가 조사에서 엔지오 지도자 부문 1위라는 월계관을 씌워주었다. 지난달 그의 보직이 공동사무처장에서 시민위원장으로 바뀌었다. 19일 서울 통인동 참여연대 1층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시민단체는 젊은 활동가들이 주도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후배들을 위해 자리를 비켜주는 게 중요한 과제이죠.” 참여연대는 지난달 운영위에서 박정은 전 협동사무처장을 단독 사무처장으로 뽑았다. 안 위원장과 함께 사무처를 이끌었던 박근용 전 공동사무처장은 집행위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제가 참여연대 활동가 가운데 경력순으로 ‘넘버4’입니다.” 박 새 사무처장은 그보다 1년 늦게 참여연대에 합류했다.
시민위원장은 그동안 공석이었다. 어떤 일을? “참여연대 활동을 회원과 시민들에게 알리고 후원회원을 늘리는 게 주업이죠. 민생과 노동 경제 관련 활동기구의 실행위원으로도 병행 활동할 겁니다.”
내년까지 회원 5000명을 늘리는 게 목표다. “지금 회원이 1만5천여명입니다. 정기 회비만으론 매년 약간씩 적자입니다. 그래서 비정기 후원을 받아 해결합니다. 2만명만 되면 적자가 나지 않아요.” 참여연대 회원은 2004년 1만명 시대를 연 뒤 꾸준히 늘고 있는 추세란다. “참여연대가 천안함 진실 캐기에 나서면서 극우단체의 위협을 받았을 때 회원이 크게 늘었어요. 이명박·박근혜·이재용 고발 때도 그랬고요. 속시원하게 고발하고 용기있는 진실 찾기에 나서면 늘더라고요.”
그는 가난한 활동가인 자신도 민언련과 문화연대 등 55개 엔지오에 후원금을 내고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민주주의를 이끌어가는 세 주역이 정당·노동조합·엔지오입니다. 최근 들어 정당원과 노조원은 늘고 있는 추세입니다. 엔지오 회원도 늘어야죠. 시민들의 더 많은 회원 가입이 절실합니다.”
대학 졸업 앞두고 간사로 활동 시작
19년째 시민운동 이끄는 ‘홍길동’으로
사무처장 마치고 시민위원장 맡아
“회비 끌어모아 후배들 밀어주는 일” ‘박퇴진 1년’ 촛불동료들과 초심 다져
“민생고·불평등·양극화·불공정 과제” 지난달 그는 ‘촛불’ 사회자 박진씨 등 동료 사회운동가 7명과 함께 8박10일로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등을 여행했다. 엔지오 활동을 시작한 뒤 공적인 목적이 아닌 첫 해외여행이었다고 했다. “박근혜 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과 경제민주화 활동으로 고생을 많이 한 동료들과 다녀왔어요. 박 전 대통령 퇴진 1년도 다가오니 결의도 다졌죠. 하하.” 그의 애칭 가운데 하나가 ‘홍길동’이다. 시민사회단체의 온갖 행사나 집회에 모습을 드러낸다는 뜻에서다. 일정이 빼곡하게 적힌 그의 수첩은 발로 쓴 수첩이란 의미에서 족첩이란 애칭도 얻었다. 2008년 이후 사회단체의 대규모 연대집회엔 늘 그가 있었다. 지난 촛불 때도 퇴진행동 공동대변인으로 시민혁명을 이끌었다. 이명박근혜 정부에서 모두 7차례 기소를 당했다. 사무처장 시절 평균 수면시간은 4~5시간에 불과했는데, 지금은 1시간 정도 늘었단다. ‘2017 엔지오 지도자 영향력 조사’ 결과를 화제에 올렸다. “쑥스럽고 과분한 결과”라며 말을 이었다. “촛불 시민혁명이 낳은 건강한 변화인 것 같아요. 이전엔 박원순, 한비야 같은 대단한 사람들이 상위권에 올랐어요. 촛불을 거치면서 진짜 이웃집 동생이나 동네 친구 같은 제가 거론된 것 같아요.”
