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 자원봉사단체 재미난연구소 백세인 소장
생선회 뜨는 법 배워 양로원 어르신들에게 초밥 대접하기, 노점상 40곳에 간판 달아주기, 페북 친구 체육대회로 후원금 모아 노숙인에게 침낭 200개 선물하기…. 2014년 1월 13일 첫 발을 뗀 자원봉사단체 재미난연구소가 그간 해온 프로젝트들이다. 지난달엔 3·1운동 100돌을 맞아 3·1독립선언서 11만장을 찍어 국내외 30개 단체에 보냈다. 우편 포장에만 연구원 15명이 10시간 이상 매달렸다.
최근 50회 프로젝트를 마치고 2대 소장 찾기에 나선 백세인 소장을 27일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났다.
재미난연구소는 5년 전 페이스북에서 시작했다. “고교·사회 친구 넷이랑 계정을 만들었죠. 연구소 이름도 공모로 지었어요. 지금은 페북 회원이 2천 명을 넘고 연구원도 300명 정도 됩니다. 봉사 활동에 한 번이라도 나오면 연구원이 됩니다. 연구원은 경기 양평에 있는 연구소를 펜션처럼 평생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자격이 있어요. 하하.”
그는 연구소를 열면서 2억 원을 들여 양평에 ‘원룸 펜션’을 마련했다. “빚까지 내는 바람에 아내와 갈등이 있었죠.”
연구소는 그 이름처럼 참가자가 신나게 즐기는 봉사를 추구한다. “봉사라고 하면 힘들다거나 자기 희생 같은 고정 관념이 있잖아요. 라면 박스 쌓거나 연탄 나른 뒤 기념사진 찍는 봉사 말고 참가자도 재밌는 봉사를 하자는 마음이었죠.”
가장 신났던 봉사는 ‘미래소년 조난 프로젝트’였단다. “11명이 무인도에서 24시간 쫄쫄 굶으며 버티는 걸 페북으로 생중계하고 기금을 모았죠. 그 돈으로 보육원 아이들에게 뷔페 식사를 선물했죠.” 보육원 마당에서 바비큐 파티를 하고 아이들과 함께 청매실을 담근 것도 같은 생각에서다. “아이들한테 직접 물어 그들이 원하는 걸 했어요. ‘축구 응원하며 1인1닭 먹기’도 그런 사례죠.”
그는 1998년부터 서울에서 이벤트 업체를 운영하고 있다. ‘펀(재미)한 봉사’를 생각한 데는 40대 중반에 뜻하지 않게 태어난 아들 영향이 컸다. “아내가 예정에 없던 임신으로 결혼 14년 만에 아빠가 되었죠. 멘붕이 왔어요. ‘아이 없는 결혼 생활’을 추구했거든요. 부모 자격이 있는지 많은 생각을 했어요.” 연구소는 부모 자격이 있는 아빠로 거듭나자는 고민의 결과물인 셈이다. 그는 20대 때 수원 지역의 한 양로원 겸 사찰에서 10년 가까이 봉사 활동을 했던 경험도 있다.
연구소는 조직 확장보다 활동의 파장을 키우는 데 주력했단다. 통장 잔고를 남기지 않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우리 활동을 보고 수백만 원 이상 기부하겠다는 분들도 여럿 있었어요. 다 거부했죠. 우리는 행동을 보여주는 곳이라면서요. 돈 말고 직접 봉사하고 펜션 평생 이용권을 받으라고 했죠. 사실 봉사 참여자도 무한정 받지 않아요. 보육원생 70명 바비큐 파티를 하려면 20명 정도면 되거든요. 그 이상이면 우리 파티가 됩니다.”
“따뜻한 사람으로 키울 방법 고민”
‘힘든 자기희생 봉사 말고 신나게’ 2014년 페이스북 열어 2천여명 모아
5년간 50회 활동…참가하면 ‘연구원’
연구원에겐 ‘양평 펜션’ 평생 무료로
“후임 소장 나오면 51회째 활동부터” 봉사 아이디어는 수시로 연구소에서 여는 막걸리 파티에서 모은다. 2015년 광복 70돌을 맞아 기획한 ‘춤 815’ 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한 연구원이 농담으로 70명이 막걸리 마시며 함께 춤추면 어떠냐고 해서 시작했죠. 맨날 세종문화회관에서 묵념하고 끝나는 그런 행사 말고요. 그날이 빛을 찾은 날이란 걸 일깨우고 싶었죠.” 서울 송파구청과 함께한 이 플래시몹 행사엔 4천여 명이 참여했다. “춤 동작을 유튜브에서 미리 배우고 나온 이들이 잠실 롯데타워에서 올림픽공원 평화의 문까지 550m를 꽉 채웠어요. 가장 기억에 남아요.”
그는 지난 4일 50번째 프로젝트를 끝으로 소장 사퇴 의사를 밝혔다. 아직 후임을 찾지 못해 51번째 프로젝트까진 시간이 걸릴 듯하다. “연구소 일에 전념하느라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이 줄었어요. 건강에도 적신호가 켜졌고요. 연구원들에겐 후임이 없으면 연구소 문을 닫겠다고 겁을 줬지만 저도 지금 암암리에 후임을 찾고 있어요. 나올 겁니다. 저는 평연구원으로 열심히 도울 겁니다.”
지난 5년 활동으로 부모 자격 에 대한 자신감이 생겼을까? “아들도 지금은 아빠가 연구소 활동을 하는 걸 잘 알아요. ‘왜 연구소 안 가’라고 자연스럽게 말할 정도죠.” 앞으로 계획도 아빠 노릇이 중심이다. “나이 든 아빠라 아이와 함께 할 시간이 많지 않다는 생각이 커요. 아이와 최대한 같이 있으려고요. 초등학교에 가면 캠핑카 여행도 하고 히말라야에도 갈 겁니다. 제가 백일 때부터 아이를 업고 산행을 해 별명이 ‘아이 업은 맨’이죠.” 아들에게 바람은 “따뜻한 사람이 되는 것” 딱 한가지란다.
연구소 5년을 자평하면? “아직 부족하지만 파장 확산이란 목표는 어느 정도 이뤘다고 봐요. 우리 뒤로 대학가 등에서 비슷한 성격의 단체가 만들어졌죠. ‘춤 815’ 행사 이후엔 여기저기서 노하우를 알려달라는 요청도 받았고요.”
연구원들은? “30대 40대 직장인이나 주부 학생들이 대부분이죠. 우리 연구소를 통해 만난 사람들은 다 좋아요. 유쾌하고 재밌고 따뜻하죠.”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백세인 소장이 26일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3·1운동 100년을 맞아 제작한 3·1독립선언서를 들어 보이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3·1독립선언서 우편 포장을 하고 있는 재미난연구소 연구원들. 백세인 소장 제공
재미난연구소 연구원들과 보육원 아이들이 바비큐 파티를 하고 있다. 백세인 소장 제공
‘힘든 자기희생 봉사 말고 신나게’ 2014년 페이스북 열어 2천여명 모아
5년간 50회 활동…참가하면 ‘연구원’
연구원에겐 ‘양평 펜션’ 평생 무료로
“후임 소장 나오면 51회째 활동부터” 봉사 아이디어는 수시로 연구소에서 여는 막걸리 파티에서 모은다. 2015년 광복 70돌을 맞아 기획한 ‘춤 815’ 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한 연구원이 농담으로 70명이 막걸리 마시며 함께 춤추면 어떠냐고 해서 시작했죠. 맨날 세종문화회관에서 묵념하고 끝나는 그런 행사 말고요. 그날이 빛을 찾은 날이란 걸 일깨우고 싶었죠.” 서울 송파구청과 함께한 이 플래시몹 행사엔 4천여 명이 참여했다. “춤 동작을 유튜브에서 미리 배우고 나온 이들이 잠실 롯데타워에서 올림픽공원 평화의 문까지 550m를 꽉 채웠어요. 가장 기억에 남아요.”
아들을 업고 산에 오른 백세인 소장. 백세인 소장 제공
연재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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