활동가로서 그의 초심은 민생이다. 지금도 변함없다. 자신이 참여해 따낸 ‘민생 전리품’을 열거할 때 표정에 생기가 넘쳤다. “반값 등록금을 따내기 위해 대학생들과 거의 1년을 같이 살면서 싸웠어요. (그는 반값 등록금 운동본부 공동집행위원장이었다) 그 결과 연 3조7천억원 규모의 국가장학금 제도가 생겼어요. 소득 1·2분위 학생들은 1년에 장학금 520만원을 받아요. 등록금 인상 상한제나, 졸업 뒤 즉시가 아니라 돈을 벌면 학자금을 갚도록 하는 특별법 통과도 기억에 남아요. 이동통신 원가를 공개하라는 정부 상대 소송은 현재 항소심까지 승소했어요. 입을 열면 끝이 없네요. 하하.”
촛불 이후 시민운동의 방향은? “촛불혁명은 절반의 성공을 했어요. 국민들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민생고, 불평등, 양극화, 불공정 문제를 해결하라는 것입니다.” 그는 시민단체들도 좀더 개방적인 태도로 시민들과 소통을 강화해야 한다고 했다. ‘시민 속으로’ 더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가 끊임없이 변화하고 다양한 의견이 표출되고 있어요. 사실 2008년 촛불도 중고생들이 먼저 깃발을 들었죠. 단체는 시민들의 민생과 일상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끊임없이 개방하고 협력해야죠. 그래야 시민사회가 풍성해집니다.”
현 정부의 민생 정책을 두고는 “노력은 하고 있지만 미진하다”고 했다. “최저임금 인상은 잘했지만, 주택이나 상가 임차인 보호를 위한 전월세 인상 상한제에는 현 정부 관료나 국회의원도 소극적입니다. 상당수가 건물주여서 그렇겠죠.” 계획? “언젠가 참여연대를 떠나면 민생문제연구소 같은 싱크탱크나 어렵게 활동하는 엔지오를 돕는 재단을 만들고 싶어요.”
참여연대 후원 문의 (02)723-5300.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안진걸 참여연대 시민위원장은 최근 <한겨레> 기고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의 혐의를 생각하면 자다가도 분노가 솟는다’고 썼다. “엠비에 대해 개인적 원한은 없어요. 엠비 시절 쌍용차 노동자가 대량 해고됐고 용산참사나 비비케이 피해자도 발생했죠. 제가 말한 분노는 이런 사회적 원한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사진 강성만 선임기자
19년째 시민운동 이끄는 ‘홍길동’으로
사무처장 마치고 시민위원장 맡아
“회비 끌어모아 후배들 밀어주는 일” ‘박퇴진 1년’ 촛불동료들과 초심 다져
“민생고·불평등·양극화·불공정 과제” 지난달 그는 ‘촛불’ 사회자 박진씨 등 동료 사회운동가 7명과 함께 8박10일로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등을 여행했다. 엔지오 활동을 시작한 뒤 공적인 목적이 아닌 첫 해외여행이었다고 했다. “박근혜 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과 경제민주화 활동으로 고생을 많이 한 동료들과 다녀왔어요. 박 전 대통령 퇴진 1년도 다가오니 결의도 다졌죠. 하하.” 그의 애칭 가운데 하나가 ‘홍길동’이다. 시민사회단체의 온갖 행사나 집회에 모습을 드러낸다는 뜻에서다. 일정이 빼곡하게 적힌 그의 수첩은 발로 쓴 수첩이란 의미에서 족첩이란 애칭도 얻었다. 2008년 이후 사회단체의 대규모 연대집회엔 늘 그가 있었다. 지난 촛불 때도 퇴진행동 공동대변인으로 시민혁명을 이끌었다. 이명박근혜 정부에서 모두 7차례 기소를 당했다. 사무처장 시절 평균 수면시간은 4~5시간에 불과했는데, 지금은 1시간 정도 늘었단다. ‘2017 엔지오 지도자 영향력 조사’ 결과를 화제에 올렸다. “쑥스럽고 과분한 결과”라며 말을 이었다. “촛불 시민혁명이 낳은 건강한 변화인 것 같아요. 이전엔 박원순, 한비야 같은 대단한 사람들이 상위권에 올랐어요. 촛불을 거치면서 진짜 이웃집 동생이나 동네 친구 같은 제가 거론된 것 같아요.”
안진걸 참여연대 시민위원장. 사진 강성만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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